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연금 우수사례 이종혁씨
농지연금 우수사례 이종혁씨
  • 편집국 newsfarm@newsfarm.co.kr
  • 승인 2014.11.0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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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이었기에 빛나는 황금빛 노후”

오랜 삶 터전…농지 떠나고 싶지 않아

저는 스물다섯에 처음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지역에서 ‘성실 경작 농업인’, 또는 ‘고양지역 농업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값비싸고 좋은 농기계들로 넓은 농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땅 위에서는 언제나 몸으로 부딪혀야 했기에 지금보다는 더욱 고된 농사를 지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시절, 농사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이었고 대다수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한때 제가 소유한 농지는 8000여 평의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노태우 정부의 자유로 건설을 위해 소유농지 중 일부가 편입되어 보상을 받으면서 축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상받은 돈으로는 농지가 아닌 빌딩을 구입하였으나 그마저도 IMF때 날려버리게 된 것은 아직도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스스로 커나가는 곡식 같은 자부심

열일곱 마지기의 벼를 경작하여 일 년에 버는 돈은 고작 500만 원. 그나마 아직까지 건강한 신체는 큰 자산이 되어주고 있지만 아픈 아내가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 아내는 과거 경운기를 타고 일산 장에 마늘을 저와 함께 팔러 가는 길에서 도로에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습니다. 팔을 비롯해 11군데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잇따른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질환을 얻어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아파트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저의 성급한 운전 때문에 평생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야 하는 아내에게 매달 생활비와 병원비를 지원하고, 또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뜨거운 열정으로 여러 가지에 도전하고, 또 실패를 거듭하며 슬하에 4명의 자식들을 반듯하게 키웠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에게 노후에 자식에게 의존해 생활비를 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물과 볕을 받으며 스스로 커나가는 곡식들처럼 저 자신의 힘으로 살겠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또 이러한 자부심을 끝끝내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던 겁니다.

자부심을 지켜준 고마운 농지연금

자식들은 힘든 농사일은 그만 두고 곁에서 저를 모시겠다고 원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삶의 터전인 농지와 농지 옆에 덩그러니 하나 밖에 남지 않는 집을 그렇게 팔고 이 땅에서 떠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는 ‘농지 연금’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작은 농촌마을로 직접 찾아가 농지연금을 홍보하는 ‘찾아가는 고객센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혜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2013년 3월 28일, 저는 고양지사의 문을 직접 두드리고 연금지원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연락은 공사에서 금방 왔습니다. 제가 계약을 체결한 일자가 4월 4일이니까 채 일주일이 못 되어서 바로 농지연금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이죠.

평생 농사짓고 살고 싶은 소원 풀어

하면 된다는 인내심으로 한평생 농사를 지어왔지만 사실 눈앞에 닥친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다 보니 국민연금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노후 생활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제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족한 아내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하고, 손자들의 등록금까지 보태주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자식과 손자에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노릇까지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평생을 농사일을 했지만 사실 돈 벌어서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제 세대가 지닌 서글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농지에서 제가 지내온 황금빛 인생을 보상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 240만 원이 조금 넘는 연금을 수급 받고 있으며 2014년 3월까지 받은 지원 금액만 하더라도 이제 2900만원이 넘었습니다.

저처럼 한평생 농사를 지어온 분들이 당연히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더 많은 지역에 ‘찾아가는 고객센터’를 운영한다면 정보에 취약한 우리 노인들이 보다 풍족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에게도 지금 제가 누리는 삶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한국농어촌공사가 우리 농업인의 입장을 더욱더 많이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