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쌀시장 전면개방
이슈분석-쌀시장 전면개방
  • 장대선 dsjang@newsfarm.co.kr
  • 승인 2013.08.16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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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화’ 2014년 유예 종료…찬‧반 팽팽
농민 “쌀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부터”

뒤늦은 정책토론…논란 다시 일듯

2014년 관세화 유예 연장 종료와 함께 국내 쌀 시장이 전면적으로 개방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관세화 도

입의 필요성에 무게를 두고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한국쌀전업농중앙회 등 농민단체들은 관세화 도입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국농민회는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 쌀 관세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MMA(최소시장접근)물량, 즉 쌀 의무수입물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국내 쌀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내년 이후부터 ‘관세화’를 선언하면 3개월간 WTO(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의 검증 절차를 받아야 하고 내년 9월말까지 WTO에 관련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


2차례 유예…MMA물량만 키워

쌀 관세화 유예를 결정한 지난 1993년 당시는 국내산 쌀 가격이 미국산 중립종 보다 4~5배가량 비쌌다. 중국산에 비해서도 7~8배나 비싸 가격경쟁력에서 격차가 너무 커 국내 쌀산업에 막대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시장상황 판단에 따라 관세화 유예를 결정했다.

실제로 당시 국내 쌀시장의 경쟁력은 상당히 취약한 실정이어서 가격경쟁력 뿐 아니라 품질 경쟁력 면에서도 수입될 쌀에 크게 뒤지는 상황이었다.

이후 10년 동안의 관세화 유예를 거쳐 지난 2004년 불확실한 대외여건에 대한 우려로 다시 한 번 관세화 도입을 유예했던 것이 오는 2014년을 시점으로 종료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관세화 유예로 인해 국내 쌀 시장은 기준년도 소비량의 1~4%의 ‘MMA(최소시장접근)’물량을 할당해야만 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아울러 수입물량에 대해 5%의 저율관세를 적용해야만 하는 적잖은 부담도 감당해야만 했다.

관세화 유예로 인해 우리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만 하는 MMA 물량은 1995년 약 5만1000톤에서 2004년에는 약 20만5000톤으로 증가했다. 2차로 추진된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는 2014년에는 의무물량이 40만9000톤으로, 이는 경기도 전체 쌀 생산량과 맞먹는 엄청난 물량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같이 관세화 유예 때문에 외국쌀 의무수입량이 더 늘게 되면 재고를 관리해야 할 정부의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재고 누증으로 인해 쌀 수급 불균형이 심화돼 농가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쌀 관세화 도입 지속적인 제기

쌀 관세화 도입에 대한 의견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08년에서 2010년 ‘DDA(도하개발어젠다)’협상이 지지부진한데다 당초 목표치에서 크게 후퇴할 것으로 예측되고 DDA가 타결돼도 쌀은 특별 또는 민감품목으로 분류될 것이며 관세 감축폭이 그다지 크지 않거나 심지어 감축되지 않을 가능성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쌀 가격 또한 큰 폭으로 상승함에 따라 국내산 쌀과의 가격 격차가 급격하게 좁혀진 상황에 대한 고려로 조기 관세화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실제로 톤당 400달러 선이던 캘리포니아 중립종 쌀의 가격이 2008년을 기점으로 최대 1200달러까지 오르는 등 당시 국제 쌀 가격에 대한 국내 쌀의 가격 격차는 현격하게 좁혀진 상황이다.

더구나 매년 MMA 물량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화로 전환하게 되면 MMA물량이 전환 시점으로 고정될 것이기 때문에 조기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익에 더욱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사실 2004년 관세화 유예 연장 때의 협상 문안에는 관세화 유예를 하더라도 관세화 유예 기간 중에라도 관세화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합의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기 관세화 도입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기 관세화 도입 주장은 선 부른 관세화로 농가에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정부당국의 판단과, 국제무역여건의 변화와 국내 쌀시장의 상황 호전, 국내산 쌀의 품질수준 향상 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무산됐다.


관세화 연장…유통 악재 키워

특히 쌀 관세화 유예 및 유예 연장이 추진되는 상황 가운데 국내 쌀 소비패턴은 적잖은 변화를 맞고 있다.

국내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쌀 관세화를 유예한 1993년 1인당 쌀 소비량이 100kg을 넘어서는 양이었으나, 2012년에는 60kg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소비량의 일부는 이미 수입쌀로 대체된 상황으로 맞벌이 추세에 따른 외식의 증가로 인한 수입쌀 소비의 증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수입쌀의 소비량이 증가하는데 따라 국내산 쌀의 도정물량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수치상으로는 국내산 쌀의 생산을 오히려 줄여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 국내 쌀시장의 현실이다.

이처럼 국내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수입쌀의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쌀 관세화 유예 연장으로 인해 MMA 물량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쌀 유통 전반에 걸친 악재만을 키우는 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농민단체, 쌀산업 지원이 우선

그러나 쌀시장 전면개방의 당사자인 농민들은 쌀시장 전면개방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우리나라 쌀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MMA물량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한다면서도 “국내 쌀산업 경쟁력을 제고 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먼저 수반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쌀전업농중앙회는 “‘미검사’를 그대로 두는 등 거꾸로 가는 양곡표시제 하나를 보더라도 지금과 같은 쌀산업 정책은 농민과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못되고 있다”면서 “쌀시장 전면 개방을 위해서는 국내 쌀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품질표시를 강화하고 쌀전업농 등 쌀 재배농가들에 대한 지원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입장은 전국농민회총연맹도 마찬가지로 “국제 쌀값과 환율 등이 과거와는 다르지만 국제시장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놓고 쌀 관세화를 해도 쌀 시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정부와 일부전문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농은 또 “쌀 관세화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박탈 가능성이 커 관세 감축폭이 커지고 저율할당관세물량은 더 늘어나 조기 관세화의 실익이 없어지게 된다”면서 “미국이나 중국 등 FTA와 연계시켜 쌀 이외에 다른 고율관세 품목에서 추가요구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농은 이에 따라 “협상을 통해 현재와 같이 쌀 관세화를 유지하면서 MMA물량은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농업관측 표본농가 77.7% 찬성

이처럼 쌀 관세화 도입이 찬반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지난 13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최세균)이 연구원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쌀 관세화 유예와 대외경쟁력’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의무수입량 증가로 수입쌀이 소비가 늘면서 국내산 쌀 소비 감소 등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쌀 관세화 필요성을 피력했다. 또 참석한 토론자들도 대부분 쌀 관세화를 서둘러야 한다며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박 센터장은 이날 “이미 77.7%에 이르는 농업관측센터 쌀 표본농가들이 관세화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며 “59.8%의 농가에서는 조기에 관세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이 같은 통계에 대해 “농업관측센터의 쌀 표본농가 1282호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로 현재 국내 쌀 농가에서는 관세화로 인한 국내 쌀산업의 피해는 적을 것이라는 믿음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며 “이는 높은 관세로 쌀산업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응답이 많은데다 오히려 MMA 물량이 부담된다는 응답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쌀 관세화 조기 도입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경우 국내 쌀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관세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쌀 관세화에 대한 낙관에 상반되는 의견도 여전히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경연 반쪽 토론회…찬성 일색

그러나 농경연의 정책토론회는 관세화 찬성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은 토론회에서 충분히 반영됐지만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수용할 기회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전농은 “이날 토론회에 대해서 알지도, 초대받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전농은 또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쌀 관세화에 대한 논의나 홍보 등이 제대로 이뤄진 적도 없는 실정에서 상당수 농민들이 쌀 관세화에 대해 충분하게 인식하고서 찬성을 표했다는 조사결과를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찬성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질문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쌀 관세화 도입 또는 현상 유지 등 어느 쪽이든 농업계의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인 양측의 논의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가 반대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찬성하는 쪽이 많았다는 통계를 내세워 쌀 관세화 도입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이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