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사 없어도...“쌀 품질 안 좋으면 밥줄 끊겨요”
양곡관리사 없어도...“쌀 품질 안 좋으면 밥줄 끊겨요”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2.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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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사 자격시험 코 앞…무용론 들끓어
RPC들 거래 유통업체서 정기 실사 받아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양곡관리사 자격을 검증하는 첫 시험일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미곡종합처리장(RPC)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양곡관리사 제도 무용론에 불이 붙는 모습이다.

10일 산지 쌀 유통업계 및 창고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수확 후 쌀의 품질 관리를 맡기려고 도입한 양곡관리사 제도에 대부분의 업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한 민간RPC 업체의 작업일지. 거래처에 납품하는 쌀의 중량과 품위를 일일이 기록한다.
한 민간RPC 업체의 작업일지. 거래처에 납품하는 쌀의 중량과 품위를 일일이 기록한다.

 

정부는 올해 6월 정부양곡의 관리 체계 정립과 쌀의 품질 고급화 기반을 만들겠다며 민간 전문자격인 양곡관리사를 신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을 완료했다.

자격증 운영을 맡은 (사)대한곡물협회는 오는 21일 1차 이론시험과 내년 3월 21일 2차 실무능력 시험을 시행한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정부양곡 등 쌀 보관 창고와 RPC에선 자격취득자를 의무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업계는 고품질을 위한 쌀의 저장과 관리는 이미 업체가 체계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부담만 안겨주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와 거래계약을 맺고 쌀을 대량 납품하는 RPC에서 반발이 두드러진다. 쌀을 파는 대형마트나 쌀을 원료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파는 식품회사와 계속 거래하기 위해서는 쌀의 품질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충남의 한 RPC업체 관계자는 “RPC들은 농산물안전관리(GAP) 인증을 거의 다 받았다”며 “RPC마다 홈플러스라든지 롯데, 웰스토리 등 유통업체 하나씩은 다 거래처로 두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품질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거래처에서 1년마다 1회 이상씩 현장실사를 나와 양곡관리 실태를 점검하는데, 이에 대비해 RPC업체는 직원을 둬 쌀의 품질관리를 이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쌀 품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거래처가 끊기는데 어느 업체가 품질 관리를 안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RPC는 수확기 공공비축 산물벼를 매입해 정부에 돌려줄 때까지 창고에 보관한다. 또 정부가 수확 후 쌀 품질 관리에 초점을 둔 제도이니만큼 벼를 매입해서 파는 RPC로선 양곡관리사 의무고용 대상이 된다.

양곡관리사가 고용인 자격이라는 점에서도 무용론이 대두된다. 사업주에게 고용된 입장에서 쌀 관리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RPC 사업주는 쌀 품질관리에선 현장에서 익힌 경험을 토대로 전문자격증을 딴 사람보다 견해가 깊다는 점에서도 이런 우려가 불거져 나온다. 고용된 양곡관리사로서도 고용주에게 쌀 관리를 가지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쌀 관리를 정부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이 ‘월권행위’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민간RPC 업체는 개인 사업자인데 양곡관리사를 채용한다고 해도 쌀 품질 관리 방법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별일 없이 수십년 동안 잘 해 왔는데 왜 갑자기 불필요한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정부에서 양곡관리사를 채용할 지원금을 주거나 정부기관에서 파견해 점검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나와 수분율 등을 체크했다”며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발의 이면에는 인건비 부담도 있다. 보관 규모가 천톤 이하인 RPC가 대부분인 업계의 형편으론 경영부담만 가중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