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걸섭 회장 “농민 쌀 못 버려…도정업이 함께 쌀 산업 이끌 것”
심걸섭 회장 “농민 쌀 못 버려…도정업이 함께 쌀 산업 이끌 것”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4.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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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걸섭 (사)한국양곡가공협회중앙회장
고품질·소포장 쌀 유통해 도정업 정체기 극복
쌀전업농과 MOU…전략적 협력관계 구축 윈-윈
라면·햄버거가 차지한 쌀 자리 복구, 가치 회복

고품질·소포장 쌀 유통해 도정업 정체기 극복

쌀전업농과 MOU…전략적 협력관계 구축 윈-윈

라면·햄버거가 차지한 쌀 자리 복구, 가치 회복할 것

 

임도정공장, 70~80년대 농촌 지역사회 창고·은행 역할

전국 3만여곳서 2천곳으로 줄어…운영난 폐업 도산 원인

위상 축소됐지만 소규모 농가 쌀 유통 거점 큰 기여

 

도정시설 전기료 50% 할인 임도정공장까지 확대

시설·자본금 기준 둬 벼 매입자금 지원 검토를

회원사들도 단합해 양곡산업 발전 이끌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동네 방앗간들과 쌀 농가들이 고품질쌀 생산과 양곡의 원활한 유통에 협력키로 하는 업무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사)한국양곡가공협회중앙회와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지난 14일 ‘고품질쌀 생산과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 기관은 고품질쌀 계약재배 확대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협력하게 된다.

심걸섭 한국양곡가공협회중앙회장은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쌀 산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양곡업, 특히 도정업도 답보 상태에 있다. 쌀전업농과 함께 쌀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에 진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양곡가공협회중앙회장의 자리에 오른 심 회장은 회원사들의 권익보호와 쌀 산업 발전이라는 양대 역점사업을 조화롭게 추진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과거 농가 쌀 유통의 거점이자 정부 벼 수매의 핵심 경로로서 인정받은 정미소의 위상을 재정립한다는 계획이다. 40여년 도정업에 종사해온 그는 현재 율목영농조합법인 미곡처리장 대표이자 서산의 지역신문 고문을 지내며 지역사회에서도 명망 있는 인사로 주목받고 있다.

 

-쌀전업농과 MOU 의미에 대해 평가하자면.

이번 업무협약 체결로 전국 임도정공장과 쌀전업농은 고품질쌀 재배와 원료곡의 원활한 유통, 그리고 양곡 관련한 정보 교류 등에 협력하게 된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생산곡 처리와 원활한 유통에 힘써 이를 통해 쌀 생산 농가의 소득증대에도 이바지한다는 계획이다.

양곡업, 도정업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생산과 유통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업종이 협력해 활로 모색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쌀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쌀 산업은 사향산업이 된지 오래다. 쌀에 대한 국민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귀한 양식으로 대접받던 과거에는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사다 놨던 게 쌀이지 않나. 지금은 라면, 햄버거 등 먹을 게 많으니 배고플 때 밥을 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향수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젊은 세대에게 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는 활동과 함께 식생활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고 본다. 농가들과 협력해 고품질쌀 및 소포장쌀을 생산, 유통함으로써 밥이 가족 간 정(情)을 북돋아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낄 때 정체돼 있는 양곡업도 활기를 띠게 마련이다.

-유통이 쌀값 부분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는 어느 정도인가.

농가 벼를 가급적이면 고가에 사는 것이 정부정책이니 수확기 벼를 수매할 때 생산자에게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쌀값은 벼값보다 낮은 이중적 구조다. 농협이든 민간RPC든, 임도정공장이든 사둔 벼를 방출할 때는 벼를 샀을 때의 제값을 받을 수가 없다. 정부는 소비자의 입장도 생각해야겠지만 지금 구조에선 살아남을 수 있는 유통조직이 농협밖에 없다. 산지 유통업체가 적절한 계절진폭(마진)을 볼 수 있도록 시장 쌀값이 어느 정도까지는 오를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주면 좋겠다. 벼값이 올라도 쌀값이 내리면 결국 농가 손해 아니겠는가.

-양곡가공협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옛날 동네마다 한 두 개씩은 꼭 있었던 정미소, 방앗간들이 모여 구성한 단체다. 전국에 2200개 임도정공장이 있고 그 중 500개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1992년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생기기 전까지 양곡의 유통과 정부미 비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농들의 쌀은 RPC에서 흡수한다지만 중소농은 우리 같은 소규모 도정공장 아니면 맡길 곳이 없다. 지금도 농촌 지역사회에서 중소농의 창고 역할, 금융기관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정미소가 지역의 은행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봄에 모내기하고 가을 전엔 농가들은 돈 들어올 데가 없지 않나. 그럴 때면 지역의 임도정공장(정미소)이 이자도 안 받고 돈을 빌려주거나 쌀을 꿔주곤 했다. 저만 해도 그 전에 어려울 때는 가을에 100짝, 200짝씩 꿔줬다. 80kg이 한 짝인데…. 현재도 그렇고, 1966년 7월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임도정 역사 50여년 동안 쭉 해왔던 일이다.

-지금은 어떤가.

70~80년대가 임도정공장들의 전성기였다. 70년대엔 전두환 대통령 사촌이 중앙회장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90년대 초반 RPC 설립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임도정공정이 3만개가 넘었고 회원사도 1만5000개였다.

당시엔 식량 확보가 국가안보 1순위였다. 지금은 선거로 뽑지만 그때는 시장, 군수가 임명제여서 공공비축미 수매가 덜 되면 목이 날아가던 시절이었다. 운영이 어려워져 폐업, 도산, 이탈로 지금은 2200개로 줄고 회원사도 500개로 줄었다.

농가 희망 물량은 전량수매 원칙이라 농가들이 RPC에 벼를 갖다 준다. 물벼로 바로 내니까 임도정 역할은 그만큼 줄고. RPC와 달리 수확기 벼 수매를 안 하니 우리한테 오는 물량이 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가 없다면 소농은 벼를 찧을 데가 없다.

-임도정공장이 정부예산 절감에 기여한다고.

임도정공장이 취급하는 양곡 유통량이 연간 32%가 넘는다. 농가 벼 자체 매입을 통해 수확기 산지 쌀 가격을 지지하고 정부예산이 투입돼야 할 벼 보관료, 입.출고료 등 약 600억원가량을 아껴주는 셈이다. 전국 양곡 유통량의 32%는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벼 매입자금 지원 건의문을 냈다던데.

임도정공장 중에도 RPC로 진입할 만큼 여력이 되는 업체들이 꽤 있다. 이런 업체들은 수확기 벼 매입자금을 지원해 농가 벼 수매에 탄력을 주면 농가도 좋고 쌀값 지지도 되고 얼마나 좋겠나. 쌀값이 폭락한 2015~2017년엔 한 10여 업체에 한시적으로 지원해 줬다. 그걸 시설, 매출 등 기준을 둬서 제도화하길 바란다. 해외 수출하는 업체도 관세 지원 등이 따라야 한다. 일본에서 벼 품종을 들여와 계약재배해 수출하는데, 이때도 개인이 비싼 관세를 무니 부담이 크다. 이익도 많이 안 남는데 해외수출한다는 건 국가 위상 강화에 기여하는 일 아닌가.

쌀산업이 위축됐어도 농민은 쌀을 버릴 수 없다. 도정공장은 그런 농민과 함께 가야 하니 정부지원도 따라야 한다.

-전기료, 세금 문제는 어떤가.

형평성 차원에서 건의하고 있다. 농업법인RPC에 대해 2017년부터 도정시설 전기료를 50% 감면해주고 있는데 임도정공장들은 같은 양곡도정업을 하고 있는데도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제 전문가가 아니어서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세금 문제도 불합리한 면이 있다.

쌀값 회복으로 매출은 늘었지만 순이익은 쌀값이 10만원이었을 때나 18만원일 때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순이익이 아닌 매출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니 부담이 크다. 세금이 올라가면 건강보험료며 국민연금 등 4대보험료도 덩달아 올라 부담이 배로 는다. 단순계산해서 10만원 때 매출이 50억이었는데 18만원으로 올라 80억이 되니까 세금만 커진다.

-이 3가지가 협회의 역점사업인가.

일단 당면과제 중 가장 절실한 것들임엔 분명하다. 사실 소농들은 쌀산업에서 소외계층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임도정공장들은 소외계층과 동고동락해 왔으니 정부 지원이 따라야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회원사도 변해야 한다. 정부 지원만 바랄 게 아니라 단합해서 쟁취하고 쌀 산업을 이끌어가는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들간 결속 강화다. 시대 변화에 맞춰 힘을 합해 함께 나가야 한다. 정부와 함께 중앙회가 그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갈 것이다. 코로나19로 판매가 안돼 어려운 중에 양곡산업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회원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