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발표 ‘RPC 기여도 평가’…담당 과장 "몰랐다"
‘폐지’ 발표 ‘RPC 기여도 평가’…담당 과장 "몰랐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6.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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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여도평가 결과 설명회’서 담당사무관이 ‘폐지’ 공표
내부 검토조차 안 된 일, 200여 RPC들에 확정된양 공언
“수확기 벼 매입 역할 중요도 강조 목적” 해명했지만
정책 집행 과정의 공정성·객관성 '실종' 의구심 '일파만파'

질의응답 시간, 침 넘기는 소리만

평소 농식품부 일처리 태도 방증

업체들에 지원협력보다 권력 휘두른 듯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미곡종합처리장)들이 골머리를 앓던 ‘쌀 산업 기여도 평가’가 폐지됐다가 하루만에 부활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RPC들은 매해 예전 경영평가로 불리던 '쌀 산업 기여도 평가'를 받는데, 평가지표가 47가지가 넘고 오·탈자 하나에도 감점을 주는가 하면 접수 시간 1분 초과도 용납지 않아 흡사 대입 수능시험을 방불케 한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이 지난달 31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RPC 쌀산업 기여도 평가 결과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이 지난달 31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RPC 쌀산업 기여도 평가 결과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런 '기여도 평가'를 폐지한다고 주무부서가 공언했다. 지난달 31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년도 RPC 기여도 평가 및 벼 매입자금 배정결과 설명회’에서였다. 농림축산식품부 주무부서 담당공무원은 복잡하고 어려운 기여도 평가를 폐지한다고 공표했다.

그는 RPC들 본래의 임무인 '수확기 벼 매입실적'만을 들여다보고 나머지 항목은 관여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폐지한다"고 거듭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귀를 의심했으나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누구 하나 질문하는 이가 없었다. 물론 자기들끼리는 기여도 평가가 폐지됐냐고 묻기도 하고 그렇다고 대답해 주기도 했다. 골치아픈 평가를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누구 하나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말 폐지하겠냐’는 표정이었다.

한국RPC협회, 전국RPC연합회 등 민간협회에는 회원사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설명회에서 들은 내용들을 확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려는 곧 현실화됐다. 이튿날 주무부서 과장에게 직접 확인하니 기여도 평가의 폐지를 내부에서 검토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 없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그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만일 폐지를 이야기했다면 ‘수확기 벼 매입실적’이 중요하니 다른 부분보다 그 부분에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한 발언이었을 거라고 말이다.

농협RPC 140곳, 민간RPC 67곳이 모인 자리였다. 더군다나 지난해 실적에 대한 평가결과를 발표하고 앞으로의 정책 추진방향에 대해서도 전달하는 자리였다. 이렇듯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부 검토를 거치지 않은 중요 정책에 대해 사(私)적인 생각을 확정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또 개인의 잘못을 넘어 평소 농식품부의 일처리 태도를 대변하기도 한다. 정책 집행과정에서의 공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바로 이날 발표한 지난해 기여도평가 결과마저도 공정한 잣대로 일정한 지침을 가지고 제대로 평가한 결과인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회원사들의 반응을 보면 이는 곧 사실로 확인된다. 현장에서 주무부서 담당자로부터 직접 들었음에도 믿지 못하는 것은 정책 입안자와 그 대상이 되는 업체들 사이에 이미 신뢰가 실종됐음을 보여준다.

RPC 업체들은 이날 대출상환 기한 10개월 단축에 따른 정책자금 지원 비율을 최종적으로 확정받았다. 기여도평가 결과에 따라 A등급부터 E등급까지를 정하고 등급별로 90%에서 50%까지 기존 정책자금을 쓸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

동시에 농식품부는 RPC 업체들에게 오는 7일까지 지난 5년간의 재무제표를 일제히 제출하라고 했다. 담당사무관은 지도를 위해 점검하는 차원이라고 얘기했지만 배포된 자료에는 ‘분식회계’가 확인됐을 때 정책자금 배정에서 제외한다고 적혀 있어 또 혼선이 일었다.

이 또한 담당 과장에게 문의하니 “분식회계의 동기가 고의적이고, 그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을 때는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판별하고 그 증거까지 찾아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곧 판별 기준이 정확히 서 있지 않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특히 설명회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하는 업체가 이날 모인 200여 RPC들 중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을 보면, 평소 업체들을 대하는 주무부서의 태도가 상생.협력 지원보다 감찰.사정기관화 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확기 벼 매입을 통해 농가소득을 지탱해온 RPC에게 최근 정부가 온갖 요구를 해 와 때려치고 싶은 심정이다"며 “농식품부는 현재 추진하는 정책, 또 추진할 예정인 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고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전면 점검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