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완배 교수 “경매제는 시장도매인에 ‘게임’ 안 돼”
[인터뷰] 김완배 교수 “경매제는 시장도매인에 ‘게임’ 안 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4.01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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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시장 30% 면적서 거래비중은 63% 차지
16년 운영 결과…농민 ‘시장도매인제’ 선택했다

1998년 농림부 유통개혁위원장 시절 도입 건의

20년 전 너무 일러 외면당했지만 지금은 도입할 ‘때’

대형마트가 산지와 직거래, 가격결정기능이 산지로 가

도매시장 기능 중 남은 건 물류기능 "신선하게 대량 유통시키는 방법"

시장도매인 ‘신선도·대량유통·비용절감·농가수취가격안정’ 4 장점 부각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현재 유통업계는 온라인 채널의 거대한 성장이라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너무 앞서 가면 시대의 ‘따돌림’을 받는다고 했던가? 농산물 유통체계에선 경매제가 정통 거래방식이라면 ‘시장도매인제’가 이단아인 셈이다.

벌써 20년도 더 전에 직거래와 온라인 시장의 무서운 성장을 예측한 김완배 서울대 명예교수(농업경제학)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때가 아직 안 된 걸 갖고 흥분해 싸운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교수는 1994년 국내 농산물 유통 시장을 일대 혼란 속에 빠뜨렸던 ‘농안법 파동’의 수습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이로부터 불과 4년 뒤에 농산물 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40 초반의 젊은 학자였던 그는 농안법 파동 수습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자신의 선배들인 50~60대 학자들을 ‘바나나 장학생’으로 불러 거센 비난과 원성에 시달렸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하에서 기득권인 도매시장법인의 연구지원을 받는 일부 학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김 교수는 “물이 차면 흘러넘치다가 계속 막고 있으면 댐이 터진다. 이젠 때가 됐다”며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의 전면 도입이 머지않았다고 예고했다.

 

-때가 된 건가.

20년 전엔 많이 싸웠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마저도 거래물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농산물이 도매시장으로 와서 소매상으로 건너간 다음 또 마트로 가야 소비자한테 간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산지와 직거래를 한다. 대형마트도 산지에서 직접 구입한다. 도매시장의 두 가지 기능이 하나는 가격결정기능, 또 산지와 소매를 연결하는 물류기능이다. 가격결정기능이 점점 산지로 가고 있다. 소비자들이, 대형마트가 산지로 직접 가서 가격결정 한다. 그럼 더 신경써서 공정하게 경매해 공정한 가격으로 결정해 줘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헌지스 65만평에선 한 박스도 경매 안 거치고도 가격결정 잘 된다.(헌지스(rungis)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적인 도매시장이다.)

남는 건 물류기능인데, 어떻게 신선한 상태로 대량으로 유통해 줄 거냐는 효율성, 이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할 때가 된 거다. 도매시장법인에 제자도 있고 친구도 있다. ‘도매상 해라, 시장도매인 해라’고 얘기한다. 변해야 사는데 버티면 공멸하지.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의 차이점을 간단히 구분해 달라.

도매시장 거래방식에 경매제도와 수의매매제도(시장도매인제)가 있다. 경매제의 유통단계를 하나 줄인 게 시장도매인제다. 경매제에선 도매시장법인이 산지에서 농산물을 수집해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한테 팔면 중도매인이 소매상한테 팔아 분산시킨다. 수집과 분산 기능이 떨어져 있는 거다. 시장도매인은 도매상이 직접 농민과 거래해 수집, 분산을 혼자 다 한다. 어떤 게 효율적이겠나. 유통비 적게 들고 유통속도 빨라 신선하고 대량거래에 유리하다. 경매제에선 트럭에 물건 실어 도매법인에 보내면 법인별, 경매시간별로 다른 가격이 나온다. 시장도매인제는 이런 가격불안전성도 적다.

-농안법 파동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한 마디로 중개와 도매를 구분 못해서 생긴 일이다. 농안법 시행령에 중도매인이 소매상한테 팔 때 중개수수료를 7% 이상 받지 말라고 못 박아 놨다. 중개는 리스크가 없지만 도매는 산 물건 안 팔리면 몽땅 책임져야 하니 리스크가 있다. 당연 7%보다 많이 받아야 한다. 또 비중도 도매가 90%였고 중개는 10%였다.

국회의원이 조사해 보니 도매상 마진이 11~13%로 나왔다. 왜 이렇게 많이 받냐, 해서 1994년 도매 하지 말고 중개만 하라고 법을 바꿨다. 중도매인이 주문도 안 받고 경매 들어가 물건 사면 잡혀 들어가는 거다. 누가 경매 들어가겠나. 경매에 중도매인이 참여 안 하니 물건이 소매로 못 가지, 산지에선 물건이 안 팔려 썩어 나가고. 당시 부임한지 한 달도 안 된 농림부장관이 전화해 어쩌면 좋냐고 묻더라.

대통령한테 건의해서 긴급명령으로 법 발동을 중지시키고 그해 9월에 (농안법) 재개정해서 도매를 집어넣으라 했지. 그렇게 수습했다. 그때 국회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는데 농산물 유통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국회의원들 법 개정에 협조하라고 당부했다.

-왜 이름이 시장도매인인가.

공영도매시장이 없고 정보통신 발달 이전엔 ‘칼질’이라는 게 있었다. 도매상이 산지에서 물건이 적게 출하될 때 가격을 높게 받아주다가 성출하기 때는 반으로 후려친다. 눈앞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경매제는 공정성, 투명성이 필요한 시대에 농민들을 보호하는 아주 좋은 제도였다.

그러나 이젠 칼질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소문나면 누가 그 도매상과 거래하겠나. 시장도매인도 이름만 다를 뿐 ‘도매상’이다. 다만, 옛날 칼질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이름을 달리 지었을 뿐이다. 1998년 농림부 유통개혁위원장 할 적에 이 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시장도매인이 강서시장에 도입된 건 2004년이다.

도매법인 반대가 심하니 지방부터 도입하자 해서 강서시장에 먼저 들였다. 본래 강서시장도 경매제만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서울시를 ‘두 개 거래제를 경쟁 시키자’고 설득했다. 시도 번잡한 영등포 시장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영등포의 조광시장, 영인시장은 옛날 도매상 체제로 수의매매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경매로 가면 도매법인에 자기가 예속되니까 시장도매인제와 이해가 맞았다. 예산이 모자라 도매상 4명씩 법인을 만들어 이주시켰다. 그렇게 52개에서 시작한 게 지금 60개가 됐다. 공무원들 머릿속엔 공정, 투명 두 가지만 들어있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만만찮았다.

-16년이 지났다. 어느 쪽이 이긴 건가.

시장도매인 거래액이 경매제와 ‘게임’이 안 된다. 강서시장 30% 면적에서 거래 비중은 63%를 차지한다. 출하자가 시장도매인 쪽으로 농산물을 낸다는 얘기다. 톤당 거래규모도 시장도매인 쪽이 더 크다. 그 얘기는 품질이 좋은 물건이 온다는 얘기다.

작년 7000억 매출 달성하고 16년 동안 153% 성장했다. 문제가 한 번 있었다. 2009년 도매상 하나가 부도가 나서 시장도매인들이 십시일반 도와 메워줬는데, 그 일 때문에 계속 투명성 시비가 붙는다. 그래서 2016년 출하자 대금 지급을 책임지는 정산조합을 만들었다.

-가락시장엔 왜 도입이 안 되나.

도매시장법인은 출하자가 보낸 농산물을 경매 해 주고 상장 수수료를 받는다. 지방은 7%, 가락시장은 4%. 1년 가락시장 거래금액 3조5000억원 중 4%면 1400억이다. 그거 포기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농림축산식품부가 그 사람들과 합의해 오면 도입해 주겠다고 하는데, 사실 골치 아프니까 발 뺀 거다. 지금 이 자리를 다음 자리를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일만 하려고 하지, 시끄러운 일 손 대고 싶겠나.

-농산물 유통史에 한 획을 그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인생이 3분의 1씩 구분된다. 준비기간 30년, 교수생활 30년. 나머지 3분의 1은 그간 하고 싶은 공부며 취미활동을 할 생각이다. 농업은 제자들에게 맡기겠다.

밀레니얼, Z세대의 특성이 뭔지, 쓰는 은어가 뭔지, 젊은 사람들 생각도 알아보고 이해하는 시간도 가져보고 싶고.... 요즘 꼰대를 빗대 ‘라떼는~’ 한다던데, 그리 되고 싶지 않거든.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 혜택을 좀 돌려주고자 NGO 활동도 나름 열심히 했다. 1989년부터 경실련 공동대표로 있었는데 작년까지 30년 하고 내려놨다.

지금은 동양고전부터 사서삼경, 주역 포함해 논어, 맹자 등 주로 인문학 책들을 읽고 있다. 농업경제학자, 사회과학자 역할은 했는데 인문학이 부족해 그걸 메우는 일을 한다. 

꼭 한 가지 할 일이 남았는데, 대학원 때 75년 77년에 우리나라 5일장 전수조사를 했다. 그 이전엔 1924년 총독부 시절에 한 게 있고. 이제 50년이 다가온다. 전수조사를 또 한번 해서 100년간의 ‘대한민국 5일장’ 변화 기록을 남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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