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 창간9주년 특집] 가공식품용 쌀 재배를 늘려라②
[한국농업신문 창간9주년 특집] 가공식품용 쌀 재배를 늘려라②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1.10.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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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가공용 쌀 시장, 민간 재배 물량 확대 관건
계약재배로 소득·판로 보장되나 단가 맞추기 어려워
쌀가공산업, 농업과 연계한 성장 방안 모색 필요
정부양곡 의존적인 산업구조, 원료 수급 차질 빈번
지역 단위 계약재배 활발…정부·지자체 지원 필요
장성군에서 쌀 수확이 한창이다. 군은 즉석밥 제품 ‘햇반’과 고추장 등에 쓰이는 가공용 벼인 ‘한아름찰벼’ 재배단지를 올해 183㏊ 규모로 조성했다. 장성군 제공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사)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주최한 ‘쌀가공품 품평회’에는 쌀의 무한한 변신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쌀가공 제품들이 출품됐다. 에스프레소, 크림치즈, 딸기 가루 등 재료가 들어간 퓨전떡이 등장했고,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쌀가루 97% 이상의 쌀국수도 나왔다. 

점차 발전하고 있는 쌀가공식품 종류만큼이나 산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쌀가공식품의 원료 쌀 시장 규모는 8000억원대, 매출액은 약 5조5000원에 달한다. 업체수만 해도 1만7000여개소다. 지난해 쌀가공식품 수출액 또한 약 1억3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웠다. 쌀가공식품 산업이 성장하면서 덩달아 제품 원료가 되는 가공용 쌀 소비도 늘고 있다.

가공용 쌀 사용량 확대

서구식 식습관, 1인 가구 증가, 핵가족화 등으로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내리막길인 반면, 가공용 쌀 사용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쌀을 원료로 한 가정간편식(HMR)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고, 식사 대용이나 간식 용도의 쌀가공식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정용을 제외한 가공용 쌀 소비량은 49만2000여톤에 달한다. 전년보다 6만여톤 감소하긴 했으나, 2016년 43만여톤에서 2017년 49만톤, 2019년 56만톤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쌀 소비량이 많은 업종은 떡류 제조업(32.3%), 도시락 및 식사용 조리식품(29.1%) 순이다. 

떡볶이, 쌀과자, 쌀국수 등 쌀가공식품이 다양하듯 가공용 쌀 품종도 여러 종류가 있다. 떡용으로 주로 쓰이는 동진찰벼, 백옥찰, 대개 가공밥에 들어가는 한아름찰, 쌀국수·과자 등으로 쓰이는 도담쌀까지 다양한 가공용 쌀 전용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기능성 벼, 유색미, 향미 등을 포함하면 특수용도로 개발된 벼 품종만 110종에 육박한다. 이 같은 품종을 개발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가공용 쌀 품종의 재배면적은 2017년 4만3068㏊에서 2018년 4만9989㏊, 2019년 5만3900㏊로 점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다만, 다양한 종류의 가공용 쌀이 모두 활발하게 생산되는 건 아니다. 쌀가공식품의 원료로 쓰이는 쌀은 대부분 정부양곡으로 당해연도 신곡보다는 구곡이 많이 쓰인다. 이 쌀들은 가공용이 아닌 밥쌀용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가공용에 쓰인 49만2000여톤의 쌀 중 정부양곡 쌀은 약 30만톤으로, 60% 이상이 정부에서 공급한 쌀이다. 나머지 19만톤가량만 민간에서 조달됐다. 쌀가공식품 업계가 정부양곡에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면서 동시에 국산 가공용 원료곡의 안정적인 공급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계약재배 관건은 ‘가격’

수량성이 비교적 높은 가공용 쌀은 일반 쌀 시장으로 유출되면 시장 교란을 일으킬 수 있어 대개 농가와 쌀가공식품 업체 간 계약재배로 유통된다. 

국내에서 즉석밥인 ‘햇반’으로 유명한 CJ제일제당은 가공용 쌀을 가장 많이 쓰기로 유명하며, 자회사를 통해 2019년 기준 약 5122톤을 산지에서 계약재배로 사들였다. 국내 굴지의 식품 대기업인 오뚜기, 동원F&B 등도 계약재배로 즉석밥의 원료를 구매하고 있으며,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에서도 자체 상품 생산을 위해 계약재배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공용 쌀의 민간조달 물량을 늘리고, 국산 가공용 원료의 공급을 증가하는 방안으로 농가와 업체 간 계약재배가 이뤄지고 있지만, 지난 2018년 기준 민간조달 중 계약재배 비중은 11.4%에 불과했다. 

가공용 쌀 계약재배가 어려운 이유는 가격에 있다. 한 쌀가공식품 업체 관계자는 “정부양곡이 아닌 시중에 나와 있는 쌀을 가공용으로 구매해 쓰기엔 가격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쌀가공식품 업계 90% 이상이 영세한 업체인 점에 비춰보면 업체에서는 계약재배로 사들이는 것보다 저렴한 정부양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양곡에만 기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올해처럼 정부양곡 물량 자체가 부족해지면 업체에 돌아가는 원료곡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쌀가공식품 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 판매하는 가공용 쌀 물량이 매년 들쑥날쑥하니 해마다 원료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이 줄어서인지 올해는 유독 더 심했다”고 전했다.

지역에서 이뤄지는 가공용 쌀 재배

농가와 업체 간 계약재배가 쉽지는 않지만, 다행히도 지역 곳곳에서는 가공용 쌀 재배와 계약재배를 늘리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농가에 판로 확보와 소득 보장을, 업체에는 안정적인 원료곡 확보의 이점을 주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기업과 농가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산시의 경우 CJ와 업무협약을 맺고 원료곡으로 사용되는 보람찬벼를 납품하고 있으며, 871농가가 참여해 생산하는 물량만 해도 1만3404톤 정도다. 시에서는 운송비 지원 등 재정적 지원도 하고 있다.

원료 품질을 높여 생산한 제품으로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하고, 지역 내 농가와 상생하는 중·소기업체들도 있다. 충남 서천에서 한산소곡주를 제조하는 업체, 대를 이어오며 조청을 만드는 업체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지역 농가와 계약재배를 해 지역의 쌀을 소비하고 있어 안정적인 원료 확보와 동시에 농가 소득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경북도에서는 ‘가공용 벼 계약재배단지 조성’ 사업을 시행하며 기업 연계형 가공용 벼 대규모 계약재배단지 조성에 나서고 있다. 햇반용을 제외한 떡용, 주정용, 제빵·제과용, 식초원료용 등으로 가공전용 벼를 재배하는 계약재배 단지를 조성하고, 지자체에서는 비료, 병충해 방제 약제 등 영농자재비를 지원한다. 여기서 재배된 가공용 쌀은 법주, 찹쌀 도너츠 등 지역 특산품의 원료에 들어가 지역 대표 쌀가공식품 생산에 이용된다.

가공용 쌀 재배단지 확대 필요

가공용 쌀 계약재배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들은 고정적인 판로가 확보돼 판매 걱정을 덜고, 안정적인 소득 보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계약재배의 장점으로 꼽았다.

최근까지 가공용 쌀 계약재배를 했던 전남 장성의 한 농가는 “무엇보다 판로가 확정돼 있으니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고, 소득도 일반 벼보다 조금 더 나았다”고 말했다. 

상주시 농업정책과 관계자 또한 “시에서 가공용 벼 계약재배단지 조성사업을 302㏊ 규모로 추진하고 있는데, 참여하는 농가들은 대부분 만족해한다. 납품처가 고정돼 있고, 수량도 일반벼보다 더 나오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가공용 쌀 시장은 쌀 산업 내에서도 이 같은 이점을 지니고 있지만, 일반 벼 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워낙 작고, 계약단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쌀가공식품 업계의 영세한 산업구조도 계약재배를 더 늘리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농업계 관계자는 “농가와 업체 간 계약재배 시 가격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량성이 많은 가공용 품종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일반 벼보다 수량성이 30~40% 높은 가공용 품종을 선택하고, 수량이 많은 대신 가격을 낮춰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농가에서는 일반 벼보다 저렴하게 판매해도 수량으로 부족한 가격분을 보전할 수 있고, 업체에서는 원료곡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밥쌀용 쌀과 달리 가공용 쌀은 대량 생산될 경우 판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고, 가공용 쌀이 일반 쌀 시장으로 유출돼 시장 교란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남아 있다.

쌀가공 산업과 농업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농식품가치연구소의 ‘쌀가공사업 현황진단 및 국내산 원료용쌀 소비확대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햅쌀 소비가 가능한 쌀가공식품을 집중 육성해 관련 쌀가공업체 수요를 조직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원료용 쌀 전용 생산단지를 조성해 계획생산과 계열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가공용 쌀의 계약재배사업이나 가공용쌀 전용 재배단지 지정사업 등을 쌀가공식품산업이 농업·농촌과 상생하고 생산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수립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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