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米적米적] 식약처 고비사막 안 안내자 되어야 할 때 
[기자수첩 米적米적] 식약처 고비사막 안 안내자 되어야 할 때 
  • 최정민 기자 cjm@newsfarm.co.kr
  • 승인 2019.02.0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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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최정민 기자)“지네 집 앞 마당에 불이 났는데 끌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밖으로 나다니고,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최근 현장소통 강화를 이야기하며 전국 농산물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는 식약처를 보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세종의 한 농민의 이야기다.
지난달부터 류영진 식약처장은 천안농수산물도매시장을 비롯해 전국을 다니며 현장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고생하고 애쓰는 농민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식약처는 올해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식용란선별포장업’, ‘산란일자 표기’ 등 농업 전반에 걸쳐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제공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농업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이 최근 국민의 농산물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책임을 회피하고자 허술한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 농업계 일각의 의견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책의 필요성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고민을 하고 결정을 했느냐다. 
당장 지금 식약처 정문 앞에만 가보더라도 추운 날씨에 핫팩 한 두개를 손에 쥐어 들고 한달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양계사육 농민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정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이 있었다면 생계를 뒤로 하고 이 추운 날씨에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 얇은 천막에 의지한 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을까.
기자가 직접 만난 농민은 그저 답답함을 토로할 뿐이었다.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식약처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PLS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식약처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안전한 먹거리, 해외 역시 진행 등 하지만 정작 이해 당사자인 농민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 과정에 참여를 시켰을까.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런 문제들을 뒤로 하고 소통을 하겠다고 먼 길 나서는 식약처의 행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최승호 시인의 ‘고비’라는 시집에 실린 시 중 이런 구절이 있다.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한 나라의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농민이 지금 정부가 만들어 놓은 고비사막 안에서 고통 받고 있다. 
이 고비사막 안에서 꺼내줄 이 역시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농민이 마음 놓고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두려움을 넘을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 식약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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