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공정거래란 무엇인가
[데스크칼럼] 공정거래란 무엇인가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4.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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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평등, 공정, 정의는 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언제부턴가 사적인 대화에서 또는 공식석상의 연설문을 통해 자주 들으며 말하고 있다. 어쩌면 고대문명의 시작과 함께 오르내렸을지도 모른다. 현 정부가 대표적인 슬로건으로 삼을 만큼 실현이 어려워 인류의 오랜 과제였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문구는 쌀 유통업만 들여다봐도 얼마나 실천이 어려운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인 미곡종합처리장(RPC) 얘기다.

RPC들은 매해 이맘때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는다. 기업으로서 재무건전성 뿐만 아니라 어디에 얼마나 쌀을 팔고 벼를 얼마나 샀는지 등을 상세히 들여다본다. 최근에는 ‘쌀 산업 기여도 평가’로 이름을 바꿔 농가와의 계약재배 실적에 주는 점수를 높이고, RPC가 위치한 지자체의 타작물 재배실적까지 평가지표에 넣었다. 평가항목은 47가지에서 2개가 줄어 올해 45가지라고 한다.

RPC는 우루과이라운드 등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1992년 도입된 제도다. 수확기 홍수출하되는 신곡을 매입해 쌀값 지지를 통한 농업인 소득안정 장치로서 동네 방앗간의 규모를 키워 만든 것이다. 농협과 민간을 합쳐 총 207곳이다.

RPC의 기능과 관계없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경영평가에 대해 농협, 민간 할 것 없이 원성이 높다. 공정성, 형평성 얘기는 민간 쪽에서 거론된다. 농협은 RPC가 사업부서 중 하나라 적자를 내도 다른 사업에서 메우기 때문에 부담이 덜한 반면, 개인 사업체인 민간은 경영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 공정성, 형평성 시비가 불거지는 맹점이다.

개인이 직원 몇 사람 두고 운영하는 민간은 거대조직인 농협에 비해 경영평가 대비에서도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꼭 농협과 민간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개인 사업자에게 쌀 산업 발전에 기여하라며 이것저것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분명 공정하지 않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RPC 설립목적에 따라 벼를 잘 샀는지, 계약재배를 충실히 했는지만 평가하라고 볼멘소리가 계속되는 이유다.

RPC가 쌀을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최근의 쌀 유통 환경이 이런 불만을 키우고 있다. 벼값은 높고 쌀값은 낮아 적자만 누적되는 상황이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RPC가 수매한 산물벼 도정을 허용해 달라고 10년 동안 건의하고 있지만 정부는 매번 거절하고 이젠 들은 척도 안 한다. 정부양곡 도정은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몫이라는 이유에서다. RPC는 거듭된 시설투자로 도정기술이 날로 발전해 정부양곡 도정공장을 앞지른 지 오래다. 그럼에도 산물벼 도정은 요원하고 경영평가는 1년마다 치르고 있다. 3~5년 주기로 평가받는 도정공장과 형평성 면에서 비교된다.

정부는 수확기 벼 매입자금의 저리 대출 혜택을 주는 만큼 책임도 함께 부여해야 타당하다고 본다. 기회의 평등, 공정한 경쟁의 달성은 단순한 셈법으로 이뤄질 수 없다. 돈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목줄 맨 강아지마냥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면 이 또한 정의로운 결과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