[기고]김시주 국립식량과학원 농학박사
[기고]김시주 국립식량과학원 농학박사
  • 편집국 newsfarm@newsfarm.co.kr
  • 승인 2016.05.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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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유감

얼마 전 서울근교에서 막걸리 축제가 열렸다. 우리 술 빚는 기술을 보전하고 문화도 지킬 수 있는 좋은 행사란 생각이 들었다. 내 입맛에 맞는 막걸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전국 각 지역에서 내 놓은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 상품들이 저마다 맛과 멋을 자랑하면서 전시되고 있었다. 막걸리를 담은 병 모양이나 상표도 다양하고 화려하여 나의 발길을 자주 멈추게 했다. 상품마다 맛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맛을 즐겼다.

막걸리는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우리 술이다. 특히 서민들의 생활 속에 깊이 녹아있는 민속주다. 농사철이면 새참으로 막걸리를 내어 허기를 달래고 힘도 보충 하였다.

농사일을 할 때 늘 마시는 술이라서 농주라고 불렀다. 또 집안에 잔치라도 벌이면 일가친척들이 함께 기뻐하면서 막걸리를 즐겼다. 초상이 나면 동네사람들이 모여 막걸리를 들면서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었다.

명절이나 제삿날엔 조상을 모실 맑은 술을 내리고 난 후 나머지 술로 막걸리를 걸러 마셨다. 크고 작은 사업을 펼치거나 심지어 자동차를 새로 장만해도 막걸리로 고사를 지내며 앞날의 번창과 안녕을 빌었다.

그러면서 막걸리는 자연스럽게 잔치술이 되고 차례술이 되고 고사술이 되었다. 이렇듯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전통주다.

막걸리는 겉치레가 없는 소박한 술이다. 나는 요즘도 집근처 골목에 자리 잡은 허름한 주점에 들러 막걸리를 종종 즐기곤 한다. 잘 익은 깍두기와 기름 두른 불판에 부친 전과 함께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아 소박하게 내놓은 막걸리는 보기에도 궁합이 잘 맞는다.

입 넓고 투박한 잔에 찰랑거리게 따른 탁한 빛의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면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우선 혀를 감싼다. 이어서 목젖을 적시고 목 넘김으로 코끝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쐐한 느낌은 막걸리만의 독특한 맛이다. 안주로 곁들이는 고소한 동태전, 파전, 해물전과 달짝지근하고 매콤한 깍두기는 입맛을 더욱 사로잡는다. 옛 친구라도 만나 정담을 나누며 마시는 막걸리는 구수한 맛이 더해져 정말 최고다. 가끔은 아내와 함께 외식을 할 때 반주로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막걸리는 여러 가지로 참 좋은 우리 술이다.

막걸리는 딱 내 스타일의 술이다. 내가 어릴 적에 농부였던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함께 밥 먹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아침 밥상엔 종종 아버지가 반주로 마실 막걸리 한 사발이 나왔다.

어머니가 직접 담그고 내린 막걸리다. 술 빚을 누룩도 동네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빻고 남은 밀기울로 만들고 술밥도 직접 생산한 쌀로 쪘다. 100% 나의 ‘어머니 표’ 막걸리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빚은 막걸리를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반주를 할 때마다 막걸리를 조금씩 남겨 내게 주셨다. 그 덕분에 난 어려서부터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막걸리 맛을 알게 되고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내 어머니 표 막걸리를 맛볼 수 없다. 어머니도 안계시고 술 빚는 기술도 끊겼다.

막걸리 행사장은 해가 진 늦은 시각까지 축제를 즐기는 입장객들이 줄지 않았다.

그 중엔 그들의 어머니가 빚은 술맛을 못 잊어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런 술 맛을 찾는 막걸리 마니아다. 아쉽게도 내 어머니가 빚었던 맛을 내는 막걸리는 만나지 못했다.

5월이다.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 표 막걸리도 그립다. 나는 지금도 막걸리를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