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대인데...RPC 벼 매입자금도 이자 없애야
‘제로금리’ 시대인데...RPC 벼 매입자금도 이자 없애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4.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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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평가 A~E 등급 매겨 0~2%까지 대출금리 부과
거저 준 돈 아닌데 세무감사 하듯 감놔라 배놔라
'코로나19'로 힘겨운 기업 지원 애쓰는 타 부처와 대비

RPC 설립 목적…수확기 쌀값지지·쌀산업경쟁력 강화

현행 47개 평가지표, RPC 기능과 관련없는 조항 대부분

설립목적 부합하는 '벼 매입량·고품질쌀 계약재배' 실적만 봐야

재고물량 바닥 났는데도 벼값보다 쌀값이 낮아 못 사고 관망만

RPC 업주들 정부 압박에 경영애로 호소..."명예로운 퇴진길 열어달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정부 각 부처가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위기에 빠진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오히려 경영평가 기준을 강화시켜 농업정책이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민간RPC공장에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한 민간RPC공장에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14일 RPC 등 쌀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RPC 쌀 산업 기여도 평가’에서 RPC별 연간 벼 의무매입량과 수확기 의무매입량의 기준을 기존보다 2배로 높여 놓고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는 퇴출할 방침이다.

바뀐 규정을 들이대면 농협 및 민간RPC 통틀어 퇴출될 업체가 40~50개에 달한다. 전체 207개 RPC에서 한번에 50개가 빠지면 157개 업체가 수확기 쌀값 지지를 위해 농가 벼 매입을 해야 하는 셈이다. 농식품부는 RPC의 연간 벼 의무매입량을 기존 3000톤에서 5000톤으로, 수확기에는 2500톤을 4000톤으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예전 경영평가에서 이름을 바꾼 RPC 쌀 산업 기여도 평가는 매해 실시된다. 현재 올해 평가가 진행중으로 5월 현장실사까지 끝내면 6월말 각 업체의 등급별로 대출자금을 배정할 계획이다.

RPC 평가는 평가 지표가 47가지가 넘고 접수마감 시간도 5분을 용납지 않아 업계의 원성이 드높은 상황이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쌀 판매가 급격히 줄어 RPC업체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가운데 경영평가마저 예년보다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해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RPC는 경영평가의 벼 의무매입량 외에 배정받은 벼 매입 대출자금의 1.5배만큼의 벼를 농가로부터 수확기 안에 사들여야 한다. 이 역시 공급이 수요량을 훨씬 웃돌아 벼값이 추락했던 4~5년 전 규정을 지금도 적용하는 거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 오래다.

업계 관계자는 “벼 매입자금을 예전과 똑같이 배정받아도 벼값이 올라 살 수 있는 물량이 현저히 줄었다”며 “상황에 맞게 규정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부처는 소관 기업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나서는데 왜 RPC는 더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RPC 업주들은 벼값 회복과 시중금리 인하 등 시장상황에 맞춰 ▲수확기 1.5배 매입을 연중 1.5배 매입으로 완화할 것과 ▲A~E 등급별 대출자금만 차등 배정하되 금리는 공통 0%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등급별로 0%에서 2%까지 금리를 매기는 현재 규정을 제로금리 시대에 맞게 이자를 없애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특히 직원들이 몇 달간 매달려야 하는 지금의 경영평가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한 관계자는 “벼 매입자금은 그냥 주는 돈이 아니라 우리가 담보를 제공하고 빌려쓰는 돈”이라며 “시설현대화 자금이야 정부 돈이 지원됐으니 돈을 잘 썼는지 확인하는 게 당연하지만, 빌려주는 돈까지 어디에 썼는지 세세히 확인하는 건 불합리한 처사다”고 지적했다.

RPC업체들은 경영평가 때 1키로짜리, 5키로짜리 중량별로 쌀을 얼마나 어디에 팔았는지, 계약재배 실적은 물론 공장이 있는 지역 농가들의 논타작물재배사업 참여율까지 낱낱이 제출해야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RPC를 만든 목적인 수확기 쌀값 안정과 쌀 산업 경쟁력 강화에 맞게 경영평가도 벼 매입량을 준수했는지, 고품질쌀 계약재배를 얼마나 잘 했는지 두 가지 정도만 보면 된다”며 “경영상태가 안 좋으면 보조해 줄 것도 아니면서 1년에 한 번씩 세무감사 하듯 괴롭히며 경영간섭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5월 즈음이면 민간RPC 재고가 바닥나는 시기다. 그런데 비RPC농협들은 벼가 안 팔려 아우성이다. 벼값이 쌀값보다 비싼데다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 때문으로 파악된다.

현재 산지에서 거래되는 벼값은 운송료까지 더하면 6만2000원(40kg)꼴이지만 쌀값은 4만3000원(20kg)대에 머무르고 있다. 쌀을 4만5000원 이상 받고 팔아도 마진을 장담 못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벼를 사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충남의 RPC 관계자는 “갈수록 경영이 힘들어져 하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냉큼 넘겨주고 싶다”며 “그간 쌀산업에 기여해온 공로를 생각해서 업주가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폐업지원책을 마련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