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쌀과 농업의 가치
[전문가칼럼]쌀과 농업의 가치
  • 편집국 hbjy@newsfarm.co.kr
  • 승인 2018.01.3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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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경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동아시아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뚜렷한 기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역이나 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일 년 동안에 내리는 총강우량의 60%가 넘는 양이 6~8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장마철이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9월에 접어들면 밤과 낮의 온도차이가 커지면서 맑은 날이 계속된다.

 

벼는 아열대 및 열대지역이 원산지이기 때문에 원래 따뜻한 기온을 좋아한다. 이런 벼를 온대지역인 한반도에 잘 적응하도록 선발하여 우리의 주식으로 정착시켜 온 것이 우리의 농업이다. 벼농사가 우리의 기후풍토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면 이 땅에서 벼농사의 가치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벼가 파종되어 이앙되는 5~6월에는 기온의 상승과 더불어 벼의 가지치기와 생육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7~8월의 고온기에 접어들면서 어린 이삭이 발달하여 밖으로 나오는 출수기가 된다. 이때가 바로 모든 사람들이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장마철인데도 벼는 일생동안에 물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이다.

 

장마철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가 없었다면 이 땅에서 벼농사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9~10월이 되면 대륙으로부터 이동성 고기압이 확장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습도가 낮아지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지게 된다.

 

이러한 가을철 날씨는 쌀알을 영글게 하는데 가장 좋은 기상조건이다. 이삭이 패고 약 45일 동안 벼의 색깔은 푸른색에서 황색으로 변하게 되고 마침내 수확기에 도달하게 된다.

 

볍씨가 뿌려져서 벼를 수확할 때까지의 기간은 불과 6개월 정도 되지만 이 기간 동안에 한반도의 기후생태는 매우 복잡한 변화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벼는 슬기롭게 적응하면서 우리의 주식인 쌀을 공급해줌과 동시에 기상재해를 방지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갖가지 공익적 기능도 하고 있다.

 

만약 벼농사를 포기한다면 장마철에 쏟아지는 그 많은 물을 어디에 가두어 둘 것이며, 무엇으로 홍수를 조절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홍수 때 전국의 논에 가두어 둘 수 있는 물의 양이 춘천댐 총저수량의 24배(36억 톤)나 되고, 논에서 지하수로 스며드는 물의 양은 전 국민이 1년간 사용하는 수돗물 양의 2.7배나 된다고 한다.

 

벼농사를 영위함으로써 얻어지는 국토의 토양 유실방지효과, 공기나 수질의 정화효과, 생물생태계의 유지보존효과 등 과 같은 공익적 기능을 돈으로 계산하면 연간 13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벼농사가 주는 이 엄청난 혜택을 우리들은 지난 5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받아오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국민 대다수가 벼농사를 단순한 쌀농사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오늘날 농업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농업의 어려움이 어찌 해결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벼농사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실제로 벼의 재배면적 감소와 같은 급속한 농업환경의 변화는 이상기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희귀식물과 동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언론보도가 있을 때마다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이 땅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재배되어 오면서 자연생태계의 터전과 환경지킴이 역할을 무엇보다 크게 해온 벼농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왜 식량생산에만 머물고 있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쌀 산업이 무너져서 부족한 쌀을 외국에서 도입해온다 하더라도 벼농사가 지금까지 해온 공익적 기능은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벼농사를 지켜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