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작황 좋고 재배면적 늘어 공급과잉…판로 확보 ‘비상’
보리, 작황 좋고 재배면적 늘어 공급과잉…판로 확보 ‘비상’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6.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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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생산량 17만톤 전망, 국내 수요량 약 5만톤 초과
2011년 수매제 폐지 이후 나타난 두 번째 공급과잉
작년 밀 농가 작목전환에 '전량매입' 기대심리 때문

농협-한국주류산업협회, 주정용 5만톤 계약재배

2018년산 과잉 물량 더 사 2020년 원료까지 확보

농식품부-농협-주류협회 대안 찾으려 머리 맞대

재고관리.보관비 기업들 부담...주정회사에 재고 넘기기도 어려워

마땅한 대량 수요처 없는 특성...쓸 만큼만 생산하는 '적정생산'이 '답'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올해 보리값이 위태롭다. 기상 호조와 재배면적 확대에 따른 생산량 증가가 원인이다. 2019년산 보리 생산량은 국내 수요량 12만톤을 약 5만톤 초과한 17만톤이 예상된다. 농협의 계약재배 물량 5만톤 외엔 마땅한 대량 수요처가 없다는 것도 판로 확보에 대한 고민을 가중시킨다.

2012년 수매제를 폐지한 보리는 생산기반 보존을 위해 농협과 한국주류산업협회(회장 강성태)가 MOU를 맺고 매년 5만톤을 주정용 등으로 구매해 왔다. 올해 초과 생산된 비계약 물량의 처분방안을 놓고 정부와 농협, 주류협회는 연일 회의를 열고 있지만, 아직 적합한 대안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 민간가공용 등 국내 내수 12만톤 초과

보리의 과잉생산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19년산 보리는 파종기 강우가 잦았던 2018년보다 과잉물량이 훌쩍 늘었다. 2018년 15만1000톤이었던 생산량은 올해는 더 늘어나 농협의 계약재배 물량(5만톤) 만큼의 과잉이 예상되는 약 17만톤이다.

보리의 국내 수요량은 12만톤 수준이다. 농협에서 계약재배 물량 5만톤을 주정용(3만5000톤), 맥주용(1만2000톤), 보리차용(3000톤) 등으로 공급하고 식혜, 찰쌀보리 등 민간에서 가공용 및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7만톤이다.

보리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파종기 기상 여건에 따른 작황 호조와 재배면적 증가 때문이다.

그간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밀 재배농가들의 작목 전환과 농협의 과잉물량 전량 매입에 대한 기대심리가 재배면적을 넓힌 데 한몫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 2018년 과잉물량 전량을 농가들로부터 사들였었다.

올해 역시 농가들은 전량매입을 요구하고 있다. 딱히 판로가 마땅하지 않은 농가들로서는 기댈 데가 농협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농협도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작년에 사들인 물량도 재고로 남아 있는 데다 올해 과잉 물량까지 소화해줄 수요처를 찾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한편 수매제 폐지 이후 보리 생산량은 2015년 11만2000톤(재배면적 3만4000ha), 2016년 10만8000톤(3만7000ha), 2017년 11만톤(2만9000ha)으로 국내 수요량에 약간 못 미치다가 2018년 15만1000톤(4만7000ha)으로 생산량과 재배면적이 크게 늘었다.

보리 생산기반 유지…5만톤 계약재배

1948년부터 실시해 온 보리 수매제는 2012년 폐지됐다. 정부 수매제 하에서 과잉생산이 해를 거듭하다 5개년산 물량이 재고로 남자 정부는 2008년 보리수급안정대책을 통해 수매제 폐지를 결정했다. 그때부터 2012년 폐지할 때까지 매년 정부 수매가를 2~3%씩 단계적으로 낮춰가면서 농가들에게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2012년엔 남았던 보리가 수매제 폐지 첫해엔 훌쩍 줄어 오히려 생산기반 붕괴가 우려스런 상황이 됐다.

이에 농협은 2011년 한국주류산업협회와 ‘중장기 보리계약재배 협약’을 체결하고 매년 5만톤 정도를 주류협회가 주정용으로 구매함으로써 보리 생산기반을 유지하도록 했다. 농가에 생산을 독려했지만 많이 안 심어 물량 부족 탓에 보리의 시중가격은 계속 좋았었다. 그래서 농협은 2017년까지는 주류협회에 공급키로 한 계약재배 물량 5만톤 확보에 애를 먹었다. 사실 MOU 체결 후 몇 년 동안 공급한 물량은 계약물량보다 약간 모자랐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과잉생산으로 돌아서더니 올해는 남는 물량이 더욱 초과할 지경에 이르렀다.

주류협회, 주정용 초과 구매시 소주 원가 ↑

한국주류산업협회는 보리가 남아돌던 작년 농협과 약속한 5만톤 외에 1만5000톤을 더 사줬다. 원가가 3배나 낮은 타피오카를 써도 되지만 국내 농가소득에 기여하고자 하는 일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다. 그러나 올해 남는 양까지 사는 것은 주류협회로서도 여간 고민스런 게 아니다. 작년 샀던 물량은 2020년까지 넉넉히 쓸 수 있는데다 타피오카보다 단가가 비싼 보리를 많이 쓰게 될 경우 원가 인상을 피할 수 없고 자연히 주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보리는 주정용으로 사용하는데 소주에서 주정이 차지하는 원가 비율이 20%에 달한다.

그렇다고 농가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도 없는 주류협회는 요즘 농식품부와 농협 등과의 회의에서 타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일 남는 물량까지 받는다면 계약재배 물량보다 1만원 빠진 2만7000원(kg)에 사겠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다. 현재 계약가격을 올려서 구매해주길 바라는 농가들의 바람과 배치되는 상황이라 대안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옥주 농협경제지주 양곡부 부장은 “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계약재배를 하는 건데, 장기적으로 과잉생산이 되면 계약재배가 필요 없어진다”며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가격 하락으로 보리 재배 농가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쓸 만큼 생산하는 적정생산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양재덕 한국주류산업협회 이사

대량 수요처 없는 특성…농가 ‘적정생산’ 기반 다져야

소속 회원사들, 사회공헌 차원 국산 농산물 사용

해마다 투입되는 재고 관리·보관비 부담은 기업 몫

-소주 만드는 주정용으로 타피오카를 많이 쓴다고.

보리와 가격 차이가 3배 난다. 세계적으로 전분질이 가장 많은 농산물이다. 버블티의 알갱이를 타피오카 전분 가지고 만든다. 예전엔 태국 걸 썼지만 기계화로 모래 등 불순물이 달려 들어가는 문제가 있어 수작업으로 깨끗이 손질한 베트남산을 사다 쓰고 있다.

-보리가 과잉이라 처리가 문제라고 한다.

농식품부, 농협 등과 계속 얘기하고 있다. 수매제 폐지 이후 몇 년 동안은 재고가 없어서 가격이 비싸졌다. 그래서 물량이 가격이 비싼 시중으로 나가는 바람에 계약재배 첫해엔 협회로 들어오는 물량이 없었다. 거의 3년 정도는 못 받다시피 하고 지나갔다. 그러다 최근에는 재배를 기피하던 농가들도 가격이 좋으니 점차 재배를 시작한 것 같다. 작년 밀 재고 처리에 애를 먹은 농가들이 보리로 전환한 것도 올해 보리 과잉생산의 한 원인인 듯하다. 어차피 농가소득에 기여하기 위해 계약재배에 동참한 거라 농가들이 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시중으로 판매하는 것엔 위약 규정을 두지 않았다.

-보리는 마땅한 수요처가 없다.

주정용 외에는 대량 수요처가 없기는 하다. 그래서 협회가 작년에도 계약물량 외에 1만5000톤을 더 샀다. 2020년까지 쓸 수 있는 물량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올해도 전량매입하기에는 많이 부담스럽다. 농가들로선 농협만 바라볼 수밖에 없고 농협도 협회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겠지만, 협회는 구매 이후의 보관료 등을 감당해야 한다.

-구매 비용 외에 보관료 말인가.

보관창고도 시설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가격 부담 때문에 보통 정도의 보관시설에 보관한다. 또 바구미 등 병충해 방제도 해야 하고, 소독약값, 인건비 등이 재고 처리할 때까지 계속 들어간다. 게다가 보리만 있는 게 아니다. 중간에 뭐가 하나씩 생긴다. 작년에 밀을 썼고 몇 년 전에는 감자도 썼었다. 보리 양을 줄이고 쓰는 거라 보리 재고는 신규 매입물량과 함께 계속 늘어가게 마련이다. 일단 매입하고 나면 보관에 대한 책임이 협회에 있는 거라 무척 부담스럽다.

-매입 조건이 있다던데.

농가에선 기존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 사실 계약 시점에서 가격 협상을 해야 하는데 시기상 늦었다. 남는 물량을 협회가 매입한다면 비계약재배 물량은 1만원 낮게 매입하겠다고 했다. 전량매입에 가격인상을 원하는 농가들 의사와는 반대되는 상황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가격은 높게 책정 안 할 것이다. 가격을 낮춰 많은 물량을 사야 더 많은 농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겠는가.

-보리 매입은 언제부터.

수매제 하에서도 재고를 사다 썼다. 식용하기 힘든 보리를 사서 썼는데 굉장히 오래 됐다. 예전엔 고구마를 많이 썼지만 잘리고 말리는 데 일손이 너무 들어 농촌 현실과 안 맞더라. 시중에서 인기가 좋기도 하고.

-난감하겠다.

농가들이나 농협의 심정은 이해한다. 그런데 이미 노력하고 있는 주류산업협회 회원사들에게 또 부담을 지울 수도 없지 않겠나. 농가소득 보전이라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하고 있지만 당장 보관료 등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여러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방법은 ‘적정생산’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