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국 전 농협중앙회 이사]“자랑스러운 농협 뱃지 의미를 되새겨야”
[김병국 전 농협중앙회 이사]“자랑스러운 농협 뱃지 의미를 되새겨야”
  • 이도현 기자 dhlee@newsfarm.co.kr
  • 승인 2019.10.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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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권고 농협서 튼튼한 농협으로
공판장서 농산물 제값 받기 기다려
‘행복한 농민, 살기 좋은 농촌’ 자전적 에서이 발간

(한국농업신문=이도현 기자)농협 직원으로 21년, 서충주농협조합장으로 21년, 농민과 농촌을 위해 총 42년, 삶의 절반을 ‘농협맨’으로 노력한 김병국 전 농협중앙회 이사. 지난 3월 서충주농협 조합장에서 퇴임한 그는 42년간의 경험과 소감을 글로 엮은 에세이 ‘행복한 농민, 살기 좋은 농촌’을 발간했다. 김병국 전 이사에게 이번 책과 농업, 농촌, 농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떤 책인가요.

‘행복한 농민, 살기 좋은 농촌’은 40여 년간 농협 생활과 소외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농업·농촌을 사랑하며 걸어온 지난 길을 되돌아보기 위해 썼다. 처음 책을 생각한 것은 5년 전이었지만 지난 3월 조합장에서 퇴임하고 시간이 날 때 틈틈이 집필하다 보니 이제야 발간하게 됐다. 농업과 함께 하는 농협 임직원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선배 직원, 조합장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농협맨’의 시작은 어떠했나.

책은 농협에 입사한 42년 전 1978년 3월부터 기록이다. 농협에 입사하기 전 농사로 성공할 것이라는 꿈을 꿨다. 고등학교 시절 사과나무를 심었다. 주위에서 부질없는 짓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군대 제대 후에 크게 자란 나무에서 수확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제대 후 농사를 지었지만 쉽진 않았다. 이때 농업과 함께할 수 있는 농협에 들어가라는 주위의 조언으로 입사를 결정했다. 농협에서 근무하면서 5년 정도 농사도 병행했다. 하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입사했던 금가농협에서 서충주농협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농민들이 잘사는 농촌을 만들고 선구자 역할을 해보고자 농협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시 농협은 어땠나.

단위 농협이 설립되는 초창기 모든 여건이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1960~70년대 농민들이 마을 단위로 출자한 벼 한 가마, 보리 한 가마가 지금의 수조의 자산 규모를 가진 농협을 만들었다.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열악한 조건으로 살아가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조합장에 당선되고 1998년 2월 20일 취임식 후 일주일 만인 27일 합병 권고를 받게 됐다. 당시 서충주농협의 대출금 연체율이 27%였다. 연체 채권 정리가 필요했다. 친한 친구와 사촌 동생의 채권을 먼저 정리했다. 이것들을 방관한다면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촌 동생과 둘도 없는 친구의 재산을 경매에 넣었다. 조직을 살리기 위해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 했다. 이후 직원들도 따라와 소신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2년 만에 자산 규모를 키워 인근의 농협보다 커졌다. 이후에도 직원들을 시키기보다는 솔선수범해서 예금도 유치하러 다녔다. 주위에서 많은 조합원의 도움으로 합병하지 않고도 충주 최고 농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왼팔에 흉터가 생겼다. 채권 정리 중 원망을 사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당시 그 사람의 입장이라도 서운했을 것이다. 이후 선처를 부탁했고 나중에 점심을 같이하며 열심히 살라고 격려했더니 울던 그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21년의 농협 생활과 21년의 조합장 생활을 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어려운 일도 많았다.

 

-농협 직원들에게 당부한다면.

직원들에게 농협의 발자취를 이야기할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 어르신들이 우리 농협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한다. 후배 조합장이나 농협 직원들에게도 항상 농민 조합원이 농업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우리 농협은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판매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해주냐는 말이다.
농협은 설립 목적을 생각하며 농민 입장에서 벼 한 톨, 고구마 한 개도 내가 생산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농산물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직접 재배한 토마토, 사과가 팔리지 않았다면 집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까. 늘 직원들에게 했던 이야기다. 이에 많은 시간을 공판장에서 보냈다. 경매사가 경매하는 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그러면 경매사가 한번 소리칠 것도 두 번, 세 번 내더라. 그러면서 더 좋은 가격이 나오게 됐다. 이러니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을 위한 중앙회가 되고 지역농협은 농민 조합원을 위해 존재하는 농협이 돼야 한다. 농민 없는 지역은 농협이 존재할 수 없고 지역농협 없는 중앙회도 역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농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농협의 역할이다. 지역농협이 살아갈 수 있도록 중앙회 이사진도 각성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지역농협에서 농민을 위한 역할을 다 한다면 대한민국도 농촌이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가슴에 단 농협 뱃지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농협맨’들에게 이런 역할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