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예산 아끼는데…카르텔에 막힌 ‘RPC 산물벼 도정’
50억 예산 아끼는데…카르텔에 막힌 ‘RPC 산물벼 도정’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9.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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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앗간인데 RPC 도정은 왜 안 되나
정부양곡 도정공장-정부, 유착관계 의혹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 산물벼 도정 허용’은 미곡종합처리장(RPC) 업계의 오래된 과제다.

RPC는 수확기 홍수출하되는 농가 벼 매입을 통해 쌀값을 지지하라고 정부가 1992년 도입한 정책에 의해 육성된 방앗간이다. 정부 대신 물벼 상태의 산물벼를 공공비축용으로 농가로부터 수매해 이를 창고에 보관하다가 이듬해 정부에 돌려준다. 이 산물벼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또 옮겨져 군.관.사회복지시설 등의 공공급식용으로 공급된다.

이처럼 벼를 옮기는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RPC가 산물벼를 본인들이 도정하게 해 달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비합리성 때문이다. RPC나 정부양곡 도정공장이나 도정시설을 갖춘 같은 방앗간인데 굳이 돈을 들여 벼를 옮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타당한 제안이 왜 10년이 넘도록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지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50억 예산 아끼는데…카르텔에 막힌 ‘RPC 산물벼 도정’

② 뛰는 RPC 위에 나는 도정공장…정부 차별정책 왜?

③ 적폐청산 부르짖는 정권, 쌀 산업만은 적폐 비호 세력

RPC 공장에서 벼 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RPC 공장에서 벼 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적지 않은 예산절감 효과가 있는데도 ‘RPC 산물벼 도정’이 허용되지 않는 이면에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이권에 얽힌 카르텔과 정부 인사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마다 수확기에 전국 미곡종합처리장(RPC)이 농가로부터 물벼 상태로 수매하는 공공비축산물벼를 RPC에서 도정하면 정부예산 50억원가량을 아낄 수 있다.

이 산물벼는 RPC가 건조해 보관하고 있다가 이듬해 정부가 정부양곡창고로 옮기고, 또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옮겨 가공해 군.관수용, 사회복지 등 공공급식용, 주정용 등 가공.사료용으로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벼를 트럭에 올리고 내리는 상.하차비용, 창고로 운반하는 이송비, 입.출고비 등 막대한 물류비가 든다.

RPC 업계가 민간 연구기관 GSnJ를 통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RPC에서 산물벼를 가공하도록 정부양곡 관리 체계를 단순화했을 때 168억원이 드는 정부양곡 관리비용이 118억원으로 대폭 줄어든다. RPC가 산물벼를 도정해 실수요자에게 직접 공급하는 형태로 바꾸면 RPC에서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산물벼를 옮기는 데 걸리는 상.하차, 이송 등 8단계 과정이 3단계로 줄기 때문이다.

물론 RPC가 정부양곡 도정비를 받아 경영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RPC 업계는 최근 10년 동안 지속적인 쌀값하락 및 판매 부진으로 경영난이 심화됐다. 정부가 대대적인공공비축물량 추가 격리에 나선 2017년 수확기부터 2018년까지 두 해를 제외하고는 벼값보다 쌀값이 낮아 이윤을 건질 수 없는 구조였다. RPC 산물벼 도정을 허용하면 톤당 10만원으로 책정된 가공임을 받아 적자를 가릴 수 있다. 나아가 경영에 숨통이 틔면 농가 벼 매입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산물벼 도정 허용으로 정부예산 절감, RPC 경영 개선, 농가 벼 매입 확대 등 세 가지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10년 동안 RPC 업계는 이같은 점을 피력하며 정부를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RPC가 민간의 영역에서 쌀 유통을 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정책 반영을 거절해 왔다. 즉 정부미(나라미)는 정부양곡을 찧으라고 정부가 지정해 준 방앗간인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만 찧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절감이라는 효과 앞에서 이같은 답변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RPC 업계에 따르면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정부의 유착관계에서 예산을 절약하는 좋은 아이디어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실제 정부양곡 도정공장들은 지역마다 단체를 조직해 새 업체의 진입을 막고 있다. 일종의 카르텔로, 정부 지정으로 생겨난 업체들이 정부 비호 아래에서 시장경쟁 원리를 거스르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여기에는 농식품부 퇴직 인사의 ‘자리 보장’이라는 ‘대가성’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양곡 도정공장이나 도정공장들의 모임인 대한곡물협회 임직원 대부분이 농식품부 퇴직인사로 구성됐다는 건 업계에 널리 퍼진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와 관련 RPC 관계자는 “적폐 청산과 기회의 평등을 부르짖는 현 정부에서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정부의 유착관계는 굳건히 지속되고 있다”며 “이런 적폐부터 청산해야 비로소 산지 쌀 시장에도 기회가 균등히 주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