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과시 격리…민간RPC “죽는 일만 남았다”
3% 초과시 격리…민간RPC “죽는 일만 남았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6.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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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시장격리 기준 초안 나오자 업계 ‘발칵’
2020 제2차 이사회 개최…생존방안 모색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수요량의 3% 이상이 초과 생산될 때 정부가 남는 양을 매입하는 쌀 자동시장격리 기준이 논의되자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RPC협회(회장 한정호)는 지난 1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포춘차이나에서 ‘2020년 제2차 이사회’를 열고 갈수록 악화하는 영업환경을 타개할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3% 초과시 시장격리 방안을 두고 “5년내 민간RPC는 몰살당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RPC협회는 지난 1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포춘차이나에서 2020년 제2차 이사회를 개최했다. 한정호 회장(왼쪽 두 번째)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국RPC협회는 지난 1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포춘차이나에서 2020년 제2차 이사회를 개최했다. 한정호 회장(왼쪽 두 번째)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7월말 시행되는 개정 양곡관리법 고시 초안을 마련하고 수정.보완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시(안)은 쌀 업계의 관심사인 자동시장격리방안과 관련 한 해 쌀 수요량을 400만톤이라고 가정했을 때 412만톤 이상이 생산되면 정부가 초과물량 범위 내에서 매입에 나서도록 했다.

이같은 방안에 민간RPC 업계는 벼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민간RPC는 벼를 못 사게 돼 고사당할 거라고 내다봤다. 농협과의 경쟁에서 민간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확기 농협RPC는 1년 내내 팔 벼를 양껏 사들이지만 민간은 자금력이 달려 3개월치 물량만 사 놓는다. 3개월이 지나면 농협으로부터 벼를 사들이는데 이때 벼를 파는 건 도정시설이 없는 비RPC농협이다. 농협은 농협대로 벼를 산 값이 있고 보관하는 동안 전기료며 인건비, 대출금리 등이 있기 때문에 원가에 팔 수 없는 입장이다.

반면 도정시설을 가진 농협RPC는 쌀을 납품하는 거래처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쌀값을 높일 수가 없다. 때문에 민간RPC는 비RPC농협에서 다소 비싼 값에 벼를 사 와도 시장 쌀값에 벼값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이윤을 남길 수 없는 구조가 최근 몇 년 동안 고착화된 형편이다.

여기에 남는 벼는 무조건 정부가 사 주는 자동시장격리제가 시행되면 농협은 판매 부담을 덜기 때문에 더욱 마음껏 벼를 쟁여놓을 수 있다. 남는 물량은 몽땅 정부가 사 주기 때문에 벼를 낮춰 팔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결국 벼값과 쌀값 사이에서 이윤을 남길 수 없는 민간RPC는 폐업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민간RPC는 농협에 비해 벼 구하기가 힘들었다.

농가는 공익기능을 하는 농협을 선호하므로 같은 값이라도 농협에 벼를 낸다. 따라서 농협RPC의 벼 구매가격보다 1~2000원 더 주면서 농가를 설득하고 있다. 그래도 장려금 주고 이용고배당(인센티브) 주는 농협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민간RPC 업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고충을 얘기하지만 이들이 경영난을 타개할 정책수단은 웬일인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참석자는 고시(안)과 관련 “생산과 공급을 타이트하게 맞춰 가겠다는 건데, 민간RPC가 무슨 돈이 있어 벼를 양껏 쟁여놓겠나. 이제 민간은 벼를 못 구해 농협이 부르는 대로 못 주는 업체는 망할 것"이라며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한두 개 업체 빼고는 5년 안에 없어질 것”이라고 강도를 높였다.

실제 산지 벼값은 민간RPC의 재고가 바닥난 5월부터 치솟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외식업계 쌀 납품이 줄어 수확기 매입한 물량으로 근근히 버티던 민간RPC들이 5월부터 벼 매입에 본격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이 농협에서 제값을 주고 벼를 사와 산지 벼값이 쑥쑥 올라가는 것이다.

격리기준, 수요량 5% 초과로 상향조정 건의

업계에 따르면 작년 가을 6만~6만1000원(40kg 조곡) 하던 일반벼가 현재 농협에서 6만4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신동진벼는 6만2~3000원에서 6만6000원까지 올랐다.

이에 따라 6월 5일자 산지쌀값도 19만516원(80kg)으로 10일 전 18만9956원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그간 20~30원씩 미미하게 오르다 인상보폭을 갑자기 넓힌 것이다. 그러나 쌀값 인상폭에 벼값이 다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참석자는 “작년 태풍피해벼도 소진되고 산지에 가격조절할 벼가 없어지니까 농협이 볏금을 사정없이 올리고 있다”며 “그에 맞게 쌀값도 올려줘야 하는데 그대로니 민간은 이익을 남길 수 없다. 공익직불제 시행되면 이제 죽는 일밖에 없다”고 비관했다.

한국RPC협회는 이날 정부의 3% 초과 격리 고시안을 5% 초과로 변경할 것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민간은 자동시장격리제 시행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어차피 시행한다면 5% 초과안으로 바꿔야 민간RPC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RPC 업계는 3년 전부터 강화된 각종 규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벼 매입량과 계약재배 실적 등 꼭 필요한 몇 가지만 보던 경영평가를 쌀산업기여도평가로 바꿔 평가 항목을 45가지로 대폭 늘렸다.

1년이던 벼 매입자금 대출기한도 지난해 10개월로 단축시켰는데, RPC 줄도산 우려에 보완대책을 마련해줬을 뿐 기존 1년으로 환원해 명문화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올해는 벼 매입량 3000톤 미만이던 퇴출규정을 4000톤으로 올려 최소 20~30개 업체가 퇴출 위기에 몰렸다. 다만 공공비축산물벼를 건조시킬 때 날아가는 수분 감모율 0.7%를 올해부터 보전받게 돼 어려운 중에 숨통이 트였다.

한정호 한국RPC협회장은 인사말에서 “작년 태풍으로 쌀 생산량이 줄어 시장상황이 좋을 거라 예측했지만 현실은 매우 어렵다”며 “민간RPC의 생존을 위해 벼 매입자금 대출기한 환원 등 현안 해결에 집행부가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