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쌀 최저가 경쟁에 농민 운다
대형마트 쌀 최저가 경쟁에 농민 운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2.19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쌀을 미끼로 손님 유도
국민 주식을 ‘미끼 상품’으로…도덕성 논란
RPC 저가납품 압박, 고스란히 농민 피해로

코로나 불안감 확산으로 쌀 소비 줄어

태풍피해벼 6만톤 중 4만톤이 저가 유통

쌀값 하락 요인 많아…소비촉진에 방점 둬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농가에 직격탄이 되고 있는 가운데 쌀값이 내리막을 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19만원대로 보합세를 유지하던 쌀값이 18만원대로 떨어졌고, 점차 하락폭이 두드러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소비 위축세가 장기화되면 쌀값이 18만원대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서울 시내 홈플러스에서 수확기인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햅쌀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쌀을 미끼상품으로 내놓아 시장가격을 흐리는 것은 농업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 시내 홈플러스에서 수확기인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햅쌀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쌀을 미끼상품으로 내놓아 시장가격을 흐리는 것은 농업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유은영 촬영]

지난 2월 15일자 산지쌀값은 80kg 한 가마에 18만9848원을 기록했다. 2월 5일자 19만44원에서 조금씩이라도 오름세로 갈 것이란 기대를 빗겨간 것이다. 1월 쌀값은 계속 19만원대를 유지하다가 1월 25일 18만9952원으로 떨어졌었다.

쌀값 하락 요인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우려 증폭에 따른 전반적인 소비 위축이 첫 번째로 꼽힌다. 연초 예정됐던 각종 모임 및 행사의 축소 또는 취소로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인 미곡종합처리장(RPC)의 거래물량도 크게 줄어 경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마트가 파격적인 할인가로 쌀을 팔아 가격 하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트는 지난달 ‘국민가격’ 상품으로 ‘의성 오! 좋은쌀’ 10kg 한 포대를 전 유통 채널 통틀어 최저가인 2만1900원에 판매했다. 2월 들어서는 땅끝해남맑은쌀(20kg)을 4만7900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의성 오 좋은 쌀을 2만1900원에 판매한 1월 1일부터 8일까지 산지 쌀값은 4만7561원(20kg, 5일자), 10kg로 환산하면 2만3780원이었다. 유통과정에 들어간 물류비를 감안하지 않아도 산지에서 거래된 쌀 도매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땅끝해남맑은쌀을 할인가에 팔고 있던 지난 10일 산지 쌀값은 4만7511원(5일자)이었다. 쌀 소비자가격이 도매가격보다 불과 50원 높다.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들이 생산비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에 쌀을 판매하며 손님을 끄는 ‘미끼 상품’으로 쓰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정한 행사 기간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최저가 쌀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미끼로 사용해 왔다.

최근에는 악화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초저가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 쌀 산업 경쟁력을 악화시킬 단초를 제공한다는 지적이다. 또 국민 주식을 미끼 상품화한 점에서 도덕적으로도 비난 가능성이 있다.

실제 유통업체들 간 쌀 저가경쟁은 RPC들에게 저가납품 압박으로 전달되고, 결국 피해는 농가가 입게 된다. 원가 이하로 쌀을 납품한 RPC가 누적적자로 경영이 어려워지면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한 투자 여력이 줄어 쌀 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뿐 아니라 농가들의 벼를 살 여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농협경제지주는 전국 농협RPC에 저가 판매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일일이 경영에 간섭할 수는 없어 쉽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 경북의 한 RPC 관계자는 “가뜩이나 코로나로 판매가 안 돼 손해가 큰데 거래처에서 가격을 낮춰 납품하라고 한다”며 “다른 데서 싸게 준다고 하니 거래처 뺏길까봐 깎아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농협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쌀값 하락 요인이 너무 많다”며 “태풍 피해벼 6만톤 중 4만톤이 시중에 저가 유통돼 시장가격을 흐리고 있다. 정부와 유통업체 모두 나서서 쌀 소비촉진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쌀 최저가 경쟁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는 쌀 농가들은 대형마트들의 쌀 미끼상품화 행태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은만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쌀 저가판매는 FTA와 수입개방, 각종 재해로 힘든 농업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행위다. 농업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원가 이하 경쟁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