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초점]적자에 ‘허덕’ 농협RPC, 무엇이 문제인가
[이슈초점]적자에 ‘허덕’ 농협RPC, 무엇이 문제인가
  • 유은영 you@newsfarm.co.kr
  • 승인 2017.06.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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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올해도 ‘나쁜 전망’... 손 놓고 있으면 '투매' 반복
경영난 원인은 ‘남아도는 쌀’…대안은 ‘조기 시장 격리’
지난 3년 격리시기 놓쳐…상반기 발표해야 올해 가격에 영향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정미소 소유주는 과거 ‘동네 유지’로 통했다. 하지만 ‘미곡종합처리장(RPC)’으로 이름을 바꾼 지금은 적자에 허덕이며 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많다.


1991년 국내 처음 도입된 RPC는 2001년 328곳이 성업하다가 10여년 만에 110곳(33.5%)이 사라졌다. 규모화를 지향한 정부의 통합정책도 영향을 미쳤지만 쌀 소비감소와 과잉공급에 따른 쌀값 하락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전국 RPC는 218곳(2016)으로 민간 70곳, 농협 운영 148곳이다. 지난해 농협 88곳과 민간 7곳이 적자 운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터뷰]문병완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운영 전국협의회장(전남 보성농협 조합장)

“당장 ‘7만톤 격리’ 발표하라”




수확기 발표 너무 늦어 …투매 막지 못해
여야 합의 전기료 ‘농사용 전환’ 이행해야


RPC는 양파.도축장과 다른데 기재부 '형평성' 논리 대며 예산 안 줘..."전기는 되고 쌀은 안돼?"


쌀값 하락은 농민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농가 수매를 책임진 농협RPC도 쌀값 하락에 따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쌀값 하락의 원인은 과잉 재고량으로 이어진다.


문병완 농협RPC운영 전국협의회장은 올해부터 쌀값을 회복하려면 지금 당장 격리물량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기 시장 격리’로 시장 유통 물량의 대폭 감소를 예측하게 해 저절로 쌀값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특히 한해 예측 생산량에 5%의 오차범위를 둬 격리해야만 통계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RPC 운영에 애로사항이 많은 것 같다.
시중 유통 쌀 물량의 55%를 농협RPC가 취급한다. 농식품부가 아니라 농협RPC가 쌀값을 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RPC를 건전 육성하면 농협 지분부담이 줄어들어 결국 농협조합원들인 농민들이 혜택을 본다. 쌀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만 하는데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약속을 왜 안 지키는지 모르겠다.


-전기료 말인가?
RPC 설립 직후부터 농사용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정부안이었다. 한미FTA 체결하면서 수입 쌀 들어오면 그때 해 주겠다고 국가가 약속했던 사항이다.


여야 합의가 된 건데 기획재정부에서 타 품목과의 형평성을 내세워 안 된다고 한다. 수확부터 판매까지 일괄 공정을 처리한다고 해서 미곡종합처리장 아닌가? 쌀과 양파는 다르고, 도축장하고도 다르다. 도정공장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전기와 농업은 같은 국가기간산업인데, 한전은 국민 세금으로 보조금을 주고, 농협은 생산자단체라 보조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아프리카 가서 물어봐라. 필요한 게 전기인지, 쌀인지.


-모든 원흉은 쌀값 하락인 것 같다.
쌀값이 떨어지면 농민도 손해이고 국가도 손해다. 농가는 작년 변동직불금도 농업보조총액(AMS) 연간 한도 초과로 70억원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보관료, 직불금이 많이 들어가니까 역시 손해다. 생산조정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예산확보하고 준비하다보면 도입 시기는 내년이 된다. 조기 시장 격리를 해야 올해 새 정부가 쌀값 정책에 실패하지 않는다.


-올해 쌀값도 좋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지금 신곡뿐 아니라 2016년산도 격리한다고 발표만 하면 당장 가격이 오른다. 이것이 조기 시장 격리다. 지난 3년간 격리시기를 계속 놓쳐 쌀값에 영향력이 없었다.


작년에도 8월에 투매를 많이 해서 값이 내려갔다. 정부가 묵은 벼까지 사들인다고 하면 시장 유통량이 대폭 줄어들 거란 예측에 투매현상이 없어지고 쌀값도 바로 올라간다. 올해 못해도 7만톤 정도는 우선 격리 한다고 당장 발표해야 한다. 시행은 9월에 하더라도 말이다.


-시장격리는 지금도 하고 있지 않나.
자동시장격리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다만 생산량 통계가 틀렸을 때를 대비해 오차범위 5%를 줘야 한다. 선거할 때 여론 조사한 것도 5%를 주는데 날씨에 따라 수확량에 큰 차이가 생기는 벼에도 당연 줘야 한다.


작년 9월 작황조사 결과 예측 생산량 420만톤 중 소비량 390만톤을 제외한 30만톤을 시장격리했지만 쌀값이 안 올랐다.


이건 통계가 잘못됐다는 거다. 여기에 오차범위 5%를 주면 420만톤 중 21만톤이 된다. 21만톤이 더 나올 수도 있고 덜 나올 수도 있는데 정부가 이만큼을 더 격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농협RPC끼리 출혈경쟁할 필요가 없다.


보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 안종환)


섬진강 발원지 청정지대서 ‘녹차미인쌀’ 생산


2005년 인근 4개 RPC 통합, 40㎏ 6만개 처리
“쌀 팔아 이익 낸다는 패러다임 전환할 때”

영암.영광군은 적자보전에 일정 책임.."부러워"

일반 정부양곡 주면 적자해소에 큰 힘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닌 섬진강 발원지 인근에 위치한 전남 보성군에선 고급브랜드 ‘녹차미인쌀’이 1년에 6만개(40㎏)가 나온다. 품종은 ‘호평’으로 국내 육종한 쌀 중 미질이 가장 좋은 쌀로 통한다.


전남 보성농협RPC(RPC·Rice Processing Complex, 미곡종합처리장)는 해마다 180여㏊의 계약재배한 벼를 수매해 프리미엄급 ‘녹차미인 보성쌀’을 생산한다. 생산된 쌀은 전국적으로 유통된다. 20㎏에 4만5000원을 받으니 비교적 가격이 높은 편이다. 전남 대회에서 10년 연속 브랜드쌀로 선정됐으며 전국적으로는 대표 쌀로 5번 이름을 올렸다.


녹차미인쌀의 유통과 판매를 책임지는 보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 안종환)에선 4㎏, 200g 씩 소포장 제품도 내놓았고 쏠쏠하게 온라인 판매 소득도 올리고 있다.


“녹차미인쌀의 연간 판매액이 보통 200억원은 갔었는데 작년엔 쌀값이 떨어져서 160억원으로 쑥 떨어졌어요.”


보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은 보성농협RPC가 인근의 벌교·등양·웅치농협의 RPC를 합병해 생긴 통합RPC법인이다. 정부가 RPC 경쟁력 확보를 위해 통합을 유도한 2005년 통합했으니 충남 연기농협RPC와 함께 통합RPC의 시초인 셈이다.


대표직을 맡은 지 3년차에 접어든 안종환 대표는 통합 후 단점으로 ‘주인의식 결여’를 꼽는다.


“통합 전에는 개별 농협에서 직원, 조합장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나서서 판매도 하고 했는데, 통합 후에는 법인 직원들만 참여합니다. 재고관리며 부담이 커요.”


작년엔 6억원 정도 적자를 봤다. 누적 적자는 40억원에 이른다. 올해도 역계절 진폭이 커지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 통합 과정에서 합병 농협RPC들의 적자를 껴안다 보니 누적적자가 수십억을 넘어선 것이다. 초기에 참여농협들이 수매량의 30%를 판매한다고 약속했지만 갈수록 판매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많은 물량을 취급해 시장교섭력이 커진 것은 큰 장점이다.


안 대표는 “전남 영광·영암군에선 농협이 군민이 생산한 쌀을 판매하다 적자가 났다고 군도 일종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적자폭을 어느 정도 만회해 준다고 하더라”며 부러워했다.


“올해도 쌀 재고소비를 어떻게 할까, 그것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현재 재고량이 적정량보다 10%가 더 있는데 거래처에서 거래선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근에는 합병 농협RPC 4곳의 조합장들이 모여 “쌀을 팔아 이익을 낸다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어떻게 바꿀지는 강구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얘기까지 나온 것은 올해 쌀값 전망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쌀값은 20년 전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6월 5일 쌀값(12만6840)원은 5월 25일보다 80㎏당 평균 536원 떨어졌고, 최고 좋은 쌀로 일컬어지는 경기미는 1604원이나 낮아졌다. 농경연 관측에 따르면 올 단경기(7~9월) 산지 쌀값은 12만5200원으로 전망됐다. 그렇다고 감소일로를 걷고 있는 쌀 소비량이 갑자기 늘어날 일도 없다.


“쌀 소비 패턴이 너무 단순해서 특별한 안이 없어요. 홍보를 많이 하거나 거래처를 늘려 판매량을 늘리는 수밖엔….”


안 대표는 올해 어두운 전망을 뒤집어놓을 뾰족한 수도 없다고 했다. 다만 지역 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기 보성읍은 섬진강 발원지에 가깝고 공장이 한 곳도 없어 아주 깨끗합니다. 이런 곳에서 나온 쌀을 먹으면

당연 건강하겠지요.”


안 대표의 바람은 특별할 게 없다. 적자 해소에 군의 지원을 받는 것과 일반 정부양곡을 도정하는 것, 두 가지다.


“수입 양곡은 전문 도정공장이 하니까 일반 정부 양곡이라도 RPC에 주면 적자가 많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