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규 국립식량과학원 전작과 박사
한옥규 국립식량과학원 전작과 박사
  • 편집국 newsfarm@newsfarm.co.kr
  • 승인 2014.07.22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유산 ‘앉은뱅이 밀’과 ‘노벨평화상’

10억 기아 해결 ‘반왜성 밀’…‘앉은뱅이 밀’서 유래

볼로그 박사, 생산량 획기적 증산 ‘노벨평화상’ 수상

멕시코‧브라질…터키 등 세계 춘파밀 재배지대 활약

 

농학자로서 세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노먼 볼로그 박사. 볼로그 박사는 키가 작고 수량이 많은 ‘반왜성 밀’ 품종들을 만들어 10억 인구를 기아에서 구했다. 그가 개발한 ‘반왜성 밀’의 양친은 우리나라의 재래종인 ‘앉은뱅이 밀’로부터 유래됐다.

 

일본은 ‘앉은뱅이 밀’을 도입해 ‘농림10호’라는 이름으로 개량시켰다. 볼로그 박사는 ‘농림10호’와 여러 춘파밀과 교잡해 여러 개의 반왜성 품종을 만들었으며, 이를 식량이 부족한 국가에 보급함으로써 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1500년대 분화된 ‘앉은뱅이 밀’

우리나라에서 밀 품종명이 기록된 것은 1429년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 그 책에는 맥류 재배법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또한 1482년 강희맹의 금양잡록에 5품종, 1682년 홍만선의 산림경제지에 4품종, 18세기 후반 서호수의 해동농서에도 밀 품종명이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맥류 품종은 매우 오래 전부터 분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앉은뱅이 밀’에 관한 기록은 밀 품종이 분화된 1429년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 광해군 때인 1618년 허균의 한중록에는 벼와 보리 이모작이 훨씬 전부터 실시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 무렵 남부지방에는 밀과 보리가 많이 재배되고 있었는데, 논토양은 매우 비옥해 식물이 웃자람으로 인한 자빠짐을 방지하기 위해 키 작은 밀 품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키가 작은 앉은뱅이 밀은 1500년대 후반기부터 분화된 것으로 보이나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앉은뱅이 밀’ 품종 일본 전파

‘앉은뱅이 밀’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을 입증하려면 양국 간의 국교관계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 첫째, 임진왜란(1592∼1599)을 기회 삼아 일본은 우리나라에 있는 국보급 보물, 서적, 도자기, 농수산물 등 여러 분야의 문물을 약탈해 갔다.

또한 왜란이 끝난 1598년 이후 일본의 토쿠가와 막부는 조선과 250년간의 사신 내왕과 문물을 교류했다. 이러한 양국 간의 접촉으로 우리나라의 농업기술과 앉은뱅이 밀 등 농작물이 일본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우리나라는 일찍이 수경 농사의 발달로 벼와 맥류 이모작의 농경 형태를 이뤘다. 밭농사의 기술도 발달했다. 1619년에 고상안이 편찬한 농가월령에는 서양보다 240∼300년 앞서서 저온처리에 의한 얼보리 종자의 춘화처리법이 기록돼 있다.

정조 2년인 1778년에는 제언절목이 반포돼 수리시설이 공용화됨에 따라 효율적인 물 관리로 농경을 활발하게 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당시 조선에는 다양한 품종과 농사기술이 보급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로 국가 산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조선을 상품시장과 원료 공급처로 삼으려 음모했다. 1876년 타율적인 개방 이후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항에 일본 상관이 설치됐고 무역 거래량이 많이 증가됐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앞선 농업기술 및 많은 농산물과 더불어 ‘앉은뱅이 밀’이 일본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1904∼1905년 동경대학 혼다교수를 비롯한 농상무성 및 농사시험장 기사 등이 한국의 농업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토지농산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 보고서에 앉은뱅이 밀, 난쟁이 밀 등 10품종이 기록돼 있다. 그런데 1894년의 대일본농회보 보고서에 일본의 밀 재래종 ‘다루마’ 품종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 이전인 첫째와 둘째 항에서 ‘앉은뱅이 밀’이 일본으로 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일본 ‘다루마’는 ‘앉은뱅이 밀’

우리나라 말로 ‘앉은뱅이’는 일본어의 ‘다루마’와 같은 뜻이다. 이것으로 볼 때 일본은 도입된 ‘앉은뱅이 밀’을 ‘다루마’로 개칭한 것이 틀림없으며, ‘앉은뱅이 밀’과 ‘다루마’가 동일한 것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앉은뱅이 밀’은 10여 품종이 있으며, 다루마는 이 품종에서 순계분리에 의해 선발된 것이다.

둘째, 파성이 Ⅳ∼Ⅴ급에 속하는 추파성 밀로, 우리나라의 중남부지역과 일본의 중부지방에 생태적으로 적합하다.

셋째, 부색(桴色)과 입(粒)의 특성을 보면 ‘앉은뱅이 밀’ 집단은 재배지에 따라 그 특성이 매우 다른데, 장망이며 립색이 갈색이고 부색(桴色)은 우성인 적갈색이 대부분이다. 백색인 변이형도 특정 지역(옹진, 창원)에 따라 재배됐던 점은 다루마 집단과 같다.

넷째, 일본 관동 동산농시에서 조사한 ‘다루마’는 백색 부(桴)를 가졌는데, 이는 1914년 시가현 농시에서 제공된 다루마 집단에서 재 선발된 것이다.

미야기현의 다루마 집단에서 선발된 ‘다루마2호’도 적색 부를 갖는 점을 감안할 때 ‘다루마’도 앉은뱅이 밀과 같이 적색 부를 갖는 개체와 열성 돌연변이 개체인 백색 부를 갖는 개체가 혼재된 동일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재배됐던 ‘앉은뱅이 밀’은 간장(키)이 130, 92, 70㎝ 등으로 기록돼 있으나 일반적으로 조사할 때 간장이 큰 것만을 기록하고 간장이 작은 개체들은 표시를 하지 않는 경향이다. 따라서 ‘앉은뱅이 밀’은 간장이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까지 혼재되어 있는 상태의 품종이다.

 

‘다루마’에서 ‘농림10호’로 진화

우리나라 수원에서 측정한 ‘다루마’의 간장은 120, 107, 93㎝ 등이 있으며, 이로 미뤄보면 두 집단은 비슷한 간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에 도입된 ‘앉은뱅이밀’은 다루마란 명칭으로 시가현, 지바현 및 사이타마시에 분양돼 재배됐으며, 순계분리육종에 이용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키가 작은 단간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앉은뱅이 밀’의 반왜성 유전자가 들어간 ‘다루마’를 교배에 이용했다. 교배조합으로 다루마와 후루쯔(154㎝)를 교배해 후르쯔다루마(155㎝)를 만들었고, 후루쯔다루마와 Turkey Red(103㎝)를 교배해 ‘농림10호’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교배 양친들이 모두 반왜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유전체계에서 어떻게 55㎝의 극단간 품종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앉은뱅이 밀’과 ‘다루마’의 반왜성 유전자가 다면발현작용에 의하여 후루쯔다루마 집단도 간장의 변이가 45㎝와 127㎝로 커서 그 집단에서 키가 작은 개체에 교배하여 ‘농림10호’가 선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국제 연구소로 전파 이용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게 됐다. 이때 미군정관으로 살몬 박사가 부임하게 됐다. 살몬 박사는 농업에 관심이 커서 일본에서 농림10호(Norin10)의 종자를 수집해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의 보겔 박사에게 분양했다.

보겔 박사는 Norin10와 Brevor14를 교잡해 중간모본을 육성했다. 1953년에는 그 중간모본에 Burt를 교잡, 1956년에 Garins를 육성했다. 1960년에는 Nugains를 만들었다.

이 품종들은 농가 포장에 재배해 10a당 1409㎏을 생산해 반왜성 유전자를 이용한 획기적 다수성 품종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앉은뱅이 밀’의 반왜성 유전자가 들어 있는 Norin10과 Brevor14의 중간모본은 멕시코에 있는 국제밀옥수수연구소(CYMMYT)의 밀 육종책임자인 Norman E. Borlaug 박사에게 분양됐다.

Borlaug 박사는 이 중간모본을 이용해 멕시코에 있는 춘파 밀에 교잡을 실시해 도복에 견디는 Sonora64 등을 여러 단간 품종을 육성했다.

멕시코,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인도, 터키 등의 세계 춘파밀 재배지대에 보급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산시켰다. 이러한 공적으로 197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