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공익형 직불제①] 5월 시행 앞둔 공익증진 직불제 ‘세부내역’에서 삐끗
[기획-공익형 직불제①] 5월 시행 앞둔 공익증진 직불제 ‘세부내역’에서 삐끗
  • 연승우 기자 dust8863@newsfarm.co.kr
  • 승인 2020.02.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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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단체-농식품부, 시행령‧시행규칙 이견 보여
농가 의무준수 사항, 현장 이행 어렵다

(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 지난해 국회에서 농업소득보전법이 공익증진직불법으로 개정된 뒤 농림축산식품부는 세부내역이 담긴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하기 위해 공익직불개편 협의회를 두 차례나 개최했지만 별다른 내용을 만들지 못했다.

농식품부는 공익형 직불제 세부내역을 만들기 위해 농민단체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공익형직불 TF와 농민단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공익형직불협의회를 만들어 운용했지만, TF에서 만들어진 내용을 대표자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등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부내역 담긴 시행령 제정은 농식품부 몫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세부내역에 함정이 숨겨져 있으니 세부내역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내용을 계약서에 적는 서양에서는 계약서 항목과 내용이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 제정 과정을 보면 디테일을 전혀 알 수가 없다. 큰틀의 내용은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하지만 법률을 실현하기 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관련 부처에서 정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하면 되기 때문이다. 즉 국회의원들이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법률안에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대통령령 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령에 의해 규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대통령령이 바로 시행령이고 장관령이 시행규칙이다.

법률 제정 과정에서 세부 내역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 제정 목표와 시행령이 따로 노는 일도 생긴다. 공익형 직불제 개편도 큰틀의 개편 내용인 기본형 공익직접지불제와 선택형 공익직접지불제로 구성되며, 기본직불제는 다시 소규모농가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소농직불제’와 농지 면적을 기준으로 역진적 단가를 적용하는 면적직불제로 개편한다는 내용만 국회의원들이 알고 있지 소농의 기준, 면적구간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법률이 제정됐다.

여기에 지급단가 등의 세부내역이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공개됐지만, 법안소위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돼 법안소위에 참석한 의원만 그 내용을 알 뿐 당사자인 농민들은 세부 내역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견제 기능도 당연히 막힐 수밖에 없어 깜깜이 법 제정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민의를 반영해야 할 국회는 세부내역에 대해 아무런 견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여기에 총선까지 겹치면서 국회의원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디테일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들어가 있다. 디테일, 즉 세부내역이 일부 공개된 시점이 직불제개편 TF 2차회의다. 지난해 만들어진 TF는 1년 동안 단 한 번 회의만 했을 뿐이고 법이 개정된 후인 2020년 들어서 TF가 다시 소집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도입 의미와 과제에서 입법조사처는 세부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농업계가 제도에 대한 이해와 목표를 공유해야 공익직불제에 관한 기본계획이나 세부시행방안의 수립에 앞서, 혹은 이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농업계 상호간 공통된 인식을 정리해야 향후 혼선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향후 법률 제정이나 개정할 때 최소 시행령까지 국회에서 심의를 해야 한다. 세부내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면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법률도 개정해야 한다.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공익증진형 직불제개편 협의회 2차 회의가 농식품부 관계자와 농민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공익증진형 직불제개편 협의회 2차 회의가 농식품부 관계자와 농민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지난해말 직불제 개정에서 하위법령으로 위임된 내역은 ▲소규모농가 범위와 확인방법 ▲농외소득, 농촌외 거주자 주업 요건 ▲소농단가 ▲직불금 지급단가, 구간, 지급상환 등 ▲기타 준수의무와 기준 등이다. 직불제 관련 주요한 내용은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위임된 상황이다.

농가에 주어지는 의무, 직불금 기대치 서로 달라

이번 직불제에서 쟁점은 의외로 다양하다. 직불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는 면적별 지급단가가 가장 대립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농업인의 기준, 소농 기준 등 여러 곳에서 농식품부와 농민단체들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농식품부는 직불금 대상 농업인을 논밭 합산해서 0.1ha 이상 경작하고 농외소득금액 3700만원 이하로 개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0.1ha(300평)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500평 규모의 농사도 전업이 아닌 취미농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들도 500평의 농지를 사게 되면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관련해서 소농 기준도 기존의 농업인에서 농가로 변경됨에 따라 일단 농가를 주민등록상 ‘세대’로 한다는 것이 정부안이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등을 이유로 자식에게 편입된 농가는 직불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소농의 지급요건은 개인의 경작면적은 0.5ha 이하, 농가 기준으로는 1.55ha 이하이다. 영농종사 기간은 3년 이상이어야 하며, 농촌 거주기간 역시 3년 이상이다. 0.5ha 이하의 농가는 농업외 종합소득이 20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농외소득 기준도 논란이 일고 있다. 농외소득이 3700만원 이상이면 직불금을 받을 수 없다. 3700만원 기준은 2009년 직불금 부당 수령으로 인해 법률을 개편하면서 만들었다. 당시 2007년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3675만원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3700만원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농민단체의 의견이다.

농식품부는 3700만원은 가구 소득이 아닌 신청자 개인에 적용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현행 소득 기준과 비교해도 낮지 않아 종전 기준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며 농가 기준으로 종합소득금액이 4500만원 미만으로 기준을 잡았다.

농사를 짓고 있어도 축산이나 과수, 시설재배를 하는 경우에도 소득 제한이 붙는다. 축산업을 하는 경우 축산농가 평균 소득인 5600만원을 넘지 말아야 하며, 시설재배농가는 3800만원 미만이어야 직불금 지급 대상이 된다.

지급 면적 구간은 ▲01.~2ha ▲2~6ha ▲6~30ha 등 3개 구간이며 마지막 구간은 전업농 기준으로 6ha 이상으로 잡았다. 지급상한은 현행 논 30ha, 밭 4ha가 기준이었으나 시행령에서는 논밭 합산 30ha 이하를 상한선을 잡고 있다. 농업법인은 50ha, 들녘경영체는 400ha가 상한선이다.

환경보호, 생태보전 등 17개 의무 준수해야

공익증진 직불금을 받기 위해서는 17개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준수해야 할 의무는 화학, 유기비료 사용 관리기준 준수, 공공수역 농약, 가축분뇨 배출 금지, 하천수와 지하수 이용기준 준수, 농지자원의 유지, 생태교란 생물의 반입 재배 금지, 방제대상 병해충 발생 시 신고, 마을공동체 공동활동 실시, 영농폐기물의 적정처리, 농약 등 안전사용기준 준수, 기준 초과 농산물의 유통금지, 영농기록 작성과 보관, 농업농촌 공익증진 교육이수, 경영체 등록변경 신고 등이다.

의무를 위반하거나 미이행하게 되면 직불금 총액의 10%를 감액하하고 여러 건을 동시에 위반하게 되면 최대 100%까지도 감액될 수 있다. 농식품부는 준수의무를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법제정 당시 최대 논란 중의 하나였던 재배면적 조정의무도 부과된다. 수급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기본직불금 신청, 등록 농업인에게 재배면적을 조정할 수 있고 생산자단체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쌀전업농 관계자는 “준수의무가 너무 많아 현장에서 과연 다 지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직불금 시행을 2개월여 남겨놓은 지금 시점에서 세부내역을 합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법률안을 개정할 때 농식품부가 세부내역을 함께 국회에서 논의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