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원 “농협 회장으론 한계…험한 길 가겠다”
김병원 “농협 회장으론 한계…험한 길 가겠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2.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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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 출마 농협중앙회장직 퇴임, 고별강연 열어
임직원·조합장들에 “정체성 회복·농가소득 이어주길”
“제 멍에는 농민과 함께하는 것, 새 멍에로 바꿀 때”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농협의 존재 이유는 죽어도 농민이다. 농민이 잘 살 수 있는 수단을 발굴해 내는 게 우리의 정체성임을 잊지 말아 달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지난 16일 사실상 퇴임식인 고별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튿날 정식 퇴임했다.

김 회장은 “농협 회장을 하고자 했던 이유가 농협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내가 없더라도) 정체성이 다시 예전으로 회귀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날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고별강연은 전국 지역농협 1118개 조합장 및 농민단체, 관련기관 관계자, 농협중앙회 임직원들 약 1500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김 회장은 자신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농자재값 인하와 수확기 쌀값지지, 농기계 무상 지원, 청년농부 육성, 로컬푸드 매장 확대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갈 것을 허식 부회장 등 농협중앙회 임직원과 지역농협 조합장들에게 당부했다.

특히 그는 “농협 정체성 회복은 한국 농협을 농민과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을 수 있도록 전환시키는 최고의 계기가 되었다. 농협 정체성은 농가소득을 올리는 것”이라며 농가소득 5천만원 달성을 향해 계속 전진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4년 간 농협 정체성 회복과 농가소득 향상에 힘쓴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16일 사실상 퇴임식인 고별강연에서 지속적인 농업농촌 발전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난 4년 간 농협 정체성 회복과 농가소득 향상에 힘쓴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16일 사실상 퇴임식인 고별강연에서 지속적인 농업농촌 발전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4년 행적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농업 부탁

김병원 회장은 이날 강연을 시작하기 앞서 이렇게 말했다. “끝을 얘기하려고 고별강연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 농업협동조합이 300만 농업인들의 손잡고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기 위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다.”

또 “4년간 농민들이 농협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우리는 그들의 한을 얼마나 풀어줬을까, 무엇을 못 풀었을까… 하는 얘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는 지난 2016년 3월 김병원 회장의 취임 장면을 상영하면서 시작됐다. 제23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취임당시 그가 “농협 정체성 회복과 농가소득 증대”를 약속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리고 그는 1375일을 쉼 없이 달려 지난해 농가소득 4207만원으로 끌어올렸다. 이 기간 농업농촌 현장을 누비며 달린 거리가 36만km, 지구 9바퀴를 돈 셈이다.

그는 “작년 4207만원 달성 때 이것이 진짜 가능하단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제주도가 가장 먼저 달성했는데, 올해 말 경기도 달성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른 도들도 따라서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간의 노력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농협미래농업연구소 조사 결과 농민 80% 이상이 농협이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노력했다고 응답했다. 10만 임직원의 가슴에 농심을 품게 하기 위해 만든 농협이념중앙교육원엔 직원들이 줄 서 있고, “은행 다닌다”고 소개하던 농협은행 직원도 이젠 “농협 다닌다”고 얘기하게 됐다.

 

조합장들과 밤샘토론…농가들 변화 체감

농촌, 농민에 대해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는 ‘무박토론’ ‘밤샘토론’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김 회장은 중앙회 임직원들뿐 아니라 전국 지역농협을 돌아다니며 지역조합장들과도 밤샘토론을 벌였다. 그는 “조합장들의 눈동자가 달라졌다. 이때 지원을 해 주면 120% 성과를 낼 것으로 생각해 3조원 규모의 지원자금을 마련했다. 이걸 계기로 각 조합장들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농가들이 엄청난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농가소득 향상의 핵심은 농약, 비료 등 농자재값 인하로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그간 농자재 값을 1조2000억원어치 내려 농가소득 향상의 단초를 마련했다. 지역농협의 협조가 절실하기 마련이다. 올해 김 회장은 농약값 10%를 내리자고 했지만 조합장들은 18%를 내렸다. 그는 “농협농약 비싸다고 농민들한테서 지탄 받았는데 이제 그런 얘긴 안 나온다”며 “누가 1년에 3천만원 쓰던 농약값이 200만원 절감됐다는 얘길 하며 고맙다고 하더라”고 치하했다.

이밖에 산불이나 홍수, 가축전염병 발병 등 재난재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농민들을 보살폈다. 재정 때문에 태풍으로 인한 벼 재해보험 보상을 35%밖에 못 주는 걸 NH농협손해보험 대표와 협의해 50%까지 끌어올렸다. 농촌 고령화가 60~70%에 달하는 것을 고려해 20명의 직원들이 전화로 홀로 사시는 노인들을 돌봐주는 ‘농업인행복콜센터’를 만들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조기 종식이 가능했던 것도 전국 6250명의 직원이 540대 방역차량으로 날마다 소독했기 때문이다. 농기계 없이 농사짓기 어려운 현실에서 2017년부터 올해까지 농기계 2만여대(1152억원)를 무상지원했다. 농협이 지역사회 최접점에서 기여하도록 사회공헌부도 신설했다. 수확기 농가 희망물량 전량 매입 등 선제적인 조치로 쌀값을 19만원대로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노력은 최근 조사에서 71%가 농협이 농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응답하는 결과로 나왔다. 또 국정감사에서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의원들의 찬사를 받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농민 위해 험한 길 선택...“살아도 죽어도 농민 위할 것”

김 회장의 꿈은 농부, 여학교 선생 등 다양했다. 농협 직원이 되고나서 중앙회장 꿈을 키웠다.

“그 꿈을 이루고 나서 하루도 300만 농민을 잊어본 적이 없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농민의 한이고 내게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말은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농민에게 더 큰 것을 주기 위해 국회로 진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남 나주의 가난한 집 1남 4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전 재산인 논 두 마지기를 팔아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아버지는 남의 소를 길러주고 돈을 벌었다. 김 회장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곰곰이 보니 소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멍에를 가시더라, 소의 멍에를 소중히 여기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제 멍에는 농민과 함께 하는 것”이라며 “아버지의 멍에 가는 모습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지혜를 배운 것 같다. 이제 새로운 멍에를 갈아 끼울 때가 왔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회장직을 사퇴한다.

그는 “어둠 속에 있는 농민들이 밝은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남들이 가지 않았던 험한 길을 가고자 한다. 저는 죽어도 농민이고 살아도 농민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성 청년농부사관학교 기공식

중앙회장으로서 마지막 업무…청년농 발굴 부탁

김병원 회장은 이날 중앙회장으로서 마지막 일정으로 경기도 공도읍에 위치한 농협안성교육원에서 열린 ‘농협 청년농부사관학교 기공식’에 참석했다.

농협 청년농부사관학교 조감도.
농협 청년농부사관학교 조감도.

 

그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을 청년 농부가 채워야 하는데 발굴을 못하고 있다. 청년농부사관학교를 통해 실험해 봤더니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그간 농협은 조합원 고령화와 지속적인 조합원 수 감소, 청년층의 농업 기피현상 등에 대응해 농업농촌의 혁신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도할 청년농업인 육성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체계 구축과 전문교육시설 건립을 추진해왔다.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씨를 뿌리고 기술과 자본을 투자해 나온 농산물을 팔아보고 소득이 얼마나 나오는지, 또 그 작목이 적성에 맞는지까지 판단하도록 기회를 준다. 컨설팅 및 기술, 자본, 유통을 지원해 청년농부가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건립 취지다.

이번에 착공한 안성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지하 1층, 지상 4층의 연면적 1만7154㎡ 규모로 건립된다. 23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2021년 11월 준공 예정이다. 금년까지 졸업생이 200여명 배출되었는데 완공 후 2022년부터는 연간 500명의 청년농업인이 미래농업을 이끌 핵심인재로 육성된다. 농협 안성교육원 부지 내에 신축함으로써 인근 11개 농협기관의 인프라 활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김병원 회장은 기공식에서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도 ‘한국의 청년농 5명을 소개해주면 투자하겠다’고 그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라며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우수한 젊은이들을 농업의 새로운 활력소로 육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과정, 졸업생 간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졸업생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회장은 “로컬푸드 매장을 올해 200개 추가해 연말이면 400개가 된다. 로컬푸드 1개당 농민 한 사람씩 살려라. 그러면 청년농부 얼마든지 먹고 살게 할 수 있다”며 마지막까지 농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