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세조, 세종의 둘째아들..'계유정란' 권력욕 이외 명분없는 반란으로 평가!
수양대군 세조, 세종의 둘째아들..'계유정란' 권력욕 이외 명분없는 반란으로 평가!
  • 안영 기자 booleanhead@gmail.com
  • 승인 2018.10.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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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안영 기자]

영화 '관상'의 배경이 되는 수양대군과 계유정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수양대군은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세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수양대군에 봉해졌다. 문종이 사망하자 어린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였다.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휘(諱)는 유(瑈), 자는 수지(粹之), 시호는 혜장(惠莊)이다.

윤번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왕위에 등극하여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되었다. 형인 문종에 비해 학문보다 무예에 능하고 병서에 밝았으며, 진평대군·함평대군·진양대군이라 칭하다가 1445년(세종 27)에 수양대군에 봉해졌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홍위(단종)가 즉위하자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권람·한명회·홍달손·양정 등 30여 인의 무인세력을 휘하에 두고 왕권을 찬탈하려는 계획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1452년 10월 수양대군은 조선의 국왕이 되기 위해서는 명나라로 부터 환심을 얻어야 했으며 그 목적으로 사은사를 자처하여 명을 다녀왔다.

1453년(단종 1) 10월 10일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단종을 압박하여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우의정 정분 등을 유배시켰다. 그리고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킨 뒤 사사(賜死)하였다. 역사에서는 이를 계유정란(癸酉靖難)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일거에 실권을 잡은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 이조·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하면서 병마권을 장악하고 좌의정에 정인지, 우의정에 한확을 임명하고 집현전으로 하여금 수양대군 찬양의 교서를 짓게 하였다. 1455년 단종을 겁박하여 왕위를 자신에게 선위하게 하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단종은 상왕으로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이미 유학이 정치적 이념으로 자리잡은 조선에서 충신들에 의해 단종 복위를 도모하려는 사육신(死六臣)사건이 일어났다. 집현전 출신의 유학자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류성원이 주도하여 일어난 사건으로 세조를 살해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자의 가족까지 모두 참수되었다.

당시 조선은 사회적 불안이 높아졌고 세조에 대한 민심은 흉흉해졌다. 후대에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란은 권력욕 이외 명분없는 반란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의 치적에는 괄목할 만한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