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 특집] 공익형직불제 개편과 대안을 찾아서② 직불제 개편과 농가소득 보전
[창간7주년 특집] 공익형직불제 개편과 대안을 찾아서② 직불제 개편과 농가소득 보전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0.1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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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산 ‘농가소득 안정장치’
자동시장격리제·의무자조금 대안 부상
정부와 업계 이견에 절차상 문제 걸림돌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공익형 직불제로의 직불제 개편은 지금의 농가소득 안정장치인 변동직불금 폐지를 포함하는 것이라 농가들의 우려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국내 대표적인 쌀농가 단체인 (사)한국쌀전업농연합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까지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변동직불금을 대신할 농가소득 안정장치를 마련했을 때를 전제로 한다. 정부와 업계는 그 대안으로 신곡 수요량을 초과하는 물량을 시장에서 자동 격리하도록 하는 ‘자동시장격리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쌀 농가들 스스로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쌀 의무자조금’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예산 따는 동안 격리 적기 놓쳐

쌀값 ‘골든타임’ 수호에 법제화 필수

정부 명확한 입장 표명 없어 ‘안갯속’

농가의 정부 불신 ‘걸림돌’

쌀값이 떨어졌을 때 시세의 80%를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은 지금까지 쌀 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입해 최소한의 농가소득을 보장해 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예정대로 2020년 개편된 직불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함께 논의돼야 할 농가소득 안정장치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이 간간히 거론되고 있을 뿐 농가와 산지유통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과 본격적인 논의는 전무한 상태다.

자동시장격리제는 그간의 시장격리가 때를 놓쳐 효과를 못 봤다는 업계의 지적에 따라 도입이 거론돼 왔다. 통계청의 신곡 생산량 발표 후 과잉물량 격리에 필요한 예산을 따러 기재부를 설득하는 동안 시장가격이 이미 형성돼 격리가 쌀값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농가들은 시장격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자동시장격리제의 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 열린 쌀전업농전남도연합회 이사회에서 조민경 농림축산식품부 농가소득안정추진단 서기관은 “수확기 수급안전장치로서 시장격리를 법제화할 것”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농가들은 이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전남의 한 쌀 농가는 “약속 안 지키는 게 문제다. 사탕발림 해 놓고 막상 법이 시행되면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농식품부는 자동시장격리제를 임의 조항으로 표시하려고 해 농가와 갈등을 겪었다. 경북 쌀 농가는 “확실한 대안 없는 변동직불금 폐지는 반대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무자조금 조성, 지금 시작해야

자동시장격리제가 수급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쌀농가들의 자구책으로 의무자조금 조성이 거론된다. 쌀 생산자들이 일정한 금액을 모아 소비 감소와 재고 누적, 가격 하락 등 위기에서 쌀 산업을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

2015년 조사에서 약 80% 농가가 쌀 의무자조금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응답할 만큼 쌀 농가들은 일찌감치 의무자조금 조성에 중지를 모았다. 그런데도 정작 도입이 지지부진한 데는 현실적인 장벽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81만 쌀 농가들을 방문해 40만 이상의 동의서를 받아야 하고, 또 그 40만 농가의 쌀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기준을 맞춰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쌀전업농연합회(회장 김광섭)는 쌀에 한해 기준 면적을 2ha이상으로 두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해 왔다. 의무자조금 조성에 면적 기준을 두면 농가 수가 10만으로 훌쩍 떨어지게 된다. 김광섭 회장은 “자조금이 농산물 소비촉진활동에 주로 쓰이는 점을 감안하면 자가소비에 그치는 2ha 미만 농가는 자조금이 불필요한 측면이 있다”며 국회의원과 면담에서 특별법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지난해부터 의무자조금 설치 요건이 완화돼 청신호가 켜졌다. 자조금법 시행규칙 제5조 제3항에 해당 농수산물을 재배하는 농가 수가 전체 농가 수의 절반을 넘어야 할 것과 해당 농수산물 재배면적이 전체 농수산물 재배면적의 50%를 초과하는 단체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두 요건 중 한 가지만 갖춰도 된다는 유권해석이 올해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농가의 동의서를 받는 일은 정부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응철 자조금 통합지원센터장은 “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품목의 수급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며 “직불제 개편과 함께 쌀 의무자조금 조성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위남량 WE행복경영연구원장(전 농협 양곡부 부장)

“자동시장격리제, 농가와 업계에 이득”

예측 가능한 시장 형성…풍년 들어도 쌀값 유지

유통업체는 손해 안 보고 제값 받고 팔 수 있어

농가 염원대로 자동시장격리제 법제화가 이뤄지고 나면 방법론이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격리 주체와 격리물량 및 가격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들이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일단 자동시장격리제의 도입에는 정부와 업계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요건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위남량 WE행복경영연구원장은 “개편 직불제는 변동직불제를 대신할 수급안정장치를 갖고 시행해야 쌀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제도의 효과를 위해선 통계의 신뢰성과 정책의 일관성, 예산 등 세 가지 요건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위 원장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자동시장격리제 관련 연구를 함께 수행했으며 올해 7월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와 황주홍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이 공동 주최한 ‘자동시장격리제 입법 필요성’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한 바 있다.

-제도의 시행방법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어떤 경우에 얼마만큼의 물량을 얼마에 누구를 통해 매입할 것인지는 시행령, 시행규칙에 넣을 것으로 정부가 아직 발표할 입장이 아닐 것이다.

정리하자면, 공익형직불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선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이 필수적이고 이 제도의 효과를 위해선 통계의 정확성과 정책의 일관성, 그리고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역계절진폭은 자동시장격리제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 수급안정이 되면 시장 예측이 가능해지므로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유통업체들도 계절진폭을 볼 수 있다.

-통계에 대한 불신이 높은데.

통계청뿐 아니라 농촌진흥청,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조사결과를 종합한 다음 전국 산지 RPC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가장 현장에 부합하는 통계를 내면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통계에 대한 신뢰를 높인 다음 정책의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법제화가 필요한 거다. 격리에 필요한 예산확보 문제도 해결된다. 지금까지 이 세 가지가 없어서 격리 효과가 떨어졌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동시장격리제는 농가와 산지유통업체 모두에게 필요한 정책이다. 농가 입장에선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쌀값이 폭락하지 않고 일정 수준으로 유지된다. 산지유통업체도 시장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금처럼 손해를 보고 팔지 않게 된다. 역계절진폭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이유가 수확기 때 벼를 너무 많이 매입해서 이듬해 4~6월 단경기 때 재고 처분할 목적으로 싼값에 내기 때문에 쌀값이 내려가 생기는 거다. 시장이 예측 가능해지면 구태여 많은 양을 무리하게 살 필요가 없다. 자기가 1년 동안 팔 물량만 사다 놓으면 남는 물량(수요량 초과물량)은 정부가 격리했기 때문에 이자도 붙이고 마진도 계산해서 적정한 가격에 팔 수 있다. 싼값에 내다 파는 일이 없어지므로 역계절진폭이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제시한 시나리오가 단순하다.

정부 정책은 이해 당사자들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농민들도 쉽게 계산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해서 정책의 효과가 떨어졌다. 시나리오는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과잉생산량이 15만톤 이내일 때 RPC, DSC가 격리하도록 해서 시장상황을 보아 남으면 정부가 가져가고 모자라면 RPC에 넘기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15만톤이 넘었을 때 농협을 통해 초과량을 매입하고 정부가 넘겨받아 방출하거나 해외원조 등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단경기 역계절진폭이 발생하거나 지역적으로 수급이 불균형한 경우 거점 농협양곡을 통해 선택적 격리를 하는 방법이다. 세 가지 안으로 가면 언제든 수급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원론적이지만 직불제 개편은 필요한가.

자동시장격리제만 별도로 도입한다면 시장격리와 변동직불제 모두 1조4900억원으로 정해진 AMS(농업보조총액) 한도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예산당국 설득도 어렵다.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하면서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수급안정장치인 자동시장격리제를 도입하는 게 가장 적합한 수급문제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