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상 가공분말, 생과 동종상품 개념 vs 가공품으로 인한 피해 보전불가
국제법상 가공분말, 생과 동종상품 개념 vs 가공품으로 인한 피해 보전불가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4.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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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유럽산 가공품 수입으로 가격 폭락, 구제해야”
농식품부 “분말·가공품 영향 지원대상 아냐…美와 동일”

[기획] 위기의 아로니아 농가, 해법은 무엇인가

가공품으로 인한 피해도 FTA 피해대책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일 열린 아로니아 피해대책 토론회에서 송기호 변호사는 국제통상법에서는 가공품과 생과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국제경제법인 가트 (GATT) 3.2조 등은 무역으로 인한 피해나 효과 등을 판단할 때 소비자의 관점에서 직접적 경쟁 관계나 대체관계에 있는 제품을 ‘동종 상품(like Product)’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어 소비자의 입장에서 아로니아 생과나 분말은 같은 것으로 봐야 하고 이에 따른 피해를 국가가 구제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가공품으로 인한 피해는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로니아 가격폭락의 원인은 ‘수입산 분말’이 명확하고, 수입산 분말은 EU와 FTA 체결 이후 급증했는데도 FTA 피해대책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위기의 아로니아 농가,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는 윤소하 의원, 경대수 의원, 김종회 의원, 이용호 의원, 정운천 의원, 조배숙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 농업신문과 정의당 농민위원회,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 주관으로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아로니아는 회복 불가능한 가격폭락으로 사실상 산업 붕괴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2년 한-EU FTA 발효 이후 유럽산 분말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농가 판로가 막히고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2013년까지 1kg당 3만원대를 호가했던 생과 가격은 현재 1~2000원대로 폭락했다.

2018년산 아로니아는 시장가격 하락으로 출하조차 이뤄지지 않아 2019년 농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박웅두 정의당 농민위원장이 생산농가와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를 통해 구두로 확인한 재고량은 약 2000톤 정도. 통계에 안 잡히는 농가 물량까지 합하면 3000톤 이상이 창고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장 물량은 올여름 지나면 상당부분 품질변화로 폐기해야 한다. 재고량이 있는 상황에서 2019년산 아로니아가 생산되는 6~7월 제값을 받기 어렵다. 농가들이 또 어려운 한해를 지나야 한다는 얘기다.

고소득 작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재배면적 및 생산량 증가가 가격폭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FTA 발효에 따른 수입산 급증이라고 농가들은 입을 모은다.

농가측에 따르면 2017년 분말 및 가공품, 엑기스를 포함한 아로니아 수입량은 1000톤으로 추산된다. 이를 생과로 환산하면 농가들이 2017년 생산한 8700톤과 맞먹는다는 주장이다. 이는 분말 수입량(520톤)만 따지는 정부 통계와는 차이가 있다.

정완조 아로니아 생산자총연합회 비대위원장은 “아로니아는 생과로 먹으면 떫어서 분말이나 농축액으로 가공해야 더 잘 섭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년부터 평당 2000원을 주는 과원정비사업에 나섰지만 폐원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ha당 600만원씩 올해 600ha를 정리할 예정이지만 아로니아를 뽑아낼 때 드는 비용에는 한참 모자라다는 지적이다.

윤소하 의원 등 국회의원과 카톨릭농민회가 주최하고 정의당 농민위원회와 한국농업신문,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가 주관한 ‘아로니아 농가,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가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윤소하 의원 등 국회의원과 카톨릭농민회가 주최하고 정의당 농민위원회와 한국농업신문,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가 주관한 ‘아로니아 농가,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가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FTA로 인한 피해 여부 ‘쟁점’

‘아로니아 사태’ 쟁점은 아로니아가 FTA 피해보전직불금 대상이 되는지 여부다. 농가는 2017년 분말 수입으로 생과 가격하락 피해를 입었다며 2018년 FTA 피해보전대상에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농업인등지원위원회는 지난해 6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FTA이행지원센터 분석을 통해 지원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 불수용 결정했다.

정부는 아로니아 분말 수입량 증가가 국내 생과 가격 하락과 상관관계가 미약하다며 가격 하락은 FTA로 인한 영향보다 국내 생산 증가와 소비 감소로 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FTA피해보전직불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FTA 이행으로 수입량이 급격히 증가해 가격하락의 피해를 입은 품목에 대해 가격하락분의 일부를 보전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작년과 같은 상황이 재현됐다. 농가들은 “FTA로 인한 수입산 분말의 시장잠식 때문에 가격이 하락했으니 당연히 FTA 피해보전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생과가 아닌 가공품이 수입된 것이라 FTA로 인한 피해로 보기 어렵다”며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불수용 법적 근거’ 요구하자 “정부가 정하도록 위임”
송기호 변호사 “정부 주장, 국제통상법상 인정 안돼”

정부는 아로니아를 FTA 피해보전대상에 넣지 않는 이유로 WTO 규정과 미국 무역조정지원제도(TAAF)를 근거로 든다. 미국에서도 생과 아닌 분말 및 엑기스 등 가공품 수입에 따른 간접적 영향까지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이 제기됐다. 박웅두 정의당 농민위원장은 “농촌경제연구원 홈페이지에서 2015년 미국 무역조정지원제도 운영 현장 실사 보고서를 찾아 검토했다”며 “미국에서도 생과뿐 아니라 분말 등 가공품 다 포함해서 지원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법을 바꿔 이미 시행하고 있는데 출장 다녀온 당사자가 농식품부에 잘못된 내용을 보고해서 농가 피해를 확산시킨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작년 심의 근거인 자료가 잘못됐다면 재심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잘못된 정책판단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바로잡는 게 농정당국의 역할”이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농경연 FTA이행지원센터는 “과일 가공식품을 포함한다는 내용은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못찾았다. 출장보고서는 미국 TAAF 제도가 기술지원 및 컨설팅 제도로 바뀐 걸 보고 그리 판단하신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위임했다면 정부가 바꿀 수도 있어

우리나라 FTA 관련 규정은 미국 사례를 대부분 따르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 제도는 2004년 미국을 따라 도입했다”며 “유럽산 분말 수입량이 (아로니아 농가에) 피해를 줬다고 하기엔 인과관계가 미미해서 규정에 따라 어렵다는 말씀 드린다”고 거듭 말했다.

농가들은 피해보전을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항의했다.

농식품부는 “정부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2013년부터 관련 연구를 해 왔고 지침에도 반영했다. 법적 근거라면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7조에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정부에서 정하도록 위임돼 있다. 법은 큰 테두리만 정하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아로니아를 피해보전대상에 포함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여우와 독수리, 토끼에겐 같은 맹수

그렇다면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의 해석은 어떨까. FTA통상법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 이야기는 국제통상법에서도 인정이 잘 안 되는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송 변호사는  “국제통상법에서 여우와 독수리는 모피장수에겐 다른 동물이지만 토끼에게는 같은 맹수라는 얘기가 있다”며 “분말이 아무리 수입된들 생과일과 관계가 없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통상법에선 그렇게 안 본다. 여우와 독수리는 토끼에겐 어차피 자길 노리는 맹수이므로 같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아로니아를 인정하면 오렌지 등 다른 과일에도 선례가 될까봐 부담돼서 그럴 것”이라며 “행여 그렇다 해도 들어오는대로 다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FTA 추진하면서 약속한 게 돈을 쓰겠단 거 아니었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국제통상법, WTO, FTA, 이런 걸 농민들이 알아야 합니까? 피해대책 잘 세우겠다고 말했으면 약속 지키면 될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가들, 감사원에 진정

아로니아 농가들은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정부의 FTA피해보전직불제 진행에 대한 부당성과 과원정비지원사업의 부당성에 대해 진정할 계획이다.

이날 농가들은 정완조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진정의 일체사항을 위임하는 위임장에 서명했다.

정완조 위원장은 “2017년 수입량에 의해 가격하락이 된 사실에 근거해 농업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다”며 “미국 무역조정지원제도(TAAF)에서 분말과 가공품은 제외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KREI 150209 해외출장연수보고’에선 미국에서도 분말과 쥬스, 소스, 잼 등 가공품까지 포함해 인정하고 있다. 당장 시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6월 1일 농업인등지원위원회는 과실가공품의 간접적인 영향까지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며 가공품은 신선농산물과 대체관계가 불분명하고 영향경로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아로니아의 FTA피해보전직불 이행 요청을 거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