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제 개편 논의 ‘예산’ 탓 공전 거듭
직불제 개편 논의 ‘예산’ 탓 공전 거듭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3.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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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액 안 하려는 기재부 설득해야
농민단체·국회 야당, 3조~5조원 제시
합의점 찾아야 일정대로 2020년 시행

개편안 골자 ‘모든 작물에 직불금 지급, 중소농 배려’

대농에 박하고 소농에 후한 ‘하후상박’ 案 놓고 논란

경지규모와 농가소득 정비례 근거 타당성부터 살펴야

예산 2조원 넘지 않는 ‘가격변동대응직불제’ 대안 제시

지난 2월 26일 국회에서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전국 농어민위원회 발대식에서 이해찬 당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위성곤 의원 등이 직불제 예산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국회에서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전국 농어민위원회 발대식에서 이해찬 당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위성곤 의원 등이 직불제 예산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농업직접지불제 개편에 필요한 예산 규모를 놓고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 농업인단체는 예산의 증액을 요구하지만 기획재정부는 ‘현행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최근 5년(2014~2018년) 동안의 직불제 평균 예산 1조8000억원 내에서 개편이 충분하다고 본다. 반면 농식품부는 2조4000억원을 제시하고 있고, 농민단체와 국회 야당은 최소 3조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야당 일부에선 5조원 이상까지도 나온다.

2019년 직불제 예산은 1조6142억원. 국내 쌀농가 대표조직인 (사)한국쌀전업농연합회(회장 김광섭)는 이보다 딱 2배인 3조2000억원을 요구한지 오래다.

여야가 합의하고 농업계도 대체로 수긍하는 이상 직불제 개편은 늦더라도 추진될 전망이다.

정부는 쌀 공급과잉 및 농가소득 양극화 등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직불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개편방향은 쌀에 집중됐던 직불금을 다른 작물로 확대해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중.소농을 배려하는 한편 농업의 공익적 기능 확대를 위해 생태.환경 관련 준수의무를 강화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쌀 변동직불금, 쌀 고정직불금, 밭 고정직불금, 조건불리지역직불금 4가지를 통합해 2020년부터 모든 작물에 같은 직불금을 지급하고 소규모 영세농에게 기본직불금을 지급하는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이다.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발대식에서 “문재인표 농정 핵심은 공익형 직불제”라며 “정부 기초안이 마련돼 있고 내년부터 실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6월말 농민 의견을 수렴한 뒤 하반기 법제화와 예산편성을 통해 2020년부터 변경된 직불제 시행에 들어가는 게 정부가 구상하는 일정표다.

밭농가들은 공익형 직불제 시행에 따른 직불금 수령액이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대규모 쌀농가는 정부 예산안에서는 직불금 수령액이 줄고 변동직불제 폐지에 따른 손해도 중소농에 비해 크다. 개편안은 중소농에 더 주고 대농 수급액을 줄이는 일명 ‘하후상박’ 구조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쌀전업농연합회 등 농민단체는 새 제도로 손실을 보는 농가가 없으려면 최소 3조원 이상 예산을 확보해 ‘하후상유지’ 쪽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경연 분석결과 ‘3조원’ 필요

예산 관련한 이견이 분분한 가운데 농민단체 주장을 뒷받침하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식품부 의도대로 0.5ha 미만 50만 농가에 월 10만원씩(연 120만원) 기본 직불금을 지급하고 4ha 이상 농가 수령액도 유지하는 데 최소 3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산출했다.

결국 정부와 기재부의 직불제 개편예산 ‘3조원 이하’는 대농의 수령액을 줄이겠다는 의도여서 적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충남의 쌀전업농은 “전업농은 국민 식량 확보를 위해 논농사 규모화 추진과정에서 정부정책에 의해 설립된 단체”라며 “이제 와서 쌀 공급이 넘친다고 주던 것을 뺏어 가면 정부를 믿고 농촌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느냐”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개편안의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 시선도 있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쌀 직불제 개편방향인 ‘하후상박’은 경지규모와 농가소득이 정비례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과연 그런지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한 직불제 개편안은 직불제의 기본 목표나 기대효과와 무관하다. 쌀 직불제는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인 고정직불과 가격안정장치인 변동직불로 구성돼 있으니 이에 대한 필요성과 효과를 바탕으로 개편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득보전장치 '생산조정제·자동시장격리제'도 ‘예산’이 문제

정부가 직불제 개편을 추진하는 주요 이유는 과잉된 쌀공급을 줄이고 부족한 밭작물 재배를 늘리자는 데 있다. 따라서 개편안은 쌀 생산을 유도하는 변동직불제 폐지가 핵심 사안이다.

변동직불제는 쌀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했을 때 쌀 목표가격과의 차액 85%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쌀농가들이 개편안 확정 이전에 변동직불제 역할을 대신할 쌀값 안정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농가소득보전장치로 쌀 생산조정제,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논에 타작물을 재배하는 생산조정제가 쌀 생산을 줄이는 사전적 조치라면 자동시장격리제는 시장에 쌀 공급량을 줄이는 사후적 제도다. 벼 수확기에 앞서 그 해 적정 생산량과 소비량을 산정한 뒤 쌀 생산초과물량을 시장에서 자동으로 격리하는 것이다.

정부는 필요할 때마다 시장격리를 실시해오긴 했지만 조치가 더뎌 쌀값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수년동안 도입이 검토돼 왔다. 시장격리는 2008년 이후 13번 이뤄졌다.

두 제도 역시 예산 문제가 걸려 있다. 농식품부는 올해 5만5000ha에 대해 생산조정제를 실시하고 참여 농가에 ha당 평균 340만원씩 총 1879억원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벼농사를 밭작물로 돌릴 유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자동시장격리제는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법제화를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김현권 의원은 “정부가 지난 2014~2016년 1조5000억원을 들여 89만6000톤을 격리했지만 쌀값을 회복시키지 못했다”며 “발빠른 자동격리로 쌀값하락을 막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시장격리제가 쌀 생산을 유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도 도입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 쌀 생산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려는 것인데 같은 기능을 하는 제도를 또 다시 도입할 리가 없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직불제 개편은 쌀 생산을 유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농가소득 보전에 투입되는 정부 재정지출 규모 축소와 쌀 공급과잉 완화를 위한 직불제 개편의 정책목적은 쌀농가 희생없이는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작물도 목표가격 설정하면 '쏠림' 현상 해결

어느 한 쪽에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고, 그렇다고 예산을 양껏 책정할 수도 없는 형편이 직불제 개편논의를 더디게 한다. 예산문제를 해결할 최적의 대안 마련에 골몰한 가운데 2조원으로 효과적인 생산조정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김명환 GS&J 인스티튜트 농정전략연구원장은 변동직불제를 확대한 ‘가격변동직불제’ 도입을 주장했다. 김 원장은 “쌀 변동직불금을 없애고 고정직불금으로 통합하는 것은 항구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며 “변동직불금 지급 대상 품목을 쌀에서 확대해 자율적인 생산조정을 유도하는 것이 직불제 중심 농정방향과 합치된다”고 설명했다. 타작물에도 기준가격을 설정하는 가격보장장치를 마련해주면 굳이 특정 작물을 고집할 요인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는 이것이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의 상시적 불안정성과 개방에 의한 가격하락 대응에 적합하다고 봤다.

대체성 농산물 수입증가 위험 대응해야

가격변동대응직불제도는 쌀 변동직불이 생산과잉을 유발하고 FTA피해보전직불이 피해보전기능이 취약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변동직불제는 쌀에만 적용되고 그 해에 벼를 재배해야만 지급하므로 벼 생산을 유인한다.

FTA피해보전직불은 가격하락에 대한 FTA 기여분을 추정할 때 같은 농산물 수입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만을 따지기 때문에 농가 피해가 실제보다 적게 산출되는 경향이 있다. 체리 수입이 증가해 딸기 수요가 줄어드는 등 대체 가능 농산물 수입에 의한 간접피해는 산정에서 제외하고 있다. 딸기를 재배하던 면적이 배추 재배로 이동하면 배추 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보전대상이 되지 않는다.

김 원장은 “대부분의 주요 작물에 대해 가격 하락분의 85%를 보전하므로 대체성이 있는 농식품 수입증가에 의한 가격하락을 포함한 모든 가격위험이 현저히 감소해 농업경영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급기준도 당해 재배여부와 관계없이 기준연도 면적에 대해 지급하면 ‘품목 불특정 최소허용보조’가 되어 농업총생산액의 10%인 4조4000억원까지는 AMS에 산입되지 않는다.

특히 이 제도를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연간 최대 2조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김 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배면적이 많은 33개 작물에 적용하는 경우 135만ha가 대상이 되어 총 재배면적의 85%가 대상이 된다. 2010년에 이 제도를 적용했다고 가정할 경우 각 작물별 가격보전에 들어가는 예산소요액은 최대 2조7000억원으로 농식품부 총예산의 2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 원장은 “2조원 초과 금액은 사업지원 예산 조정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계주의적 농정 회귀’ 지적도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박준기 농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특정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조정하려는 것은 설계주의적 농정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화돼 있는 현실과 괴리가 있으며 특히 “생산조정장치가 없는 가격변동대응직불은 과잉생산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은 “대체성이 있는 농산물이 언제든 수입되는 상황에서 적정 생산량을 설정해 생산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이 제도를 적용하려면 생산비연계 방식을 준수하고 가격지지는 배제해 시장기능을 왜곡시키지 않다는데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국회, 농민단체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직불제 개편을 조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