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WTO 개도국 지위 포기
[팩트 체크] WTO 개도국 지위 포기
  • 연승우 기자 dust8863@newsfarm.co.kr
  • 승인 2019.09.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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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지위 포기는 차기 협상부터 유효
쌀 고율관세, 농업보조금 감축 예상

(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지난 2월 미국이 WTO 이사회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 결정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후 미국은 행정명령을 통해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과 터키, 멕시코 등 개도국 지위를 갖고 있는 나라에게 개도국 지위 포기를 종용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농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고심하고 있다.

① 개도국 지위 포기하면 혜택이 없어진다?

WTO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최빈개발도상국으로 분류했고 최빈개도국은 UN의 기준을 따랐다. 반면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준은 없으며 자기선언 방식이다. 즉 우리나라가 개도국의 관세율을 반영한 양허안을 WTO에 제출하고 다른 나라에서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없으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1995년 UR에서 농업분야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농업 현실은 개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을 농산물 수출보다는 공산품 수출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1995년 WTO는 개도국에 대해 선진국보다 보조금 총량, 관세감축, 민감품목, 특별품목 등의 혜택을 주었고 이때 결정된 혜택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지금까지 받아온 개도국 혜택은 유지된다. WTO 규정 상 새로운 라운드(협상)를 통해 결정되지 않으면 1995년 UR 기준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2001년 WTO는 도하에서 개발도상국의 혜택을 줄이고 선진국의 수출장벽을 낮추기 위한 라운드(DDA)를 시작했지만 2008년 이후 정지돼 있는 상황이다. DDA협상에서 가장 큰 쟁점 역시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유지 여부였다.

DDA는 사실상 무산됐지만 미국이 중국과 한국 등 특정국가를 지목하면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봤을 때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면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고 새로운 라운드가 완료될 때까지 개도국 혜택은 유지된다.

② 쌀 관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2004년 쌀 관세화를 10년 유예하는 것으로 결정한 이유는 DDA였다. DDA협상에서 한국은 개도국 지위 유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쌀을 관세화하게 되면 고율 관세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따라서 안전장치로 10년간 유예하기로 하면서 밥쌀용 쌀도 수입하기로 했고 TRQ물량도 늘렸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상태에서 새로운 라운드를 통해 농업협상이 완료되면 우리나라는 쌀을 특별품목으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513%의 관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쌀을 513% 관세화하기로 2014년 결정한 이유도 DDA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DDA협상에서 제시된 선진국 수준으로 관세율을 적용하게 되면 390% 이하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쌀 수입이 늘어날 가능서도 커진다. 농식품부는 쌀은 지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WTO에서도 주식인 쌀에 대해서는 민감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쌀에 대해서는 특별품목으로 지정할 수 있게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쌀 이외에도 민감품목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개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일부품목은 개방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③ 개도국 지위 포기하려면 공익형 직불로 바꿔야 한다

지난해부터 공익형직불제 개편이 농업계 이슈였다. 개도국 지위 포기가 여론화되면서 일부 국회의원이 현재 직불제로는 보조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농업보조금의 대부분은 쌀 변동직불금과 고정직불금이다. 쌀 변동직불금은 AMS이고 고정직불금은 최소허용보조에 해당된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게 되면 AMS는 WTO UR 기준으로 현재 1조4900억원에서 절반인 7000억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쌀 변동직불금 역시 최대 7000억원까지 밖에 지급하지 못하게 된다.

최소허용보조는 농업 생산 총액의 10%까지 지급할 수 있다. 공익형 직불은 AMS가 아니기 때문에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공익형 직불제 개편은 농정의 틀을 전환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개도국 지위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④ 그렇다면 향후 전망은

개도국 지위에 관한 최종 결정은 10월 23일 이전에 해야 한다. 미국이 WTO 이사회에 개도국 지위 결정방식 변경을 제안했지만, 이사회에서 결정하지 못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10월 23일까지 한국, 홍콩, 멕시코, 싱가폴, 터키, 중국 등이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을 하지 않으면 미국의 안보, 무역, 경제관련 기구와 공동조치를 취할 수 있고 부당하게 개도국 지위를 누리는 국가의 명단을 공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즉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가 10월 23일 전에는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재 미국의 보복조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도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하지만 농민단체들을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