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월급제…'조삼모사' 정책 우려
농업인 월급제…'조삼모사' 정책 우려
  • 박우경 기자 wkpark@newsfarm.co.kr
  • 승인 2019.03.2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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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 판매 대금 앞당겨서 지급
흉년 등 농사 망치면 ‘빚’되는 위험
농업인 ‘월급’ 용어 혼선 빚어

(한국농업신문=박우경 기자) 각 지자체에서 농업인의 계획적인 생활을 돕기 위해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실제 농업인의 참여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 농가들의 소득을 보완하는 제도로 농민수당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농업인 월급제는 2013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벼재배농가를 대상으로 최초로 시행됐다. 2014년부터는 월급제의 품목 범위가 채소·과수·화훼농가로 확대됐으며, 시행 지역도 늘어 충남·충북의 일부 농협에서도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남도에서도 이달부터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해 나주시 등 16개 시·군 농협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농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점차 각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농업인 월급제는 수확기 때 벌어들이는 예상 소득의 일부를 농협에서 농업인들에게 매달 일정 금액으로 나눠서 지급하는 제도이다. 각 지자체에서는 농협에서 대출한 이자를 농민 대신 지급하고 있다.

농업인들의 대부분이 수확 전까지 수익이 없어 생활비와 자녀 학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농협에 대출을 받아 생활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농업인 월급제는 농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달마다 쓸 수 있는 수입이 생겨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농민 수입 당겨쓰기, ‘조삼모사’ 대책

하지만 농가 대비 사업 신청자가 현저히 낮아 농업인을 위한 농업인 월급 제도가 정작 농업인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남도에서도 이달부터 지원 사업을 신청한 농가에 30만원~2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신청 농가는 2000여 농가에 그쳤다. 2017년 기준 전남도의 전체 농가 수인 14만 6천 농가 대비하면 0.8%의 참여율도 되지 않는 셈이다.

일부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업인 월급제가 결국 ‘조삼모사’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후에 받을 목돈을 미리 푼돈으로 나눠 받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 다달이 받게 되는 선지급금이 결국 농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근로의 대가로 받는 봉급의 의미인 ‘월급’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흉년으로 인해 농사를 망치게 되면 선지급 받은 월급이 그대로 빚으로 남게 돼 농민들의 재정적 부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2000년 후반 이후 잦은 기상이변의 발생으로 곡물 생산이 감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곡물 가격 급등 주기가 짧아지고, 변동 폭도 확대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불안한 작황으로 선지급 받은 돈이 빚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결국 목돈을 당겨쓰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에 농민들은 농업인 월급제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전남의 쌀 생산 농민은 “당장에 돈이 급한 사람들에게는 좋겠지만 나중에 받을 돈을 미리 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수급조절의 실패로 인한 수입 감소 우려도 언급했다. “최근에 겨울철 채소도 대량 산지폐기를 했다던데, 힘들게 농사지은 농작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면 월급으로 받았던 돈이 다 빚이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농업인 월급제 대안으로 ‘농민수당’ 떠올라

일부에선 농업인 월급제의 대안으로 ‘농민수당’을 도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확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농업·농촌을 지속가능하게 하며 공익적 가치를 지키고 있는 농업인에게 국가가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월급의 의미와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또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농업인과 농가소득을 보완하기 위해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농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먼저 국가가 나서서 예산을 확보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농업·농촌을 위해 힘쓰는 농민에게 농민수당을 지원해야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이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