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C 평가 단순화 약속 ‘공염불’ 됐다
RPC 평가 단순화 약속 ‘공염불’ 됐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4.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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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항목 여전히 복잡.까다로워…퇴출 기준 강화
벼 의무매입량 갑자기 2배로 올려 업계 ‘황당’
매년 ‘진입심사’ 받는 RPC…고단한 업주들

매해 평가받고 퇴출, 유지 결정

신규진입 업체와 형평성 고려한다지만

'1년짜리 RPC' 다음해 퇴출될 수 있는데

3~4년 걸리는 시설현대화 권장은 모순 

RPC 기능 핵심 '벼 매입량, 계약재배' 등 

평가항목 2~3가지로 단순화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미곡종합처리장) 2020년 경영평가 항목이 정부 당국의 약속과 달리 여전히 복잡한 것으로 나타나 RPC 업계에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쌀 판매가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복잡한 경영평가를 준비하느라 몇 달씩 전직원이 매달려야 하는 상황으로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지난 6일 RPC와 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민간 및 농협RPC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2020년 RPC 쌀 산업 기여도 평가’관련 세부내용이 전년과 비교해 감점항목 2개를 뺀 것을 제외하고는 작년과 동일하다.

더구나 퇴출규정을 과도하게 강화해 심리적 부담감을 주고 있다. RPC별 연간 벼 매입량과 수확기 매입량, 계약재배 물량 기준을 각각 두 배씩 높여놓은 것이다. 연간 벼 매입량을 3000톤에서 5000톤으로, 수확기 매입량을 2500톤에서 4000톤으로 올리고, 계약재배 물량도 매년 500톤씩 상향 조정한다고 했다.

사실 이 조항은 작년에도 적용했었다. 막상 평가해 보니 퇴출 업체가 40~50개가 나와 수확기 벼 매입에 차질을 우려해 적용을 안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조항을 또 달아놓은 것이다.

RPC업계 한 관계자는 “점차 늘리는 건 할 수 있지만 갑자기 높이는 건 어렵다”며 “당사자들은 퇴출 걱정에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다. 나중에 또 봐줄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갑질 아니냐, 이래서 RPC 못 해 먹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민간RPC업체 공장에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한 민간RPC업체 공장에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기여도 평가로 이름 바꾼 뒤 ’대입 수능‘마냥 압박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 및 민간RPC에 해마다 벼 매입자금을 0~2%까지의 저리로 빌려 쓸 수 있도록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수행해 온 규모화, 조직화, 품질고급화 등 추진실적을 평가해 점수를 매겨 A등급부터 E등급으로 구분하면 RPC업체 각자가 평가결과에 따라 배정된 금액만큼 금융기관에서 요구하는 담보를 제공하고 빌려쓰는 것이다.

올해도 이달 10일까지 서류접수가 끝나면 현장실사 후 각 항목을 평가한 후 등급을 매겨 6월 말까지 자금을 배정하고 수확기인 9월 1일부터 대출을 할 수 있게 된다.

RPC 경영평가는 RPC 쌀 산업 기여도평가로 이름을 바꾼 2년 전부터 불필요하게 까다로와져 업체들의 단순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평가지표가 47가지가 넘고 오.탈자 하나에도 감점을 주는가 하면 접수 시간 1분이 넘어도 서류를 받아주지 않아 흡사 대입 수능시험을 방불케 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RPC업주들은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로서 수확기 농가 벼 매입을 통한 쌀값지지 역할에 충실했는지 벼 매입량과 고품질쌀 생산을 위한 계약재배 등 두 세 가지만 평가하면 충분하지 않겠느냐며 단순화를 주장해 왔다. RPC 주무부서인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전임 과장도 단순화 필요성엔 공감했었다. 하지만 단순화 약속은 공염불이 됐고 사실상 농식품부가 약속을 어긴 결과가 돼 업계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1년짜리 RPC…공무원도 매년 자격심사?

RPC 입장에선 매해 까다롭고 복잡한 경영평가를 받고 기준에 안 맞으면 퇴출되는 것이므로 사실상 ‘RPC 진입평가’를 매년 받는 셈이다.

한 관계자는 “매년 평가해 퇴출시킨다면 진입기준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며 “1년짜리 RPC에 3~4년 걸리는 시설 증설이나 현대화 공사를 권장하는 건 모순이다. 다음 해 퇴출될 지도 모르는데 시설 증설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신규 진입 업체와의 형평성을 얘기하는데, 그럼 공무원도 매년 자격평가를 해서 퇴출 시켜야 맞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들, 자영업자들에게 국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데 유독 RPC만 가혹하게 부담을 더 주는지 모르겠다. 주무부서라면 하나라도 더 지원해서 산업을 일으키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강조했다.

◆규정강화로 자연스런 구조조정…독과점 폐해 피할 수 없어 

RPC 업계에 구성된 3개 단체 현황을 보면 협회를 이탈하는 회원사가 2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한 단체의 회원사는 지난해 46개에서 현재 36개로 10개나 빠졌다.

경남의 한 업체는 “최근 몇 년 동안 산물벼도 정부가 가져가지, 기여도 평가로 힘들게 하지, 그래서 도저히 못해먹겠다. 요즘 시중금리 싸니까 시중자금 쓰면서 그간 빌린 정책자금은 조금씩 갚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까다로운 평가 기준 때문에 농협보다 서류준비에 취약한 민간RPC가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된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수확기 농가 벼 매입을 농협이 전부 책임져야 한다. 또 독과점 구조에 따른 폐해도 피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RPC 역할이 벼 매입에 있으니 수확기에 벼 매입을 잘 했는지, 농가와 계약재배를 잘 했는지 두세 가지로 기여도 평가를 단순화해 3~4년 정도는 퇴출 걱정 없이 운영할 수 있게끔 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