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과수원 주인이 오늘 품팔이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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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7.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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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금 부당수령 고발대회…농지제도 개선 촉구
20년 임대 계약도 지주 한 마디면 '물거품'

공익형 직불제 시행 이전에 농지 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충북 단양군에서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던 한연○씨는 지금은 남의 집 품을 팔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간다. 한 씨는 서울에서 어린 나이에 자동차 정비공장 공장장까지 지내다가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해 귀농을 택했다.

귀농한 한 씨는 산골짜기 다랑논 700평을 빌려 돌을 걸러내고 농지를 만들었다. 처음 몇 년간은 수확물이 아예 없다가 어느 시점부터 사과 농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그도 잠시 얼마 되지 않아 농지는 팔렸다. 새 주인이 나타나 사과나무를 몽땅 캐내라고 했다. 집주인과 쓴 20년 임대차 계약서는 하루 새 휴짓조각이 됐다. 처음 빌릴 때 3만원이었던 농지가격은 10만원으로 훌쩍 올라 있었다. 한 씨는 8년만에 농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 씨는 “농사짓는 사람 일할 때 맘이 편해야 좋은 농산물이 나온다.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계획 세운 기간만큼이라도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직불금 부당수령 고발대회’에서 임대농지를 빼앗긴 사례자들이 농지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직불금 부당수령 고발대회’에서 임대농지를 빼앗긴 사례자들이 농지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 씨는 지주 마음대로 20년 계약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현 농지제도의 개선을 이날 고발대회에서 요구했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전용○씨는 한국농업의 종기와 같은 존재를 직불금 문제라고 규정했다. 전씨는 “저 논밭이 열심히 일하면 내 소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제 농지의 90%는 남의 땅”이라며 “지주 명의의 통장으로 농약값부터 수매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식으로, 소작인과 지주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가짜 농민을 합법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자식 키우고 부모님 모시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농업면적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 개선이 없으면 지역사회에서 임차농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자기 농업실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농지소유와 이용실태 전수조사에 대한 범의를 모으고자 마련됐다.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인 김호 단국대 교수는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가 제기된 지 10년도 더 된 것 같다”며 “농지가 1년에 여의도 면적의 50배 정도 감소했다. 직불금 제도는 농업 지속과 식량안보의 중요한 기반이므로 반드시 바로잡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농지는 해마다 서울시 면적의 2~3%씩 감소했는데, 이는 농지제도를 계속 완화하면서 비농업인에게 농지 소유를 쉽게 한 결과다.

김 교수는 특히 “직불금 개편의 전제조건으로 비농업인에게 농지 소유를 쉽게 한 제도적인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익형 직불제를 통한 직불금 인상분은 귀농인에게 가고 농지 임대료만 올라갈 뿐이다”고 꼬집었다.

현행 관련법 규정도 비농업인의 농지소유를 차단할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에 따르면 농지 불법 소유 사실이 적발됐을 때 처분명령을 내리는데 농지 소유자는 6개월 내 처분만 하면 아무런 제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