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줬다고 경영까지 간섭…RPC 규제 넘어 ‘억압’
돈 빌려줬다고 경영까지 간섭…RPC 규제 넘어 ‘억압’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5.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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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항목 ‘기여도 평가’, 매해 수능 치르는 알피시
산업 육성 위해 규제 완화 추세인데…농정만 ‘역행’

0~2.0% 금리로 벼 매입자금 지원

돈 빌릴 때 은행서 대출심사

담보제공 못하면 돈 못 빌려

대출기한 상환기한 단축 '날벼락'

RPC(미곡종합처리장) 업계 '원성'

"규정 지키면 됐지 자금 용처 간섭은 너무해"

"쌀값 지지, 쌀값 하락시 위험 부담, 벼 보관 등

RPC 순기능 인지해주길"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미곡종합처리장(RPC)의 대출상환 기한 단축을 두고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제도 변경에 따른 정책적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그저 RPC를 옥죄기 위해 규제를 강화한 것 아니냐는 ‘갑질’ 논란마저 불거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존 1년이었던 RPC 벼 매입자금 대출기한을 올해부터 10개월로 두 달 앞당겼다. 이에 따라 RPC들은 오는 6월이면 작년 수확기에 농가로부터 벼를 매입하느라 빌린 자금을 일시에 갚아야 한다.

한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 공장에서 포장된 쌀을 지게차로 나르고 있다.
한 RPC(미곡종합처리장) 공장에서 포장된 쌀을 지게차로 나르고 있다.

 

작년까지는 1년에 4회로 나눠 융자를 받을 수 있어 빌린 돈으로 이전에 빌린 돈을 상환하는 대환대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한꺼번에 받고 한꺼번에 갚는 방식으로 제도를 변경해 따로 자금을 융통해야 한다. 문제는 RPC들이 갚아야 할 돈이 수십억원대여서 융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RPC가 정책자금에 의지해 경영해 온 실태를 비춰볼 때 자산을 처분해 갚기도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RPC 업체들은 농식품부에 제도의 원상복구를 요청했고, 수차례의 협의 끝에 중재안을 마련했다. 당국은 RPC가 해마다 받는 ‘쌀산업 기여도’ 평가 결과와 계약재배 면적, 벼 매입실적 등을 토대로 E 등급부터 A 등급까지 나눠 각각 빌린 돈의 50%~90%까지는 정책자금을 지원해 주고 나머지 50%~10%의 자금은 일반자금을 쓸 수 있게 신용도 평가 완화라든가 지원여건을 마련해 주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A 등급을 받았다면 빌린 돈의 90%는 정책자금 대출로 대환해주고 10%는 일반자금을 빌려 갚아야 한다. 일반자금을 쓰는 기간은 두 달. 수확기 벼 매입자금 융자 지원기간인 9월에 융자를 받아 갚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업계는 하한선을 70%로 해 달라고 재요청하고 있다. E 등급을 받은 업체가 50%를 융통하려면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일단 ‘기여도 평가’가 끝난 다음에 다시 검토하자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말 시작한 쌀 산업 기여도 평가(구 경영평가)는 이달 안에 완료된다.

◆ '벼 안 샀다'는 정부…“1.5배 매입 의무 지켰다” 억울한 알피시

정부는 대출기한 단축 배경에 대해 ‘RPC가 수확기에 벼를 덜 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벼를 사라고 싼 이자에 빌려준 정책자금을 다른 곳에 썼다는 이유도 든다. 그러나 RPC에 따르면 정부의 주장은 모순적이다.

먼저 RPC는 지원자금의 1.5배를 무조건 벼 매입에 써야 하고, 이를 어길 시 자금 회수는 물론 지원 중단, 연체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바로 이 규정 때문에 “자금 용도에 관여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정책자금을 쓰는 대신 책임과 위반시 제재를 받는데 돈의 용처까지 간섭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정책자금이 거저 주는 게 아니라 융자금이라는 데서 이런 불만은 거세지고 있다. 벼 매입자금은 경영평가(쌀 산업 기여도 평가) 결과와 벼 매입실적 등을 토대로 0~2.0%의 금리로 개소당 11억원에서 46억원을 지원한다. 정부는 이자만 싸게 지원할 뿐 RPC업체는 금융기관에 담보를 따로 제공하고 신용도 등 심사를 받는다. 이 때문에 농신보 신용보증액을 50억원으로 늘렸어도 막상 은행 심사에서는 50억원까지 대출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에 경영평가마저 심사 항목을 40개로 늘리고 온갖 규제를 더해 업계에선 '못 해먹겠다'는 원성까지 나오고 있다. RPC 업체들은 매해 ‘쌀산업 기여도 평가’를 받는데 오.탈자 하나만 있어도 감점을 주고 제출시간 1분만 넘겨도 접수를 거부한다. 전담 직원을 뽑아 1년 내내 준비했어도 마감기한을 1분이라도 넘기면 RPC에서 퇴출되는 것이다. 흡사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제도라는 게 진입하면 최소한 몇 년간은 진입심사를 면제해 주는데 RPC는 매년 신규 진입심사를 받는 셈”이라며 “평가주기가 5~3년인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비교하면 동일한 농식품부 사업인데도 차별을 받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벼를 안 산 RPC가 있다면 그 업체를 제재하면 될 일이지 선량한 다른 RPC까지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서까지 피해를 주면 안 된다”며 “중소기업 육성 등 산업발전을 위해 규제완화 추세로 가는 흐름에도 농정만 역행하고 있다. RPC가 쌀값 하락시 위험부담이나 정부 대신 벼 보관비용 등을 떠 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