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공익형직불제③] 자동시장격리제에 ‘자동’이 없다
[기획-공익형직불제③] 자동시장격리제에 ‘자동’이 없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2.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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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직불 대신할 농가소득 보전장치
시기·물량, 기재부와 협의하게 해
예산 타내려 설득과정…예전과 같아
실효성 보려면 ‘격리 예산’ 못박아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공익형직불제 수용 조건으로 농가들이 제시한 쌀 시장격리제가 도입됐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많다. 공익형직불제 시행을 명문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엔 분명 이 제도 도입을 담아 수요 초과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듯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임의로 시행했던 기존의 시장격리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양곡 가격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양곡 수급안정대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도록 하되 ▲미곡의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 및 생산자단체 등과 협의를 거쳐 원칙적으로 매년 10월 15일까지 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포하도록 했다. 격리가 필요한 경우 그 물량은 당해 수요량을 초과하는 물량을 기준으로 설정했다.

충남 예산의 통합RPC에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포대가 쌓여 있다.
충남 예산의 통합RPC에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포대가 쌓여 있다.

사후적 수급조절 역할 해낼까

자동시장격리제는 공익형직불제 이전에 농업직접지불제 하에서 쌀 농가의 소득보전장치였던 변동직불금의 대체재로 도입이 논의돼 왔다. 5년 주기로 설정하는 쌀 목표가격과 시세와의 차액의 85%를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 주는 게 변동직불금이다. 만성화된 쌀 소비량 감소와 공급과잉 상황에서 우리 쌀농업의 명맥을 유지시켜 온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정직불과 변동직불을 통합한 공익형직불제가 본격 시행되는 올해부터 변동직불이 폐지된다. 얼마 전 국회에서 정한 쌀 목표가격도 18년산과 19년산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량을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 수확기 시장격리를 함으로써 쌀 가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내용과 쌀 수확기인 10월 15일까지 매년 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논에 타작물을 심어 벼 생산을 줄이는 생산조정제가 사전적 수급조절대책이라면 자동시장격리제는 사후적 수급조절대책인 셈이다.

수급대책 발표시기 '쟁점'

개정안의 쟁점은 수급안정대책을 공표하는 날짜다. 농식품부가 기재부, 생산자단체 등과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것도 사실상 발목을 잡는다.

자동시장격리제는 말 그대로 당해 쌀 수확량이 수요량을 초과할 때 그 초과물량을 시장에서 ‘자동’으로 격리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도 정부가 임의로 ‘시장격리’를 시행해 왔지만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효과를 가르는 기준은 시기와 물량이다. 이미 산지에서 쌀값이 형성된 10월 중.하순에 격리발표를 해봐야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협을 비롯한 생산자단체들은 수확기(10~12월) 직전인 9월 안에 격리 발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격리물량도 수요 초과량만 할 게 아니라 초과량의 두 배를 격리해야 쌀값이 탄력을 받지 않겠느냐는 거다. 지난 2017년 격리 사례가 좋은 예로 꼽힌다. 당시 수급대책 발표는 9월 말에 나왔다. 공공비축미 36만톤 외에 36만톤을 시장격리했는데 이 중에는 수요 초과량인 15만톤 외에 20만톤가량이 더 포함됐다. 80kg 한 가마에 12만원대로 폭락했던 쌀값이 점차 회복되는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정책목표 분명해야

수급대책 발표시기가 매번 늦어진 것은 기재부로부터 돈을 타내려 설득하느라 시간이 걸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결과는 10월 초에 나오지만 그 이전에도 산지에선 생산량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재부에 격리의 타당성을 주장하려면 객관적인 통계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10월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실상은 시장격리의 키를 기재부가 쥐고 있는 것. 농식품부가 격리할 쌀을 사들일 예산을 타느라 기재부에 읍소하는 일 없이 초과 물량을 자동으로 격리되게 하자는 자동시장격리제 도입 논의가 나온 주요 배경이다. 그런 면에서 10월 15일까지 기재부와 협의를 거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기존 시장격리와 다른 점이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자동시장격리제가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농업예산에 쌀 격리 예산을 정해 법적으로 못 박아놔야 한다.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장은 “쌀 자동시장격리의 정책목표를 쌀값 지지에 두고 세부조건을 설계해야 한다”며 “쌀값이 크게 하락하고 RPC 등 산지 쌀 유통업체의 적정 계절진폭이 유지되지 못하면 시장격리 무용론이 대두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