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쌀 농가도 '희생' 아닌 '상생' 하고 싶다
[데스크칼럼]쌀 농가도 '희생' 아닌 '상생' 하고 싶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2.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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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한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오르면서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한두 번 꽃샘추위야 기다리고 있겠지만 시기상, 절기상 봄이다. 예년 같으면 쌀 농가는 논갈이를 하려 농기계를 손보느라 여념이 없을 때다. 그런데 웬일인지 농가들의 표정이 어둡다. 20년 전으로 회귀했던 쌀값이 제 자리를 찾았고 RPC(미곡종합처리장)에서 사들인 벼값도 시세보다 높았다. 지금 쌀 농가들은 2018년 수확기(10~12)에 받았던 전국 평균쌀값 19만3000원(80kg)만 계속 유지된다면 여원이 없겠다고 한다. 모순이게도 이것이 농가들이 좀처럼 웃을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올해부터 RPC들에게 빌려줬던 벼 매입자금 상환 시한을 기존 8월에서 6월로 앞당겼다. 건전경영을 유도한다는 취지이지만 당장 수 억 원에서 수십억원대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RPC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간 정부 융자 지원금으로 기존 대출을 갚아나가던 '대환대출'이 더이상 불가능하고 6월 일시에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경영이 위태하던 민간RPC 쪽에서만 '줄도산' 얘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유동성 확보가 쉬운 농협RPC도 사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통합RPC의 경우 운영규모가 큰 만큼 융자받은 금액도 크기 때문에 융통해야 하는 자금의 규모는 민간에 비할 수가 없다. ‘위험한 정책’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일은 RPC의 자금압박이 쌀 농가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해 대규모 물량 방출에 나설 것이 명확한 RPC들은 어쩔 수 없이 ‘저가 경쟁’을 벌일 테고, 이는 묵은 쌀 재고가 바닥나 쌀값이 올라야 하는 단경기(7~9)에 쌀값이 떨어지는 ‘역계절진폭’을 불러올 것이다. 전반적인 쌀값의 추락은 2019년산 신곡 수매가 역시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쌀 업계의 ‘도미노 몰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속이 탄 RPC들은 협회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서지만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뾰족한 수는 없다. 이제 겨우 한시름 놓고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려던 쌀 농가들은 웃음도 잠시, 다시 머리띠를 둘러야 할지 모른다.

농식품부는 쌀값 기조가 ‘하향 안정화’임을 분명히 했다. 쌀값이 단기간에 급등하자 거부감이 커진 소비자들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그렇다고 농민이 희생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없다. 언젠가부터 자주 등장하는 ‘상생’ ‘윈윈’이라는 말들에 맞게 쌀 정책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