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 남북경협 채비 '잰걸음'
농업계 남북경협 채비 '잰걸음'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8.05.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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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公 2014년 연구 ‘농업 융‧복합단지’ 건설 주목
식량‧농기계‧농업기술 패키지 지원…北 농업발전 토대
결정된 바 없지만 변화된 흐름 맞춘 지원형태 ‘설득력’

농협 양돈‧백신‧농자재 지원 염두

물류거점 울산, 준비위원회 발족

북한 산림정보 데이터 구축방안 검토

초미의 관심사 ‘쌀’…양측 모두 이득

인도주의적 차원 국민 공감대 주도해야

‘정기성‧정량성‧투명성 확보’ 전제조건 제시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하고 있다.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남북정상회담의 후폭풍이 대한민국 전역에 몰아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판문점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에 합의했다.

판문점 선언은 새로운 평화의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남북경제협력의 물꼬가 다시 트이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정상회담에 이어 각 분야에서 협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오는 14일 남북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양측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린다. 회담 테이블에는 남북 군 수뇌부 간 직통전화 재설치와 비무장지대의 긴장완화 등 비교적 가벼운 의제가 오를 전망이다.

가장 기대가 큰 것은 농업계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했던 농업교류가 재개될 것이란 희망에 들떠 있다. 남한의 농업은 당장 북한에 부족한 식량공급과 농자재, 농기계를 비롯해 농업기술 보급 등 농업발전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다. 이 때문에 새삼 과거 연구결과가 주목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2014년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연구 보고서에는 개성공단 배후에 농업단지를 조성, 개성공단에 식부자재 공급과 북한 전역에 새로운 농업모델을 확산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울산항, 대북지원 물류거점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은 대한민국 전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기도 파주, 문산 등 남북 접경지역 부동산에 대한 호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은 이런 기대감을 잘 반영한다. 실제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간 철로·도로 등 사회기반시설(SOC) 개발 계획과 연내 종전 선언 추진 등이 담겼다. 아울러 시멘트, 건설, 철도 등 남북 경협 수혜주(株)가 두 배가량 오르면서 들썩이고 있다.

울산시는 남북 경제·교류협력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발족했다. TF는 창조경제본부장을 비롯한 남북 교류협력 분야를 맡을 수 있는 실·국장과 울산발전연구원, 울산테크노파크, 울산항만공사, 울산상공회의소 등 유관기관으로 구성됐다. 울산은 북한과 교류를 위한 육로와 해로, 철로 등 물류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 북방시대 거점이자 환동해권 교통 요충지로 잠재력이 크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지원 물류거점 항구였던 울산항의 경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주요 항구와도 교류가 가능해 남북 경협 재개시 지역의 항만물류 산업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TF 구성을 주문한 김기현 시장은 “북한의 속내가 어떠하든 간에 남북관계에서 진전을 이룬 것은 의미가 있다”며 “울산시가 해야 할 역할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이른 시간에 발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광산업도 활기

관광업계도 설레고 있다. 금강산, 백두산 관광 재개가능성이 높아졌고, 남북한의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관광산업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강원도는 속초~장전~원산~나진~블라디보스토크~속초를 잇는 5박6일 코스로 크루즈를 투입해 금강산, 마식령, 백두산 관광 등을 연계하는 사업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7년 항공로를 이용한 백두산 관광에 대한 현지답사를 이미 마쳤다.

북한 농업 근본적 개선 검토

무엇보다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식량이다. 지난 2015~2016년 북한의 식량 수요량은 550만톤이지만 공급량은 510만톤에 그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차례의 중요한 농업개혁 조치를 취했지만 농업생산 증대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농업계 대북지원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지난 2014년 연구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개성공단 배후 지역에 여의도 면적(290ha)의 1.5배에 달하는 융·복합 농업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1차적으로는 개성공단의 남북한 근로자 5만4000명에게 식부자재를 공급하는 게 목표지만 장기적으로 새로운 농업모델을 북한 전역에 전파해 식량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다.

농업단지가 조성되는 곳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북측지역 약 460㏊(460만㎡)의 땅으로 황해북도 개성시 판문읍 일원 송도리 협동농장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사는 농기계 지원 외에도 인력양성과 기술교류 등의 패키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농산물 생산 방식과 기술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남한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한 농산물을 근로자에게 공급하고 인력양성과 기술교류, 주민의 소득 증대, 생활환경 개선사업을 병행한다는 복안이다.

북한은 산간단지 내 임농복합경영을 추진중이다. 이에 따라 공사는 산에 물을 대는 관수시설 정비사업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농어촌연구원의 자체적인 연구결과로 농식품부와 합의된 사항은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통일기금 금융상품 개발도

농협은 지금까지 양돈장 건설과 비료·비닐 등을 포함해 총 29건, 금액으로는 73억53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북한에 제공했다. 현재 농협은 대북지원 방안으로 ▲정부 차원의 대북 쌀·비료 지원 시 적극 참여 ▲양돈·온실·농자재 추가 지원 ▲사료·백신 제공(2015년 양돈 지원 후속조치)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농협은행은 통일기금 조성용 예·적금을 개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산림병해충 방제사업과 산림종자 및 묘목 지원을 원하고 있다. 2015년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800ha) 방제사업을 도왔다. 산림청은 내년 대북지원용 종자저장시설 조성방안 연구와 내년 사업예산에 북한산림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비용을 포함시키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쌀, 수급조절 효과 상당

쌀 농가들은 대북 쌀 지원으로 상당한 수급조절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쌀 재고는 매년 40만톤씩 늘어난다. 재고미 보관에도 10만톤당 300억원씩 들어간다. 북한에 당장 부족한 쌀 40만톤만 지원해도 한해 재고량은 없어지는 셈이다. 과거에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식량은 쌀 265만톤, 옥수수 20만톤 등 총 1조976억원어치다. 이 중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지원한 쌀은 총 240만톤이다. 매년 40만~50만톤이 차관이나 무상원조 형식으로 북한에 지원됐다. 따지고 보면 매해 남는 쌀을 북한에 준 것으로 피차 이득이었다.

다만 쌀 지원재개 전 해결절차가 한 가지 남아있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남는 쌀 지원 개념보다 인도주의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퍼주기, 북한 체제 지원이라고 반대하는 소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실 과거 정부의 대북 지원 때에도 쌀이 북한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군량미로 전용됐다는 의혹이 줄곧 제기돼 왔다. 주로 차관 형식으로 쌀을 지원하다 보니 모니터링이 안돼 의혹을 부추기는 면이 있었다. 무상원조가 아닌 차관 형식은 모니터링이 안 된다. 이런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하되 어떤 조건, 어떤 절차에 의해 지원할지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이만큼을 이 때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남북 공동의 수요조사가 필요하다. 반대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 총장은 “20만톤, 30만톤 준 건 10년 전 방식이지 지금은 안 통한다. 우린 식량을 지원하고 석탄을 받을 수 있고 무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며 “깃발을 올리기 전에 농민단체가 나서서 국민적 합의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이 공동으로 식량 수요를 조사하고 그 결과에 입각해 지원량, 지원시기를 결정한 다음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총장은 또 “북한에 협동농장 농업특구가 3개 있다”면서 “청진, 어랑, 숙천에 우리 NGO와 농업단체가 들어가 공동개발하면 농업생산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본격적인 경협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핵 포기가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나와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