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코로나19, 식량위기를 다시 생각한다②] 코로나19발 식량위기는 ‘부족’이 아니라 ‘접근성’ 문제
[특별기획:코로나19, 식량위기를 다시 생각한다②] 코로나19발 식량위기는 ‘부족’이 아니라 ‘접근성’ 문제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0.05.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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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위기 속 식량자급률 문제 수면 위로 떠올라
농식품부 “수입 작물 자급률 높이고 쌀 자급률 목표치 현실화”

(한국농업신문= 이은혜 기자)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로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 확보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그동안 각 나라들은 식량 수출을 제한하고 식량의 비축량을 증가시켜 왔다. 동시에 자급률을 끌어올리려는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이병호)가 국산 참깨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계약재배모델 구축에 나섰고, 국립식량과학원(원장 김상남) 또한 개발한 국산 밀 ‘황금’의 재배확대를 위해 현장을 다니며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농업신문은 2008년 식량 위기를 돌아보고,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2008년 식량 위기 어땠나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이슈와 논점 제1703호 ‘코로나19 발(發) 식량위기론의 부상 배경과 대응 과제’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세계는 2006~2008년과 2010~2011년에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의 지속적인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적인 가뭄 사태로 인해 곡물가가 치솟으면서 아프리카에서 식량 폭동이 벌어졌고, 러시아가 역시 가뭄에 따른 생산량 감소를 이유로 밀 수출 금지를 취하면서 중동지역의 식품 가격이 폭등해 ‘아랍의 봄’ 폭동으로 번진 바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위기는 일어났다. 2008년 당시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밀 가격은 사상 최초로 톤당 400달러를 찍었고, 콩 역시 처음으로 500달러를 넘었다. 그 전까지 밀은 100달러대 콩은 200달러대였다. 치솟은 곡물 가격은 요식업·가공업·공업 등 다른 부문에도 영향을 미쳤다. 곡물 가격이 치솟자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집트·멕시코·필리핀 등 34개국에서 식량과 관련된 집회 시위가 일어났고, FAO는 37개국을 식량 긴급 위기국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2008~2009년 밀의 생산량은 6억8300만 톤으로 소비량(6억3600만 톤)보다 많았다. 쌀도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쌀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많았다. 당시 식량대란은 2012년이 되어서야 가라앉았다. 식량의 양과 관계없이 식량 위기가 나타남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장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위기가 없더라도 식량 관련해서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약 61조원의 돈을 농업 부문에 풀었다. 프랑스는 “우리 모두 먹고살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며 농장과 도시의 실업자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곡물 엘리베이터
미국의 곡물 엘리베이터

가격경쟁력·가공적성 효과 ‘미미’…자급률 유지 필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2017년 양곡연도 기준 식량작물 총 공급량은 2314만8000톤이었다. 이중 국내 식량 총생산량은 468만7000톤으로 전년보다 21% 감소한 반면 곡물 수입량은 1529만4000톤으로 전년보다 4.6% 늘었다.
또 농경연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산하 농산물시장정보시스템(AMIS)의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최근 3개년(2015~2017년) 평균 23%에 그쳤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사료용을 제외한 국내 곡물 자급률은 1965년 93.3%에서 2018년 21.7%로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그나마 쌀 자급률이 100%가 넘기 때문에 20%를 유지하고 있다. 콩은 25.4% 밀은 1.2%, 옥수수는 3% 수준이다. 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에서 소비되는 곡물을 자국에서 생산하며 식량안보 울타리를 든든하게 세우고 있다. 특히 호주의 곡물자급률이 289.6%로 가장 높고, 캐나다는 177.8%, 미국은 125.2%로 북미지역에서도 높은 수준의 곡물자급률을 기록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곡물자급률은 27.2%로 세계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높았다. 전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1.5%에 이르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수입에 의존하는 밀·옥수수·콩 등은 영향 받는 충격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각종 면, 과자와 빵, 고기와 달걀까지. 우리나라 식품 산업에 줄 영향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심각할지 모른다. 식량자급률의 문제가 시급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팀장은 “밀이나 사료작물의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게 사실”이라며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은 있지만 가격경쟁력이나 효율성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에 그 효과도 크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가공적성을 들었는데, 가공적성이란 수확한 농산물의 가공 적합성을 말한다. 작물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토마토는 붉은색이 고르게 퍼져야 하고 과육이 많아야 가공성이 좋고, 복숭아는 과육이 노란색으로 씨가 분리되지 않는 품종이 가공하기에 좋다.

김종인 팀장은 “예를 들어, 밀가루를 빵으로 만들 때 적당한 과정이 필요한데 아직 우리나라가 밀이나 곡물의 경우 가공적성 환경이 다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다만 ‘꼭 자급률 100%를 달성해야 하는가?’의 질문에 단번에 ‘YES’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여기저기서 자급률을 높여야한다는 목소리는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목표치 설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보다 지금 자급률을 잘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도 설명했다.

현재 쌀 위주 편중, 사료용 곡물 수입 의존
타작물 생산 기반 확충 실시 필요

한편, 일부에서는 국가간 무역이 활발한 현재와 같은 경제구조 하에서는 식량문제도 국내 생산을 고집하기보다 수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생산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타당한 방식일 수도 있다. 다만, 쌀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국제 농산물시장은 전체 생산량에 비해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엷은 시장의 특성이 있다.

따라서 기상악화 등으로 무역량이 갑작스럽게 줄어들게 되면 국내 식량수급에 큰 타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현재 식량수급 상황은 국내 생산이나 수입 등을 통해 식량 조달 자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쌀 위주로 편중되어 있고, 사료용 곡물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곡물의 수급 상황이 급격히 변화할 경우 이러한 외부적 충격에 취약한 구조다.

이에 대해 김종인 팀장은 “국제곡물시장은 소비하고 남은 양을 수출하는 원시적이고 공급자 중심의 폐쇄적 시장이라는 특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식량작물 뿐만 아니라 조사료 등의 사료용 곡물 생산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보완되어야 할 점으로 “타작물 생산을 위한 생산기반을 확충하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국내 식량생산 구조를 쌀에 치우치지 않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할 것”을 꼽았다.

아울러 “정부가 국내 식량생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급식과 연계한 수요처 확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등 수요 측면에서의 지원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2022년 식량자급률 목표치 55.4%
농식품부는 2018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통해 수입비중이 큰 작물의 자급률 목표치를 높이고, 초과공급 상태인 쌀의 목표치를 현실화하는 것을 방안으로 한 자급률 조정 계획을 밝혔다. 계획에 따르면 기존 2022년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60.0%에서 55.4%로 하향 조정된다. 지속적인 공급과잉 상태인 쌀은 수급 안정을 목적으로 재배면적 감축을 진행하되 자급률은 기존 목표치 수준을 유지하키로 했으며, 쌀 이외 작물은 타작물재배지원사업 등을 통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추진 중이다. 

특히 농업진흥지역 중심으로 우량농지를 보전하고, 간척지 활용 등을 통해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동시에 밭작물 공동경영제 육성, 국산 밀 자조금 의무화, 밭 기계화 등을 통한 밭작물 등의 국내 생산 확대를 통해 쌀 이외 작물의 자급률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국내 생산 기반 유지를 위해 쌀에 대한 식생활 교육이나 가공산업 육성, 밀·콩·보리와 같은 타작물 계약재배 등의 노력도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