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버지의 과수원에 발 디디지 말아라!
아들아! 아버지의 과수원에 발 디디지 말아라!
  • 편집국 newsfarm@newsfarm.co.kr
  • 승인 2013.05.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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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한국유기질비료조합이사장

필자는 1989년부터 돼지를 기르기 시작했고, 1996년부터는 돼지의 분뇨를 유기질비료, 즉 퇴비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그래서 퇴비 영업을 위해 전국의 여러 농가를 찾곤 한다.

그즈음 전남 화순의 한 농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미 노년에 들어선 어르신과 소주 한 잔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던 가운데 필자는 인사치레를 겸해 “주말이면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농사일을 많이 도와주냐?”고 여쭈어보았다.

특히 과수원 같은 곳에 유기질비료를 뿌리기란 그야말로 땀과 고통으로 범벅이 되는 일이다. 화학비료와 달리 부피도 클 뿐 아니라 투입량도 많아서 비료 살포에 드는 노동력과 시간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농사로 잔뼈가 굵었다고는 해도 연로한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개의 과수농가는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부모를 생각하여 주말이나 연휴 동안 퇴비 뿌리는 일을 도와주곤 한다.

그런데 큰 의미 없이 여쭈어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어르신 역시 도회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가끔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당신은 자식들에게 자기 과수원에는 발도 디디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자신의 일생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농민으로서의 삶이었던 만큼 자식만은 농민으로 살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을 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느냐고 여쭤본 질문에 대한 답은 더 큰 충격이었다. 어르신은 자식들과 한 가지 신신당부의 약속을 했다고 한다. 주말이나 연휴 때 부모를 보러 자식들이 촌에 오는 것은 너무 고맙고 반가운 일이지만 와서 부모를 도와준답시고 과수원에 들어와 퇴비 뿌리고 가지치기와 같은 작업을 하다보면 복숭아나무와 정이 들게 되고 결국 자식 중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짓는 놈이 나올까봐 그리했다는 것이다.

아! 너무 가슴이 아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의 일생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농민으로서의 삶이었던 만큼 자식만은 농민으로 살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을 때, 필자는 충격을 넘어 한국농업의 절망과 대한민국의 절망을 보았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르신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울컥해진다. 오랫동안 내가 만든 퇴비를 써주셨던 그 분의 과수원이 지금 남아있는지도 궁금하지만 정말 어르신의 바람대로 농사는 대물림하지 않으셨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솔직히 어르신께는 죄송하지만 그 분의 바람과 달리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자식이 나왔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감상과 달리 내 자신이 농업에 종사하는 한 그 농민의 바람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어르신의 바람이 잘못된 바람, 결코 이룰 수 없는 바람으로 만드는데 나의 모든 정열과 힘을 쏟을 것이다.

그것이 그 어르신과 내가 농업이란 한 길에서 함께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