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쌀 산업 미래, 가공식품서 엿보다…1. 프롤로그
신년특집-쌀 산업 미래, 가공식품서 엿보다…1. 프롤로그
  • 유은영 you@newsfarm.co.kr
  • 승인 2017.01.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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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수출확대·식품 다변화로 활로 열어야
국내 쌀 농가 ‘풍작·소비감소·가격하락’ 3중고 직면
대응책, 직불금 줄이고 타 작물 재배시켜 생산 축소
FAO “30년 뒤 식량위기 심각”…농지축소는 안 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한국 쌀 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3년 연속 풍작으로 공급이 넘쳐나는데다 쌀 소비는 줄어 재고가 증가하고 쌀값이 하락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쌀 직불금 축소 논의와 함께 논에 타 작물 재배 확대에 들어가는 등 쌀 공급과잉 문제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창고에 묵혀둔 쌀이 200만톤에 육박하는 가운데 ‘식량안보’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쌀 공급과잉에 대한 정부 대책이 ‘생산 축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무역에서 식량의 무기화가 현실화된다면, 식량의 자급자족에 실패한 나라는 상대국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실제 국내 곡물 자급률은 약 24% 수준에 불과하다.

다행히 해외수출과 가공산업 활성화에 대한 모색도 진행되고 있다. 쌀 가공산업 시장은 2014년 4조2000억원에서 내년 5조원에 다다를 전망이다. 위축된 쌀 농가들이 쌀 가공식품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풍작으로 산지쌀값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산지쌀값은 2014년 80㎏ 당 16만7000원에서 2015년 12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작년 수확기인 10월 초 13만4076원으로 소폭 올랐지만 얼마 가지 않아 12만원대로 또다시 주저앉았다. 쌀값이 13만원 이하로 떨어진 것은 21년만이다.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농심은 타들어간다. 쌀 농가들이 쌀값 걱정하느라 풍년을 두려워할 정도다. 전북 진안에서 55년째 농사를 짓는 유재원씨(70)는 “한해 동안 자식처럼 가꾼 농산물에 대풍이 들면 흐뭇하지만 비료값을 못 건질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면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쌀 소비량은 매년 8만여톤씩 줄고 있다. 농민단체는 매년 해외에서 들여오는 쌀 의무수입량 41만톤도 쌀값 폭락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쌀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관세화 의무를 면제받았다. 이후 의무화를 두 차례 면제 받는 대가로 국내 쌀 소비량의 9% 수준인 40만9000톤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로부터 의무수입해 온 것이다. 그러다 2015년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쌀 관세화) 이후에는 의무수입량은 더 이상 늘어나지는 않게 됐다.

1인가구 증가·다이어트 열풍…쌀 소비패턴 변화

쌀 소비가 감소하는 이유는 가족형태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핵가족화와 고령화에 따른 1인가구 증가, 맞벌이 가구의 일상화로 쌀 소비 패턴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역시 주 요인이다.

업무에 치중하느라 하루 한끼쯤 거르는 일이 예사이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인식 때문에 적게 먹고 안 먹는 것이 미덕처럼 돼 가고 있다. 특히 쌀의 주요 영양소인 탄수화물은 다이어트의 적이라 불린다.

이렇게 많이 생산되고 적게 소비되는 가운데 쌀 재고량은 2015년 수확기 136만톤에서 2016년 175만톤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농지를 줄여 쌀 공급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가소득을 보전해주는 직불금 축소와 논에 타 작물 재배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쌀 생산을 줄여 재고량을 해소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농업직불금 예산이 연평균 5.9% 증가하고 있는 반면 효과성에 비판이 제기된다며 농업직불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논에 타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국가보조금을 주어 벼 재배면적을 차츰 줄이고 있다.

이렇게 2016년 벼 재배면적 2만ha를 줄였으며 2018년까지 전체 재배면적을 71만1000ha로 줄여 쌀 재고량을 80만톤으로 줄인다는 것이 목표다.

곡물 자급률 24%, 해마다 2천만톤 해외서 수입

정부가 쌀 생산 줄이기에 골몰한 가운데 해마다 식량 소비량의 75%인 2000만톤을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약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위치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가뭄이 계속되고 30년 뒤 세계 인구가 90억명에 도달하면 심각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게다가 식량 자급자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이 수출 제한에 나설 경우 상대국에 종속되는 식민지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실제 2007~2008년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해 일반 물가도 덩달아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발생했었다. 물론 쌀 자급률은 지난해 100%를 넘었다.

쌀을 제외한 밀(1.2%), 옥수수(4.1%), 콩(32%), 보리쌀(23%) 등의 곡물 자급률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가뭄, 태풍으로 언제 흉년이 들어 식량위기가 닥칠지는 모르는 일이다.

더구나 쌀은 한국인의 주식인만큼 지금 풍족하다고 해서 안심하고 농지를 줄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김 호 교수는 “식량 자급을 위한 농지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며 “생산조정제를 통해 가공용·사료용 쌀로 전환해 재고를 줄이고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 밀, 옥수수 등을 재배하도록 해 곡물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중국, 외국기업 인수로 부족 식량 확보

우리나라와 곡물 자급률이 비슷한 일본은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로 쌀 소비감소 돌파구를 뚫었다.

쌀로 만든 우유, 차(茶)가 불티나게 팔리고 쌀콜라, 쌀맥주 등 탄산음료와 기능성 음료를 속속 개발하며 쌀 소비 진작에 나선 것이다. 식량 자급률은 이미 40년 전에 달성했다.

1970년대 미국 곡물기업을 인수해 전체 곡물 수입물량의 90%를, 이 기업을 비롯한 자국 종합상사가 맡고 있다. 대형 저장·유통 시설도 확보했다.

지난해 중국은 세계 3위 농약·종자 기업인 신젠타 등 글로벌 농업기업을 사들이며 안전한 식량조달 채비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2020년 곡물 자급률 목표치를 95%로 정하고 기업들이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도록 저금리 융자 정책도 내놓으며 지원공세를 펼치고 있다.

식량안보 정책을 체계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이들 국가와 한국의 농지축소 정책은 극명히 대비된다.

쌀 가공식품에 희망… 2018년 5조원대 형성

우리나라도 쌀의 다양한 소비처 확대에 나서 활로를 모색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쌀 가공산업 활성화로 쌀 소비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아울러 복지용·가공용·사료용 쌀 공급을 늘려 재고 줄이기에 진력한다는 방침이다. 수출확대에도 나서 작년 중국에 첫 수출을 개시하는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지난달엔 우리 쌀 수출업체 오케이씨에스 주식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 수입 바이어인 사드 오스만 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중동 할랄 시장의 우리 쌀 진출 가능성을 부쩍 끌어올렸다.

쌀 가공산업 매출액은 2014년 4조200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2018년까지 가공산업 시장을 5조원대로 키우고 쌀 가공품 1억2000만달러어치(한화 약 1452억원)를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쌀 가공식품 프랜차이즈 창업 지원과 쌀 간편식을 직장인 아침식사로 할인판매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쌀 가공업체에 대한 의제매입세액 공제율도 음식점 수준까지 상향조정하기로 협의했다.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존재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하려면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종합 조절기능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인석 농식품가치연구소장은 “쌀에 대한 인식을 생산정책에서 소비정책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쌀은 반드시 ‘밥’ 형태로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