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농업 속 일본용어] “다마가 커서 2다이가 잘 나가요”…도매시장 점령한 일본용어
[기획: 농업 속 일본용어] “다마가 커서 2다이가 잘 나가요”…도매시장 점령한 일본용어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08.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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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 종사자 사이에서 ‘전문용어’처럼 사용
농진청·농협·가락시장 노력에도 관행이라 개선 어려워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일본 아베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조치로 일본 불매운동에 불이 붙은 가운데 우리 농업 속 일본용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언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듯 한 나라의 각 산업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은연중에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한국어 말살 정책을 쓴 것도 이런 이유다.

다른 산업에서도 그러하듯 우리 농업에서도 일본용어 또는 일본식 한자어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농산물인 쌀 품종조차도 히토메보리, 아끼바레, 고시히카리 등 일본 품종이 비싸게 팔리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은 일제 강점기 역사와 맥을 같이하면서 고착화돼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선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관행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가락시장 농협공판장에 과일 상자가 쌓여 있다. 중도매인 등 유통인들은 농산물 매매 과정에서 과일 크기를 ‘다마’, 과일 수량을 ‘다이’ 등 일본어를 사용해 소통하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 농협공판장에 과일 상자가 쌓여 있다. 중도매인 등 유통인들은 농산물 매매 과정에서 과일 크기를 ‘다마’, 과일 수량을 ‘다이’ 등 일본어를 사용해 소통하고 있다.

지속적인 계도·홍보 필요

“중간 다마로 3다이가 많아요.”

농수산물 도매시장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일본용어가 관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경매사와 중도매인, 하역노조 등 도매시장 관계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시장 용어로 흡사 전문 용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다마는 일본어로 구슬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농산물도매시장에서는 둥근 과일이나 채소의 크기를 말한다. 다이는 출하용 상자를 의미한다. 한 상자에 몇 개의 과일이 담겨 있느냐는 뜻으로 사용한다. 3다이는 한 상자에 농산물이 30~39개 담겼다는 의미다.

시장에서 사용되는 일본어를 비롯해 은어·속어 등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농협경제지주는 2016년 전국 농협공판장에 ‘올바른 도매시장 용어집’을 배포했다. 국립국어원의 도움을 받아 ‘다이’는 ‘대’로 ‘다마’는 ‘과일크기’로 잘못된 용어 57개를 순화했다.

앞서 2013년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도매시장 관련 개선용어 조사표를 작성하고 가락시장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계도에 나섰다. 당시 조사에서 의미가 확대된 일본 용어를 새로 발굴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까마’는 기존 일본어의 동업자 ‘나까마’에서 의미가 확대돼 속어형식으로 사용되는데, 주로 하급품을 취급하는 차량 단위 상인과 일반 정품이 아닌 비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발굴용어 중 ‘부모도시’는 일본어 되돌리다는 뜻의 ‘부모도시’에서 유래했는데 장려금을 의미한다. 물론 기존의 용어 ‘덴바이’(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 ‘오대(大手를 뜻하는 오오테에서 유래, 큰손, 거상) 등도 관행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개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농협공판장이나 각 도매법인이 제공하는 시황정보에서 표준어 사용이 자리 잡은 정도다.

공사 관계자는 “유통인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규제하기는 힘들다”며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역시 꾸준한 언어순화 캠페인을 벌여 오고 있다. 2015년에는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농업 현장에서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109개를 골라 순화작업을 했으며, 2015~2016년에 매달 5개씩 이달의 순우리말 농업용어를 공개한 바 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4월 ‘개선 대상 일본어 투 식품용어 목록’을 만들어 배포했다. 자료집에 따르면 우리가 무심코 쓰는 ‘간식(間食)’, ‘낑깡(金柑)’도 일본어에서 유래한 용어였다. 농진청은 간식을 ‘군음식’, ‘새참’으로, 낑깡을 ‘금귤’, ‘동귤’로 순화하자고 권장했다.

강창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그 사회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은 그 나라 말”이라며 “바꿀 수 없거나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 관행적, 또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일본 용어는 가능하면 한국말로 바꾸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