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 허덕이는 RPC ‘산물벼 도정’ 숨통 틔워야
경영난 허덕이는 RPC ‘산물벼 도정’ 숨통 틔워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5.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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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양곡 도정공장 이송 물류비 연간 50억 절감 가능
매해 ‘대입수능’ 기여도평가에 규제 많고 혜택은 없어
적자누적 경영난 심각…가공용쌀 RPC 판매체계 구축을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형평성 시비 지속

RPC 산물벼 도정하면 정부예산 50억 절감

벼 매입자금 대출기한 12개월 환원하고

수확기서 연중으로 매입기간 확대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운영 전국협의회 조합장 일동은 최근 2020 정기총회를 열고 ‘공공비축 산물벼 RPC 도정 허용’을 요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발표했다.

건의문엔 공익직불제 관련 시장격리 방안과 재난 대비 공공비축미 물량 확대를 요구하는 의견도 담겼다.

RPC를 운영하는 농협의 조합장들은 매해 정기총회를 열 때마다 ‘RPC 산물벼 도정 허용’을 정부에 건의해 오고 있다. 올해로 11년째다.

이 주장의 근거는 정부양곡 품질 향상과 정부예산 절감, 두 가지로 압축된다. 약 30년간 거듭된 시설 투자 끝에 최신식 설비를 갖춘 RPC에서 정부양곡을 도정해 품질을 높이고 군관수·공공용 급식으로 공급할 때 이송과정이 획기적으로 줄어 정부의 물류비 예산 또한 대폭 절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낙후된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비롯된 도정 품질에 대한 불만과 이물질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전라도의 한 민간RPC 공장에서 벼를 하적하고 있다.
전라도의 한 민간RPC 공장에서 벼를 하적하고 있다.

 

민간RPC도 이런 입장은 다르지 않다. RPC가 하나의 사업부서인 농협에 비해 흥하든 망하든 경영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 사업자가 지는 민간RPC 업주들은 누적 적자로 인한 경영난 해법으로 산물벼 도정 허용을 요구해 온지 오래다. 한국RPC협회는 RPC 산물벼 도정을 허용했을 때 아낄 수 있는 정부예산이 약 50억원에 이른다는 자체 연구결과를 지난해 발표한 바 있다.

농식품부,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비축미 독점적 도급계약

정부는 해마다 35만톤가량의 공공비축미를 수매하면서 그 가운데 일정량을 건조하지 않은 산물벼 형태로 농협RPC와 민간RPC를 통해 농가로부터 사들이게 하고 있다. 2019년산 산물벼는 농협이 5만3000톤, 민간이 2만7000톤으로 총 8만231톤을 사들여 보관하고 있다가 지난 3월 정부에 돌려줬다.

정부는 RPC의 산물벼를 정부양곡 창고로 옮겼다가 군.관 급식용이나 기초생활수급자용 등 필요할 때마다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운반해 도정해서 수요처에 공급한다.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말 그대로 정부양곡만을 찧는 방앗간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들과 주기적으로 독점적 가공도급계약을 체결해 정부양곡 도정을 맡긴다. 3~5년에 한 번씩 경영평가를 받고 별 일이 없는 한 재계약을 체결하며 사료용, 쌀가공식품용, 관수급용 등 매해 평균 50만톤을 가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RPC가 수매하는 공공비축산물벼의 수요처 공급 체계도. RPC에서 정부양곡 창고로 이송 후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해 수요처에 공급되기까지 8단계에 걸친 물류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행 RPC가 수매하는 공공비축산물벼의 수요처 공급 체계도. RPC에서 정부양곡 창고로 이송 후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해 수요처에 공급되기까지 8단계에 걸친 물류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RPC 수매 공공비축산물벼의 관리체계 개선안. RPC가 산물벼를 직접 도정해 수요처에 공급하면 산물벼의 이송, 운반 등 물류 단계가 기존보다 5단계나 줄어든 3단계로 대폭 절감된다.
RPC 수매 공공비축산물벼의 관리체계 개선안. RPC가 산물벼를 직접 도정해 수요처에 공급하면 산물벼의 이송, 운반 등 물류 단계가 기존보다 5단계나 줄어든 3단계로 대폭 절감된다.

 

RPC 누적된 적자로 경영난 ‘심각’

최근 들어 농협 및 민간RPC들의 산물벼 도정 허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RPC들의 누적된 경영난이 심각한 상황임을 드러낸다. 농협RPC만 해도 5년간 누적적자가 500억원에 달한다. 수확기 농가벼를 최대한 높은 값에 양껏 사들이는 반면 쌀값은 낮아 본전을 못 건지는 해가 거듭됐기 때문이다. 민간RPC 역시 2014년부터 2018년 한 해를 제외한 5년 동안 계속된 적자로 ‘줄도산’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민간RPC가 산물벼 도정으로 취할 수 있는 조수익은 업체당 연간 7000만원. 산물벼 도정으로 받는 가공임은 이들의 경영개선에 큰 밑천이 될 수 있다. 정부양곡 1톤을 찧을 때 가공료로 책정된 예산은 9만원인 반면, RPC가 같은 양의 벼를 찧어 손에 쥐는 가공임은 겨우 2만5000원이다.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갖다 주고 갖고 가는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달리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RPC들은 거래처 유지 수단으로 ‘품질향상·가격 낮추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RPC에게 산물벼 가공을 허용한다면 농협과 민간이 각각 50억원, 24억원의 가공임을 안정적으로 받아 그간 입은 적자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산물벼 가져가고 가공용도 취급 못해...형평성 시비 불씨

방앗간 사이에서 10여년 지속된 특혜시비는 RPC 산물벼 도정 허용으로 잠재울 수 있다. RPC들의 원성이 높은 이유가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정부가 갖다주는 사료용, 가공용, 급식용 등에 대한 가공임을 안정적으로 받는 반면 RPC는 기껏 수매한 산물벼도 굳이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해야 한다며 가져가 버려 업주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가공용으로 방출하는 구곡도 박탈감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가공용벼 역시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해 유통 및 가공식품기업들에게 판매되므로 RPC들의 시장은 그만큼 축소된다. 가공용으로 나가는 구곡은 햇반 등 원료로 CJ가 하루에 가져가는 100톤을 포함해 연간 10만톤.

업계 관계자는 “RPC는 해마다 항목이 45가지나 되는 기여도평가로 괴롭히면서 적자를 보전할 여건은 만들어주질 않는다”며 “산물벼 도정 허용으로 경영개선을 유도하고 기업들이 가공식품 원료를 RPC에서 사게끔 체계를 만들어줘야 가격후려치기 경쟁이 없어져 쌀산업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벼 매입자금 대출기한 12개월로 환원 ▲수확기 매입량 1.5배(대출배정금액의)를 연중 매입으로 전환 등 경영개선 대책을 제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작년처럼 태풍이 불어 쌀생산량이 모자랄 때는 매입량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농가들도 수확기에만 벼를 내지 않고 연중으로 봐 가며 벼를 낸다”고 말했다.

매입량 관련해선 RPC간에 규제가 달라 형평성 시비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농협 7~8곳이 합쳐 만든 통합RPC는 1.2배인데 반해 규모가 작은 민간RPC는 그보다 더 많은 1.5배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