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참동진과 신동진의 ‘동행’
[전문가 칼럼] 참동진과 신동진의 ‘동행’
  • 박현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 webmaster@n896.ndsoftnews.com
  • 승인 2022.04.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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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
박현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

아프리카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속담이 있다. 어렵고 먼 길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행(同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는 벼 품종인 ‘신동진’이 외롭고 힘든 길을 가고 있다. 곁에서 함께 해줄 동반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동진’은 쌀알이 굵고 밥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1999년 품종을 개발하고 보급에 나선 이래 벌써 20년 넘게 꾸준히 인기다. 특히 토양과 기후가 재배하기에 알맞은 전라북도에서 많이 재배된다. 지난해에는 전북 벼 재배면적의 64%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쌀이다. 

‘신동진’ 보급 초기, 농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었다. 보급 2년만인 2002년에 재배면적은 2만9천ha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비료를 적정수준 이상 주면 쓰러지는 성질은 문제였다. 재배면적이 차츰 줄어들자 농촌진흥청은 전라북도 지자체와 농협, RPC와 공조를 펼쳤다. ‘전북 대표 브랜드 개발’, ‘탑라이스’ 사업 품종으로 ‘신동진’을 선정하고 생산 농가를 대상으로 기술지원과 교육, 소비자 초청 밥맛 검정 등을 추진했다. 지금 ‘신동진’의 명성은 이렇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며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단일 품종의 높은 인기는 독이 됐다. 작년에 전북지역을 덮친 이삭도열병은 자연재해 수준의 피해를 줬다. 농자재매장의 2년 치 농약 재고가 동날 정도로 농민들이 방제에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지독한 병균은 유독 ‘신동진’ 벼농사를 망쳤다. 알곡 대신 쭉정이로 가득한 논처럼 농민들의 마음은 황폐해졌다. 개발 당시만 해도 기존 품종보다 병에 강하다고 여겨졌던 ‘신동진’이었다. 

이삭도열병 피해가 ‘신동진’에 집중된 것은 병원균이 꾸준히 진화해온 탓이다. 한 품종을 넓은 면적에서 오랫동안 재배하면 기존의 저항성을 침해하는 병원균의 밀도가 늘어나게 된다. 병을 일으키는 균도 함께 품종과 지역에 적응하는 셈이다. 여기에 유례없이 길었던 가을장마는 병균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농촌진흥청은 ‘신동진’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병에 더 강한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해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20년에 선을 보인 ‘참동진’이다. ‘참동진’은 ‘신동진’과 대부분의 성질이 같지만, 벼 흰잎마름병과 이삭도열병에는 더 강한 특성이 있다. ‘신동진’은 병원성이 강한 벼흰잎마름병 신균계 K3a에 약한 반면, ‘참동진’은 야생벼에서 유래한 저항성 유전자 Xa21을 도입하여 K3a에 강하다. 이는 작년 재배 농가 현장 실증에서 입증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 각 지자체가 ‘참동진’ 보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정부 보급종이 생산되는 2024년까지 전북 재배면적의 약 30%에 해당하는 3만5천ha가 보급목표다. 이와 함께 ‘신동진’의 재배면적은 64%에서 45%로 줄이는 ‘벼 품종 다변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전북 익산시, 부안군 등은 신기술시범사업, 신품종이용촉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수종자 생산을 위해 국립종자원, 한국농업기술진흥원도 힘을 모은다.

전라북도 쌀 하면 ‘쌀알 굵고 밥맛 좋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신동진’이 20년 넘도록 전북 쌀과 동고동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북지역에서 ‘참동진’의 합류는 재배 품종 다양화를 통해 병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지역 쌀 상표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동진’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병에는 더 강해진 ‘참동진’이 동반자로서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참동진’과 ‘신동진’의 동행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