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곤두박질' 예감…산물벼 ‘인수’ 발표 서둘러야
쌀값 '곤두박질' 예감…산물벼 ‘인수’ 발표 서둘러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2.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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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곡 공급량 2만톤 부족한데 쌀값은 하락
거래처 끊길까봐 원가 이하 납품하는 RPC·임도정공장
시장에 시그널 없으면 쌀값 18만원대 유지도 힘들어

태풍피해벼 유통...대형마트 ‘저가납품’ 압박 빌미

저가미 찾는 시장서 밀린 RPC, 판매부진 ‘허덕’

원가 이하 납품이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

오죽했으면 농식품부에 ‘시장 격리’ 요구도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올해 쌀 공급이 2만톤 모자랄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6만톤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민 1인당 연간소비량이 예년보다 줄어든데다 처음 계산에서 빠진 태풍피해벼의 정부 매입물량을 신곡 수요량에 반영한 결과다.

서울 시내 한 대형할인마트 매장에서 쌀 한포대가 원가 이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지난 25일 농협에 따르면 올해 신곡 수요량은 376만톤으로 추정된다.

2019년산 쌀은 총 374만톤이 생산됐다. 여기에서 올해 소비될 신곡 수요량 376만톤을 뺐을 때 2만톤이 부족한 걸로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9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가 나온 지난해 11월 신곡 수요량을 380만톤 수준으로 예상했었다. 쌀 소비량 감소폭을 2017~2018년과 같이 1.3%정도로 잡고 계산한데다 태풍피해벼 물량이 얼마나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계청 조사 결과 2019년 1인당 쌀 소비량은 전년보다 3%(1.8kg)가 줄어든 59.2kg으로 나타났다. 감소율을 3%로 늘려 다시 계산하면 2020년 1인당 쌀 소비 추정량은 58.4kg에서 57.4kg으로 더 줄어든다.

여기에 정부가 매입한 태풍피해벼 1만8000톤을 수요량에 반영했더니 공급 부족분이 4만톤가량 줄어든 2만톤으로 나온 것이다. 신곡 수요 추정물량에는 국민이 가정에서 소비하는 식량용 외에도 민간에 공급되는 가공용쌀, 종자, 공공비축미 등이 포함된다.

6만원에 사고 4만원에 팔아

부족물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시장상황은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태다. 그런데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쌀값은 하락세를 타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2월 15일자 산지쌀값은 80kg 한 가마당 18만9848원으로 19만원대를 무너뜨렸다. 게다가 쌀값은 낙폭을 점차 넓히며 하락속도를 빨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런 관측은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인 RPC(미곡종합처리장)에서 나오고 있다.

충남의 한 RPC 관계자는 “작년 수확기에 6만2~3000원(40kg 조곡)을 주고 산 것을 4만1~2000원에 팔고 있다”며 “시장 쌀 가격이 더 무너지면 우리가 거래처에 납품하는 쌀 가격은 폭락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RPC들이 원가도 못 건지는 가격에 쌀을 판매하고 있는 주요 원인은 소비지 유통업체인 대형할인마트와의 관계 때문이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최저가 입찰 경쟁방식으로 마트에 쌀을 납품할 RPC를 골라 거래계약을 체결한다. 달라는 가격에 주지 않으면 거래가 끊기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응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형마트의 저가납품 압박이 RPC와 거래하고 있는 기존 공공급식 업체 등에도 영향을 미쳐 시장 쌀값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RPC의 다른 거래처들이 대형마트 공급가격으로 납품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수순이다.

대형마트들은 도매가격보다도 낮은 가격에 쌀을 판매하며 손님들을 끌고 있다. 이마트의 ‘국민가격’ 행사가 좋은 예이지만 꼭 행사가 아니더라도 쌀 할인판매를 수시로 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RPC가 주로 거래처와 납품계약을 6개월 단위로 체결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4월까지는 마트들의 쌀 할인판매를 멈출 별다른 방법은 없는 셈이다. 더욱이 코로나 19 사태로 거래물량이 줄어든 RPC로선 저가에라도 쌀을 사준다는 곳에 납품할 수밖에 없다.

전북의 RPC 관계자는 “코로나 19 때문에 외식업체와 공공급식에 나가는 쌀이 급격히 줄었다”며 “그나마 쌀을 산다는 곳도 원가 이하 납품을 요구해 하루하루 적자만 쌓이고 있다”고 푸념했다.

RPC 경영사정이 악화한 저변에는 태풍피해벼의 시장유통이 있다. 피해물량 6만톤 가운데 정부에 매입되지 않은 4만톤이 시중에 돌아 시장가격을 흐리는 것이다. 양곡도매상 등 일선 유통업체가 농가에서 정부매입가보다 조금 높게 쳐주고 산 피해벼는 신곡과 섞여 시중에 유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형마트 등 다른 유통업체들이 RPC에 저가납품 압박을 가하는데 좋은 구실이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쌀값은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급속도로 하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위기감을 느낀 RPC에선 농식품부에 ‘시장격리’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추경 경영지원자금, RPC·임도정공장도 포함해야

쌀 농가와 산지 유통업체들이 쌀값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버린 지 오래다. 다만 지금의 18만원대 후반에서 시장가격이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소비자단체와 국회 일각에선 18만~19만원의 쌀값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쌀 가격 수준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경기미 등 인기 브랜드쌀로 경상도와 전라도 등지의 쌀값은 시장 평균가격에서 한참 모자란다. 때문에 이 지역 쌀 유통업체들이 적자경영이라도 해나가려면 현행 수준에서 쌀값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쌀 농가들의 대표적 단체인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쌀값의 유지 방안으로 정부의 산물벼 인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은만 회장은 “RPC가 손해를 보면 결국 쌀 생산 농가가 피해를 입게 된다”며 “정부는 산물벼를 가져가겠다는 인수 발표를 서둘러 시장에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정부가 추경예산으로 편성하는 요식업 경영안전 지원자금 대상에 요식업체에 원료를 대는 RPC와 임도정공장도 포함시켜 쌀산업 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게 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