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금특집]납부안하고 수혜받는 ‘무임승차’ 더는 그만…
[자조금특집]납부안하고 수혜받는 ‘무임승차’ 더는 그만…
  • 박우경 기자 wkpark@newsfarm.co.kr
  • 승인 2019.05.2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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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양돈·낙농 임의자조금에서 의무자조금 전환
과수도 2017년 전환해 정부 매칭 펀드 지원

(한국농업신문=박우경 기자)1992년 양돈과 양계자조금은 농발법에 의거해 처음 임의자조금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조금 사업에 대한 공감의 부족으로 소수의 농가만 자조금을 납부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또 납부를 하지 않으면서 수혜를 받는 일명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초래됐다.

최초로 임의자조금과 의무자조금의 개념을 나눠 설명한 박종수 농학박사는 “일명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의 증가로 초기에 자조금을 납부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조금씩 납부하지 않게 됐다”며 “적어도 내야할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든 납부해야 무임 편승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해 모든 농가로부터 거출하는 의무자조금 개념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축산부문의 양돈과 양계자조금은 각각 2005년 2009년, 임의자조금을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하고 전 농가들에게 자조금을 거출하기 시작한다. 사과, 배, 키위 등 원예 부문도 2017년 1월 의무자조금을 도입하게 된다.

특히 자조금은 ‘농수산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이하 농수산자조금법) 제정에 따라 의무자조금 사업체는 정부로부터 최대 1:1 매칭펀드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품목별 자조금관리위원회가 농가로부터 총 10억을 거출했다면 정부도 10억을 지원한다는 것. 이로인해 의무자조금의 사업기반은 보다 탄탄해지게 된다.

수출·유통과정서 거출 수월한 ‘낙농’ ‘파프리카’…임의자조금 성과↑

낙농(우유)자조금과 파프리카 자조금은 타 자조금 부문과 다르게 임의자조금 형태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999년도 임의자조금을 설립해 운영한 우유자조금에는 83%의 낙농가 참여했으며 그 해 자조금 조성규모는 16억 6천만원에 달했다.
박종수 박사는 “초기부터 많은 농가들의 참여와 더불어 높은 거출액을 달성한 우유자조금의 성공은 획일적인 유통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축산물은 농산물과 달리 가공과정을 거쳐야하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유가공조합과 유가공업체를 반드시 통해야했었다”며 “그 과정이 자조금 거출 길목 역할을 해 농가로부터의 수월하게 거출할 수 있었고 임의자조금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7년이 흐른 2006년, 임의자조금의 성공적 출발을 알린 우유자조금도 의무로 전환하게 된다.
김진중 우유자조금 사무국장은 “첫 번째는 무임승차 문제이고 두 번째는 임의자조금의 예산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의무로 전환해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자는 측면에서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라며 “2004년 한돈·양계가 의무자조금 도입으로 활발한 소비홍보를 전개한 것을 따라 낙농도 전환하게 된 것”이라고 의무자조금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원예부문에서 성공적인 자조금 사례로 손꼽히는 파프리카도 일정규모를 지닌 농가들만을 대상으로 자조금을 거출하면서 임의자조금 때부터 높은 거출율을 보였다.

송강섭 한국파프리카 생산자자조회 사무국장은 “파프리카 자조금은 2017년 의무자조금을 도입했지만 임의자조금과는 크게 차이가 없다”며 “임의때부터 이미 일정 규모의 농가들만을 대상으로 거출했기 때문에 거출이 수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 품목처럼 전체 농가를 대상이 아닌 일정 규모를 가진 소수의 농가를 대상으로 거출함으로서 수월하게 거출할 수 있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파프라카는 생산량에서 수출 비중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반드시 거쳐야하는 수출 절차가 자조금 거출 길목으로 작용함으로써 농가로부터의 거출이 수월했던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로 인해 파프리카 자조금이 임의자조금 때부터 높은 거출율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것.

박종수 박사는 “수출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파프리카자조회가 당시 회장인 조기심 회장을 중심으로 응집이 잘 됐다”며 “파프리카 수출 절차도 낙농의 가공절차처럼 자조금 거출 길목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월한 거출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