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키' 쥔 정부, 방관을 멈춰라
시대가 변했다…'키' 쥔 정부, 방관을 멈춰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5.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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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지키려는 자와 깨뜨리려는 자.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이야기다.

기득권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특정한 자연인이나 법인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획득한 법률상의 권리로 주로 재산권과 관련된다’고 나온다. 즉 기득권은 법률에 의해 이미 주어진 권리이자 제도의 보호를 받는 계층을 의미한다.

쌀 도정업계의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농산물도매업계의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 유통분야에서 대표적인 기득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정부미(米)를 찧고 나라에서 이미 배정한 일정금액을 도정료로 받는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출하자(농민)로부터 농산물을 수탁받아 경매에 부쳐주고 법률로 정한 일정 수수료를 받는 도매시장법인이 그것이다.

도매시장법인은 정보 공유가 활발하지 않을 때 출하자를 위탁상의 ‘가격 후려치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농산물 가격결정 주체로 1984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로 지위를 인정받았다. 정부양곡 도정공장 역시 정부가 비상시나 군.관 수요에 대비해 농가로부터 수매한 공공비축벼와 TRQ(의무수입물량)를 찧는 곳으로 양곡관리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지금의 무한경쟁시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해진 일을 하면 나라에서 배정한 예산으로, 또는 법에서 인정한 수수료로 대가를 받으니 남과 딱히 경쟁할 일이 없다. 일을 수주하거나 물건을 팔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업계의 다른 이들이 ‘숨만 쉬면서 돈을 번다’고 부러움 섞인 비아냥을 보내는 이유다.

기득권은 자기들의 파이를 지키기 위해 아성을 구축하고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진입을 막는 특성 또한 갖고 있다. 입이 하나 늘면 자기들에게 오던 물량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를 '카르텔'이라고도 한다.

이들의 성역을 깨뜨리려 하는 쪽은 미곡종합처리장(RPC)과 시장도매인이다. RPC는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똑같은 방앗간이다. 다만 역할이 수확기 농가 벼를 매입해 쌀값 지지를 하면서 쌀을 팔아 남긴 이윤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들은 수확기 산물벼 형태로 공공비축벼를 수매하는데, 이것이 정부양곡이긴 하지만 굳이 정부양곡 도정공장까지 옮겨 도정할 필요가 있냐며 산물벼는 RPC에서 도정하게 해 달라고 11년째 정부에 건의문을 내고 있다. 이렇게 하면 운반.이송에 드는 정부예산 50억원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시장도매인은 강서시장에서만 유일하게 운영되는 거래방식으로 출하자와 가격협상을 한 후 물건을 받아 팔아주는 옛날의 개성상인 같은 도매상이다. 가락시장에서 출하자의 농산물을 수탁받아 경매에 부치는 도매시장법인과 가격이 정해진 농산물을 수집해서 분산시키는 중도매인 역할을 합쳤다고 보면 된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세상엔 오지에 사는 농부도 농산물 가격은 대강 꿰뚫고 있기 때문에 산지와 소비지를 잇는 주체로 도매상이 재등장한 것이다. 가락시장 내 일부 도입해 현행 경매제와 경쟁체제를 만들어 출하자와 소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주자는 취지로 서울시가 가락시장 도입을 추진해온지 17년이 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거래가 더욱 활발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산물의 온라인 유통에 대비한다고 최근 밝혔다. 시대의 변화, 유통환경의 변화에서 견고한 ‘댐’은 없다. 또 100년 동안 같은 제도를 고수한다면 모두가 납득할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결국 환경변화에 순응해 제도를 개선할 때가 온 것이다. 그 ‘키’는 정부가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