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말장난하는 정부
[사설] 말장난하는 정부
  • 연승우 기자 dust8863@newsfarm.co.kr
  • 승인 2019.10.3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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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 사설) WTO 개도국 지위 유지 여부는 최근 두어 달간 농업계의 최고 이슈였고 지난달 25일 정부는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가 열렸던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앞에서 농민들은 이를 막겠다고 상복을 입고 항의 시위를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미 정부는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개도국 지위 포기를 강요한 미국보다 이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정부가 더 얄미운 것이 농업계의 심정이다.

여기에 회의를 마친 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브리핑 내용도 피해를 보게 될 농업인에게 사과의 뜻보다는 말장난에 가까웠다.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특혜’라는 표현을 썼다. WTO 개도국 지위가 대단한 특혜를 받은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농민이 정부의 지원을 엄청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WTO 개도국 지위는 알려진 바와 같이 ‘농업’ 분야에만 해당하는 사안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많았던 농업과 서비스, 상품을 따로 분리해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농업분야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분류해 관세 및 보조금 감축수준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1994년 우리나라는 개도국 수준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개도국 수준에 맞춰 양허안을 제출했다. 여기에서 특혜는 없다. 개도국은 선진국에 비해 경제력이 낮으므로 보조금과 관셰 감축을 절반 수준으로 한 뒤, 차기 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 개도국의 관세, 보조금 등을 더 낮추는 것을 논의했지만 DDA 협상이 현재는 결렬된 상태이다.

1994년에 결정된 관세, 보조금 등의 수준을 가지고 특혜라고 표현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차라리 특혜라는 표현보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농업인에게 죄송하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면 이렇게 농민들이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 농업인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우리 농업을 강하게 만들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