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팜리포트] 구멍 뚫린 수입쌀, 해외직구로 산다③ 저가 수입쌀 밀린 국산쌀…농가 불안 눈덩이 
[뉴스팜리포트] 구멍 뚫린 수입쌀, 해외직구로 산다③ 저가 수입쌀 밀린 국산쌀…농가 불안 눈덩이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1.02.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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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급등에 수입쌀 찾는 소비자 증가
최종 소비처 파악 안 돼, 원산지 표시 위반 우려
수입쌀 취식의향 매년 증가
유통시점, 단가 등 조율 필요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미국 쌀이지만, 국산 못지않아요. 구수한 맛은 조금 덜하긴 한데, 윤기나 찰기는 국산 쌀이랑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괜찮아요. 특히 가격이 저렴해 가성비가 좋아요.”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미국산 칼로스 쌀’을 검색해 판매 중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미국 칼로스 쌀에 대한 상품평에서 이 같은 구매 후기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 구매 후기에서 자주 보이는 내용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가성비가 좋다’, ‘재구매 의사가 있다’ 등의 내용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수입 후 철저한 검역과정을 거쳐 판매되는 쌀로, 믿고 먹을 수 있는 1등급 쌀이라는 게 판매처의 설명이다.

온라인상에서 20㎏ 기준 4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산 칼로스 쌀은 국내산 쌀보다 1만원 이상 저렴하고, 고가에 판매되는 이천쌀보다는 4만원가량 싸다. 온라인 구매 시 제품 구입에 많은 영향을 주는 구매 후기에서 수입쌀은 ‘국내산 쌀만큼 맛도 좋고, 특히 가성비가 좋은’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경기지역의 한 마트에서 미국산 칼로스 쌀(노란색 포대)이 20㎏ 한 포대에 3만8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옆에 있는 신동진쌀보다 1만5000원이나 저렴하다.

밥쌀용 쌀 매년 4만톤가량 수입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산 쌀은 2015년 관세화가 시행된 이후 의무수입물량(TRQ)이라는 명목 아래 40만8700톤이 수입된다. 이 중에서 ‘밥쌀용 수입쌀’은 최근까지 해마다 4만톤 정도를 차지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수입쌀의 의무도입 물량은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수입쌀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5만1000톤 물량을 수입하기 시작해 2004년에는 20만5000톤까지 확대 수입됐다. 이후 2014년까지 한 차례 더 관세화 유예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40만8700톤까지 의무수입량이 늘어났다.

밥쌀용 수입쌀 또한 의무수입량이 늘어남에 따라 수입 초기 물량이 매년 늘어났다. 2005년 당시 총 의무수입량의 10%인 2만2600톤이 수입됐고, 두 번째 관세화 유예가 결정된 2014년에는 밥쌀 수입의무(총 의무수입량의 30%)가 규정되면서 12만2600톤이 수입됐다.

다만, 2015년 정부가 쌀 관세율 513%, TRQ 물량 40만8700톤 유지를 내용으로 하는 쌀 관세화 전환을 선언하면서 밥쌀용 쌀에 대한 수입의무가 사라졌고, 2015년 6만톤, 2016년 5만톤에 이어 최근까지 매년 4만여톤의 밥쌀용 쌀이 수입되고 있다. 

밥쌀용 쌀의 수입의무는 사라졌지만, 수출국의 문제 제기와 WTO 규범(내국민대우) 위반 소지 등을 고려하면 밥쌀용 쌀의 수입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싸니까 산다’…최근 유통물량 증가

지난해 쌀 생산량이 큰 폭으로 감소한 탓에 쌀값이 크게 오르자, 그 사이 국내산 쌀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쌀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매업체 납품과 인터넷 판매를 겸하고 있는 한 양곡도매업체 관계자는 “최근 미국산 칼로스 쌀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많이 사는 사람은 10포대씩 사기도 하더라. 아무래도 최근 쌀값이 비싸다 보니 국산 쌀보다 1만원 이상 저렴한 수입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밥쌀용 수입쌀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린 데에는 ‘가격’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TRQ 물량 중 밥쌀용 쌀은 약 90%가 중립종인 미국산 멥쌀이고 나머지 10%는 안남미로 불리는 장립종 베트남 쌀이다. 미국산 쌀 비중이 높은 이유는 미국산 쌀이 국내에서 주로 많이 찾는 단립종 쌀과 맛 등이 유사한 중립종이기 때문이다. aT에서는 이 밥쌀용 수입쌀을 국내 수급상황, 수요 등을 고려해 368개소의 양곡 도소매업체에 매주 2회(월, 수) 공매로 판매하고 있다. 

공매로 판매된 물량의 70~80% 정도는 식자재취급업체, 일반음식점, 단체급식소 등으로 유통되고, 나머지는 일반소매점·인터넷 판매, 가정 내 직접 소비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중 aT에서 최근까지 양곡 도소매업체에 낙찰된 물량을 살펴보면 밥쌀용 수입쌀 소비가 예년과 달리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aT 비축농산물 전자입찰시스템의 양특판매 입찰목록을 살펴보면, 지난해 수확기(10~12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5개월간 소비자 밥쌀용 수입쌀 낙찰물량은 약 1만6000톤으로, 전년 동기간 물량인 6900톤가량보다 약 132% 가까이 크게 늘었다. 전년보다 2배를 훌쩍 뛰어넘는 물량이 시중에 풀린 셈이다.

이 중 국내산 쌀과 유사해 실제 국내 소비자들이 주로 먹고 있는 미국산 밥쌀용 쌀은 같은 기간 1만4400톤가량이 낙찰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간(약 5600톤) 대비 157%나 증가한 수치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aT는 지난해 쌀값이 상당히 올라 수입쌀 수요가 다소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나, 밥쌀용 수입쌀 판매량이 국내 연간 쌀 전체 수요량의 1% 수준에 불과해 국내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보고 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국내산 쌀이 비싼 상황에서 수입쌀을 써야겠다는 인식이 생기는 점이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이는 계속해서 수입쌀 공급을 요구하는 등 소비자 선호도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유통 경로 깜깜

지난해 수확기부터 최근까지 밥쌀용 수입쌀 물량이 전년보다 두 배 넘게 시중에 풀렸지만, 이 쌀들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계 당국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공매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실수요 업체는 아니고, 이 업체들이 공매로 낙찰받은 물량을 다시 판매하는 구조”라며, “최종 소비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입쌀은 국내산 쌀보다 소비되는 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2~3차 유통 경로까지는 조사하기 쉽지 않다”면서, “판매업체에 실수요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지만, 수입쌀을 처리한다는 부담에서인지 정확한 답변이 집계되지 않는다. 또 전수조사하기에는 지금보다 더 큰 비용이 수반돼 현재까진 일차적인 유통 경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의 설 명절 원산지 표시 점검 단속에서는 충남 아산의 한 뷔페식당이 2019년 2월부터 미국산 칼로스 쌀 9.2톤가량을 밥으로 조리한 후 국산으로 거짓 표시해 판매한 사례가 적발됐다. 

이처럼 수입쌀을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계에서는 수입쌀이 어디로 유통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당연히 정부의 수입쌀 관리 상황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지적은 정부의 쌀 관세화 전환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2015년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소비자 인식도 변하고 있다

수입쌀이 국내산 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쌀값이 낮았던 시기부터 이미 수입쌀에 대한 선호도가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소비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입쌀 취식의향이 지난 2013년 1.71%에서 매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기준 2.42%로 집계됐다. ‘수입쌀을 아마 먹어볼 것’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2018년 5.9%에서 2019년 12.8%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김상효 농경연 박사는 “수입쌀에 대한 소비자 취식의향은 분명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면서 “쌀을 중심으로 식생활 하지 않는 상황에서 반드시 국내산 쌀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과거와 달리 옅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농경연 곡물관측팀장 또한 “상대적인 소득 수준이 낮은 소비자의 경우 국내산 쌀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을 수 있다”면서 “국내산 쌀 가격이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수입쌀과의 가격 차이가 반드시 있는 만큼 취식의향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계는 점차 수입쌀이 국내산 쌀 시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은만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지금처럼 수입쌀이 싸고 맛도 괜찮다는 인식이 조금씩 생겨 국민 소비 패턴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결국 우리 쌀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의 수입쌀 유통 시점이나 단가 등을 국내 쌀 산업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조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동 전국쌀생산자협회장은 “농민들은 이제야 쌀이 제값을 받고 있다고 보지만, 각종 매체에선 연일 높은 쌀값이라 말하며 소비자에게 일종의 공포감을 주고 있으니, 덩달아 소비자들이 저렴한 수입쌀로 눈을 돌리는 게 아닌가”라며, “농정당국의 일차적 과제는 국내 쌀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