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자동시장격리 법제화로 예측가능한 쌀 시장 만든다
[기획] 자동시장격리 법제화로 예측가능한 쌀 시장 만든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7.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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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자동시장격리제 입법 필요성 국회토론회
'골든타임' 지킨 신속한 격리로 쌀 시장 안정
유통주체들 안정적 사업 영위, 농가는 농사에 전념
발동기준·물량·주체 등 제도 도입 요건 논의 활발

RPC 가격교섭력 증대…농가소득 보전 효과

발동 기준가격, 쌀 목표가격과 연동시켜야

단경기.수확기 두 차례 격리해야 효과 커

농협RPC 과다매입 ‘도덕적 해이’ 우려도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쌀 자동시장격리제 입법 필요성’ 토론회에서 김광섭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팀장, 김광섭 회장, 양승룡 고려대 교수, 문병완 농협RPC협의회장, 노재선 교수, 위남양 WE행복경영연구원장,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 임정빈 서울대교수, 이익재 대한곡물협회 부회장.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쌀 자동시장격리제 입법 필요성’ 토론회에서 김광섭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팀장, 김광섭 회장, 양승룡 고려대 교수, 문병완 농협RPC협의회장, 노재선 서울대 교수, 위남양 WE행복경영연구원장,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 임정빈 서울대교수, 이익재 대한곡물협회 부회장.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쌀 자동시장 격리제도 도입 효과로 산지유통업체들의 가격교섭력이 커질 전망이다. 유통업체들이 가격교섭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쌀값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로 농가 소득보전과도 직결된다.

이익제 대한곡물협회 부회장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쌀 자동시장 격리제 입법 필요성’ 토론회에서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노력한다고 해도 투매현상이 일어나는 한은 쌀값이 지지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쌀 자동시장 격리제는 그해 예상되는 수요 초과량을 정해진 원칙에 따라 신속히 격리해 시중 쌀값을 지지하는 제도로 공익형직불제 개편과 함께 쌀 수급 조절 대책으로서 논의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벼값은 몰라도 쌀값은 상당히 하락중이다. 재고 부담을 느낀 일부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이 20kg에 4만2000원씩 풀어내고 있다”며 “밴더나 바이어들이 매장에서 빼겠다고 하면 RPC는 달라는 가격에 줄 수밖에 없다. 쌀값을 지지해야 하지만 재고가 부담스러운 RPC가 가격교섭력을 가질 장치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문제다”며 현재 쌀 유통 상황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그는 “쌀값이 지지되고 시장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유통 주체들이 자존심을 갖고 당당히 시장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동격리가 법제화됐을 때 이런 부분에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다. ‘이 가격엔 못 내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격리 방법과 관련해선 민간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RPC들이 먼저 인수하고 나중에 격리하면 농민과 아무 상관없게 된다. 정부는 행정 손실 있더라도 시장에 재빠르게 신호를 줘야 한다”며 “8월 이전에 구곡 재고가 시장에서 격리돼야 신곡 가수요가 발생해서 제가격을 받게 된다. 단경기에도 격리조치를 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확기에 RPC들이 농가로부터 일단 매입을 한 후 수요초과 물량을 정부가 격리하면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농민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럴려면 RPC들이 운영예측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속히 신호를 줘야 한다.

부작용 우려 또한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농협을 통해 벼를 매입하게 하면 선의의 피해를 보는 민간RPC가 있을 수 있다. 평년보다 많이 매입해 못 팔아도 국가가 격리해주니 벼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비싼 값에 팔면 경지면적이 적은 지역의 민간RPC는 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장은 “농협은 폭리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손질 안 해도 될만한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보자 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올 연말 안으로 법제화가 완료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쌀 시장격리는 2001년 풍작으로 가격하락폭이 커지고 농가벼 판매가 어려워지면서 정부가 50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한 것이 시초다. 양정개혁 이후 2017년까지 수확기에 8차례에 걸쳐 추진됐다. 그러나 막상 격리까지 예산당국과 협의하는 등 여러 절차를 거치느라 시기를 놓쳐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예상되는 수요 초과량을 시장에서 자동으로 격리하도록 명문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토론회는 해당 제도의 법제화를 위해 선행돼야 할 조건, 격리방법·시기 등을 논의하는 자리로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과 농협이 공동 개최했다.

위남량 WE행복경영연구원장(전 농협경제지주 양곡부장)이 주제발표를 했으며, 종합토론에는 김광섭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 이익재 (사)대한곡물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을 비롯해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내곡물관측팀장,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장이 참여했다.

서울 시내 한 점포에 쌀포대가 쌓여 있다. [사진=유은영 기자]
서울 시내 한 점포에 쌀포대가 쌓여 있다. [사진=유은영 기자]

 

'골든타임' 놓친 격리...농협RPC 적자 1천억원

쌀 시장격리는 정부가 2001년 50만톤을 격리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까지 수확기에 8차례 행해졌고 수확기 이후에도 추가로 3차례 시장격리를 했다. 하지만 수확량에 대한 실제 농가의 현실과 정부 통계와의 괴리, 격리물량의 부족, 정부 보유재고 과다로 인한 새로운 수급안정대책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이 격리 효과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예산당국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격리 적기(골든타임)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위남량 원장은 ‘쌀 자동시장격리제 왜 필요한가’ 주제발표를 통해 “2009년 2014년 2015년산은 한꺼번에 하질 못하고 일부만 격리했다”며 “수확기 자동으로 격리하면 발생하지 않을 역계절가격 진폭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런 손실이 다 RPC로 갔다”고 말했다.

이어 “(RPC가) 수확기 필요 물량을 안정적으로 사들이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쌀 자동격리)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격리의 원칙과 기준을 법에 명시하면 유통주체들이 수급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되므로 시장안정성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실제 시장격리를 두 번에 걸쳐 한 2009년의 이듬해 농협RPC는 1077억원의 적자를 봤다. 2015년, 2016년에도 각각 340억원, 299억원 손실이 발생했다.

하지만 자동격리 법제화를 위해선 발동기준, 격리물량 및 격리주체, 격리방법 등 의견을 모아야 할 작업이 많다. 위 원장은 격리주체와 관련,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에 업무대행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비축용 이외의 추가적인 시장격리용 매입을 정부가 직접 하면 가격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WTO 감축대상보조제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쌀 보조금 총액(AMS)은 1조4900억원이다. 이런 이유로 현행 양곡관리법에 시장격리제가 법제화돼 있지 않다.

정해진 물량보다 10% 초과 격리해야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의 궁극적 목표는 농가소득 보전에 있다. 이 제도의 대상자가 되는 쌀 농가의 의견은 어떨까. 김광섭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자동시장격리제가 직불제 개편에 따른 목표가격제도의 대안이 아닌, 그 자체로써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법제화 단계에서 농업현장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격리의 발동 기준가격과 관련 ▲2018~2022년 쌀 목표가격과 연동 ▲생산비 및 물가와 연동돼 주기적으로 변화할 것 등을 요청했다. 격리물량도 수요초과량보다 10~15% 정도 더 격리해야 시장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쌀 자동시장격리 기준 시나리오 3가지

공급초과 물량이 수요량의 5% 이내= RPC·DSC가 농가로부터 자체판매계획량+시장격리 예상량을 매입 후 입찰방식으로 정부 물량 매입

물량이 수요량의 5% 이상= 공공비축 수매와 같이 시장격리 물량을 농가에 배정하고 농협경제지주를 통해 직접 격리

역계절진폭이 –3% 이상 확대 또는 지역별 심각한 수급불균형 발생= 농협양곡(주)이 유통센터 및 거점 센터 통해 격리 물량 매입

◆토론자 한 마디

김인중 농식품부 식량정책관=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 후 농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쌀값이므로 기본적으로 자동시장격리제 갖고 가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시장격리가 제도화되면 WTO 감축대상보조 및 AMS 한도(1조4900억원) 산입여부와 방식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 자동시장격리제는 여론조사를 통해 도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이중곡가제로 돌아가는 효과가 있다. 변동직불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쌀 생산을 줄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 감축을 전제로 하는 생산조절형 변동직불제,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 자동시장격리제 도입 논의 배경이 쌀 변동직불제 폐지 이후 가격하락으로 인한 쌀 농가의 소득안정장치 부재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보다 근본적인 소득안정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쌀 이외 논 대체 가능 주요작목을 포함하는 생산비연계 방식의 가격하락 대응 직불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김종인 KREI 팀장= 제도도입의 목표가 농민 소득보전이라면 생산자들에게도 일정부분 그에 대한 책임 수행이 전제되는 것이다. 평년가격의 80%를 보존해 주고 출하시기 조절 등 정부정책에 농민들이 반응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일본은 주요 작물에 대해 경영안정 기금을 적립하는데 25%를 농민이 동참해야 혜택 받을 수 있다.

문병완 농협RPC협의회장= 제도가 법제화되면 RPC를 비롯한 시장참여자들은 매년 수급상황 예측이 용이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사업 영위가 가능해지고 농가는 판로 확보 고민없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법제화의 원활한 추진에 뜻을 모아주시기 바란다.

김광섭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 격리 발동기준을 2018~2022년 쌀 목표가격과 연동시키고, 이 기준을 생산비 및 물가와 연동시켜야 한다. 자동시장격리제는 어떤 제도의 대안이 아닌, 그 자체로써 꼭 필요한 제도로 하루빨리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익제 대한곡물협회 부회장= 제도도입시 RPC들의 가격교섭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산지유통 주체들이 이 제도를 등에 업고 당당히 시장에 대응할 때 고품질 정책 정착 및 농가소득 보전 목표를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