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사, 벼 낱알 세게 할까… 제도 실효성 논란
양곡관리사, 벼 낱알 세게 할까… 제도 실효성 논란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1.25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창고 보관 공공비축미 관리 위해 자격증 도입
수매 벼 등급 주는 ‘농산물 검사관’과 중복 지적
대한곡물협회 주관 내달 첫 시험, 업계 불만 증폭

일각에선 '양곡 관련 정부기관 인사들 노후대책' 주장

'쌀 품질 고급화' 한다며 민간단체가 자격증 운용, 공신력 문제 제기  

주요 정부양곡 관리는 '재고 파악'...하루면 끝나는 일에 '상시 고용' 웬말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정부가 ‘쌀 품질 고급화’라는 명목으로 신설한 ‘양곡관리사’ 자격증 시험이 내달 첫 시행되는 가운데, 이 제도가 정부양곡 창고 운영 업자들의 경영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쌀 품질 향상은 고사하고 업계에 짐만 지운다는 지적이다.

25일 정부양곡 창고운영업자를 비롯한 산지 쌀 유통업계에 따르면 양곡관리사 제도는 기존의 ‘농산물 검사관’ 제도와 중복되는데다 보관용량이 수백톤에 머무는 창고업체가 대부분인 현장에선 쓸데없는 규제에 불과하다. 관리라고 해 봐야 '재고 파악' 외에 없는 현 상황에서 상시 인력을 고용해 볏 가마를 셀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2019년산 공공비축미 수매가 한창인 가운데 한 들녘에서 콤바인을 이용해 벼 수확을 하고 있다.
2019년산 공공비축미 수매가 한창인 가운데 한 들녘에서 콤바인을 이용해 벼 수확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6월 민간 전문자격인 ‘양곡관리사’를 신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을 완료했다. 이 자격증 운영은 (사)대한곡물협회가 맡았다. 곡협은 제1회 양곡관리사 자격 시험과 관련, 12월 21일 1차 이론시험과 내년 3월 21일 2차 실무능력시험을 각각 시행한다.

정부는 이 제도를 신설하면서 정부양곡의 관리 체계 정립과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쌀 품질 고급화라는 명분을 내놓았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가끔 창고를 방문, 관리 현황을 점검하는데 재고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종종 나왔었다. 이에 정부양곡 관리를 좀더 세밀하게 하자는 측면에서 도입된 제도다. 특히 새 정부가 화두로 삼은 ‘일자리 창출’ 목적도 있다. 자격증 취득자를 일선 창고업체가 의무고용 하도록 하면 젊은이들 취업률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창고 업계가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해 수확기 RPC등 산지 쌀 유통업체들이 공공비축미(산물벼)를 수매할 때면 농산물 검사관이 일일이 검사하고 등급을 매겨야만 수매할 수 있다. 등급을 받은 공공비축미는 정부양곡 창고로 옮겨져 사료용이나 가공용, 수출용 등으로 나갈 때까지 보관된다.

물론 농산물 검사관은 벼를 수매할 때인 수확기에만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쌀의 수확 후 관리에 초점을 맞춘 양곡관리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업계는 수매가 끝난 후 창고에 보관된 쌀을 관리하는 사람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충남의 한 창고 업체는 “정부양곡 관리라는 게 재고파악이 다인데, 이건 하루 날 잡아 하면 끝나는 일”이라며 “사람을 두면 창고에 있는 벼를 하루에 한 번씩 보라고 할 거냐, 아니면 낱알을 일일이 세어 보라고 할 거냐. 인건비 부담만 지우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수확 후 쌀의 관리라는 것도 습도와 기온에 좌우되는 시설의 문제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제도 운용을 맡은 대한곡물협회에서도 양곡관리사를 한 사람 섭외해서 도별로 순회해 한 달에 한번씩 정부양곡 창고 점검을 하게 하자는 방안도 논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격제도를 관리.운영 및 주관하는 단체에서도 정작 양곡관리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험 주관 기관으로서 참고서 판매로 얻는 수익 등 이점 때문에 현장을 외면한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부는 내년부터 권역별 보관창고에 양곡관리사 자격 취득자를 지정해 정부양곡 관리를 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제도의 필요성을 놓고 현장과의 갈등이 격해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양곡관리사가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전관예우’ 적폐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자격 취득이 쉬운 양곡 관련 정부기관 출신들의 노후대책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쌀 품질을 높이는 일에 민간단체가 주는 자격증 가지고 될 일이냐”며 자격증의 공신력에도 의문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