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좋은 것’ 찾으면서 고품질쌀 생산하라니요?
‘싸고 좋은 것’ 찾으면서 고품질쌀 생산하라니요?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3.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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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정부가 고품질쌀 활성화 정책을 편지 오래됐지만 자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싸고 좋은 것’을 찾는 시장에서 고품질쌀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좋은 예가 ‘쌀 등급제’다. 쌀 등급제는 쌀 품질을 세분화해 등급을 매기는 제도로 단백질 함량, 품종, 수분율 등을 판정 기준으로 한다.

2004년부터 권장사항으로만 존재했다가 2018년 10월 14일부터 시중 유통되는 쌀 제품에 ‘미검사’ 표시를 없애고 ‘특’, ‘상’, ‘보통’, ‘등외’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면서 본격 시행됐다. 낟알의 깨짐, 변색, 손상된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의 폭을 높여주고 생산자의 품질향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결과만 말하면 생산자의 부담만 늘려준 꼴이 됐다.

좋은 등급을 받으려는 생산자의 노력으로 완전미율이 높아져 고품질 쌀 생산이 촉진될 것이란 기대는 얼추 이뤄졌다.

다만 그 노력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게 문제다. 등급표시제가 쌀 시장에 ‘고품질쌀의 보편화’를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등급이 높다고 해서 값을 올려받을 수 없는 시장 생태계가 소비자의 눈만 높여놨다는 얘기다.

쌀의 품질을 갖고 따질 때 생산자에는 벼농사를 짓는 농민과 벼를 저장 보관하며 도정해 유통시키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이 해당된다. 좋은 품종을 골라 심어 재배하는 농민의 1차적인 역할과 생산된 쌀의 보관방법과 도정방법을 달리하며 품위를 높이는 RPC의 2차적인 역할이 결합돼 쌀 등급이 나눠지는 것이다.

대형마트, 공공급식업체 등 소비지 대형유통업체에 쌀을 납품하는 RPC들은 뛰어난 도정 기술로 품질 좋은 쌀을 만들어 놔도 제값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하 등급인 ‘등외’야 그렇다쳐도 특, 상, 보통의 가격이 똑같다. 쌀값 결정권을 RPC가 아닌 거래처에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파고 들면 좋은 품질의 쌀을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해 주겠다는 RPC와 거래계약을 체결하는 ‘최저가 경쟁입찰제’가 원흉으로 나온다.

이러니 RPC도 농가에서 벼를 살 때 아무리 상태가 좋아도 제값을 주고 사지 못하게 된다. 30억 이상을 들여 도정시설을 최신으로 바꾸어 품위 좋은 쌀을 도정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니 투자비 회수는 고사하고 빚만 늘게 된다.

비단 등급제뿐 아니라 유기농법, 친환경농법으로 고생해 재배한 친환경쌀이 정작 시장에서는 일반쌀과 같이 취급되지 않는가.

정부는 좋은 제품이 제값을 받는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최저가 입찰제의 개선 없이 고품질쌀 활성화 정책은 영원히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