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닭 사체 치우고 돌아서면 또 죽어 있어”
[현장르포] “닭 사체 치우고 돌아서면 또 죽어 있어”
  • 황보준엽 기자 hbjy@newsfarm.co.kr
  • 승인 2018.08.0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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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양계농가 “폭염 빨리 끝나기만…”
사료 먹지 않아…몸무게 ‘뚝’→상품성↓
가마솥더위 속 냉방시설도 큰 효과 없어
이용규 대표가 계사 내에서 닭 사체를 빼내고 있다.
이용규 대표가 계사 내에서 닭 사체를 빼내고 있다.

(한국농업신문=황보준엽 기자)“이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더위에 지친 닭들은 따로 계사에서 빼 물을 뿌려준다. 닭들이 날갯짓을 했지만 이내 힘에 부친 듯 주저앉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닭 사체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돌아서면 또 죽어 있으니 갑갑한 심정이다.” 충남도 청양군에서 대를 이어 양계장을 운영하는 이용규 대표는 이같이 고충을 쏟아냈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에 축산농가엔 초비상이 걸렸다. 지난 4일 방문한 청양은 오전임에도 강한 햇볕이 들며 36도를 기록했다. 계사 안은 외부보다는 낮은 32~34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땀샘이 없는 닭은 버티기 힘들다.
 
이용규 씨는 “오늘은 선선한 편이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며 “어제만 하더라도 수십 수백마리가 죽어나갔다. 시원하라고 넣어 놓은 얼음도 한 시간도 안돼 녹아버린다”고 말한다.
 
이씨는 매일이 쫓기는 심정이다. 아침 눈을 뜨면 즉시 양계장으로 뛰어간다. 계사 문을 열기 전 항상 조마조마하다. 밤새 닭들이 얼마나 또 죽었을까하는 근심 때문이다. 이에 문고리를 잡고 두어번 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문을 연다.
 
이씨는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닭들이 오늘은 얼마나 죽어 있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아침에 눈 뜨는 게 겁이 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폭염에 폐사된 닭들.
폭염에 폐사된 닭들.

사체처리기 보급 지원 필요해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일까지 총 339만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09만6000마리 폐사한 것에 비해 60% 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번 폭염이 국가적 재난수준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됐다.
 
이씨의 농장도 재난에서 빗겨가진 못했다. 지난해 이씨는 폭염으로 닭 3만마리를 잃었다. 올해 대비를 철저히 해 그나마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현재까지 4000~5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계사 입구 곳곳에는 폭염으로 인해 폐사한 닭의 사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끌차와 로더를 이용해 사체를 지속적으로 치우고 있지만 돌아서면 닭이 죽어나간다. 임시방편으로 계사 밖 한켠에 사체를 모아두고 있다.
 
발생하는 닭의 사체 처리는 온전히 농가의 책임이다. 폐기물 업체 등 외부에 맡기거나 사체 처리기를 이용해 농가에서 직·간접적으로 나서 해결해야 한다.
 
“외부업체에 맡기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아 농가에는 큰 부담이다. 사체 처리기가 모든 농가에 보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씨는 강조했다.
 
더위에 물·사료 먹지 않아
계사 내부로 들어서면 힘을 잃고 숨을 헐떡거리는 닭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더위에 지친 닭들은 따로 계사에서 빼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닭들도 더위를 떨쳐내려는 듯 날갯짓을 했지만 이내 힘에 부친 듯 주저앉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폭염은 닭들의 식욕도 앗아간다. 계사 내 닭들은 물만 마실 뿐 사료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사료를 먹지 않아 적정 체중에 이르지 못하는 닭은 상품성도 떨어진다. 이씨는 이미 한번 출하를 거절당했다. “닭은 더위가 절정에 이르면 아예 물이고 사료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몸무게가 늘 수가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출하를 앞둔 닭이 죽어 가거나 상품성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적인 출하가 어려운데다 살이 올라 출하가 될 만한 닭들도 폐사해 사료대만 소모되고 있다.
 
이씨는 “사료를 먹을 대로 먹은 닭들이 다 폐사한다. 속이 안상할 수가 없다”며 “이제 출하가 되겠다 싶으면 죽어나니 손해가 막심하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최신식 냉방시설 엄두 못내
양계장 온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개분무기를 2분에 한번씩 살포한다. 여기에 팬도 24시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폭염은 이씨의 노력이 우습다는 듯 계사 온도를 손쉽게 올려놓는다. 아무리 물을 뿌려대도 양계장 내부 온도는 요지부동이다. “냉방시설이 적당한 더위에는 효과가 있지만 요즘 들어 발생하는 찜통더위에는 틀어 놓는다 하더라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이에 전기 사용량이 급증해 발생하는 전기세도 만만치 않다. 수 십대의 팬과 안개분무기를 운용해 한달에만 150~180만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전기요금 중 가장 저렴한 농업용 전기를 사용함에도 요금은 농가에게 큰 부담이다.
 
하루 온종일 냉방시설을 운용하다 보니 고장도 빈번하다. 이씨는 “고장난 시설은 스스로 수리하다보니 이제는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고장이 잦다고 해 냉방시설을 최신식으로 교체하기도 농가에 부담이 된다. 지자체가 절반을 지원하더라도 한동에 설치하는 안개분무기 가격은 500여만원이다. 6동을 운용해야 하는 이씨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다.
 
황순이 씨가 닭 신체 열을 식히기 위해 계사를 부지런히 돌고 있다.
황순이 씨가 닭 신체 열을 식히기 위해 계사를 부지런히 돌고 있다.

토종닭 농가 피해 지속 예상

농가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사 안 닭을 쫓으며 열 방출을 위한 날갯짓을 유도하고 있다. 이 대표와 어머니인 황순이 씨도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30분마다 양계장을 돌며 닭들을 쫓는다. 한 동에서 닭을 쫓는 시간은 5~10분. 이 대표와 황순이 씨는 3개 동씩 나눠 닭을 쫓고 또 쫓는다.
 
황순이 씨는 “지난해 다리 수술을 해 상태가 좋지 않지만 어떻게 아들 혼자하게 두겠냐. 나라도 거들어야한다”고 말한다.
 
이어 “이렇게 일하고 나면 밥이 잘 먹히질 않아. 식사시간이 되더라도 너무 힘드니 밥맛도 없다”며 “저녁에 누우면 다리가 쑤셔 잠이 안 온다. 이제는 닭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죽을 판”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농가는 일반 육계가 아닌 토종닭을 기르고 있어 한동안 폭염의 고통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번에 전체 두수를 출하하는 육계와는 달리 토종닭은 월령에 따라 차례차례 출하가 되는 방식으로 폭염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방법이 없다. 조금 더 신경 써 닭들이 건강하게 폭염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밖엔…”이라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다시금 계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