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려한 보리재배, 이제 와 나 몰라라 보리수확
정부가 장려한 보리재배, 이제 와 나 몰라라 보리수확
  • 연승우 기자 dust8863@newsfarm.co.kr
  • 승인 2020.06.17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맥류, 식량안보 개념 접근…비축제 도입 필요

(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보리 생산량이 과잉될 조짐이다. 농식품부가 2014년부터 보리와 밀재배를 장려한 결과 재배면적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책임을 지기보다는 재배한 농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보리는 2012년 수매제 폐지를 기점으로 생산량이 감소하는 추세였다. 2001년 38만2814톤으로 최대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를 보였다. 수매제 폐지를 3년 앞둔 2009년에는 21만813톤이 생산됐지만 다음해인 2010년에는 11만6451톤으로 50% 가까이 줄었다. 수매제가 폐지된 2012년 8만4525톤으로 역대 최저 생산량을 기록했다.

재배면적도 마찬가지다. 2001년 9만641ha에서 계속 줄면서 2012년 2만1200ha까지 감소했다. 이후 정부의 답리작 재배 장려 정책으로 인해 2014년 3만489ha에서 2016년 3만631ha로 다시 늘어났다.

보리재배 확대는 정부 정책의 산물

농림축산식품부의 맥류 재배 장려는 곡물자급률을 높이고 겨울철 유휴농지 이용율을 높이기 위해 시작됐다. 2015년 밀, 보리, 조사료 등의 이모작 봄파종을 적극 확대하기 시작했다.

2015년 7월 농식품부는 2015년 맥류(보리, 밀) 재배면적이 4만4292ha로 전년 대비 17.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민간단체 협업을 통한 봄 파종 장려정책과 계약재배를 통한 안정적 판로확보 등으로 재배면적이 증가했다고 평가하면서 정부포상까지 했다.

당시 농식품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맥류 재배면적 증가에 기여한 관련 기관․단체․농업인 등 유공자 20여명을 대상으로 정부포상을 하는 등 재배를 장려했다.

또한, 생산량 증가 대책으로 농협 및 기존 사용업체는 물론 수입산 맥류를 사용하고 있는 농식품 기업을 대상으로 국산 밀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를 강화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가장 핵심은 보리가격 인상을 정부가 주도했다는 점이다. 농협 계약단가(1등품 40kg) 기준으로 겉보리는 2013년산 3만4000원에서 2015년산 3만9000원으로 2.6%를 올렸다. 생산량이 더 많은 쌀보리는 2013년산 3만4000원에서 2015년 4만원으로 5.3%를 인상했다. 단가가 더 높은 맥주보리도 2013년산 3만6000원에서 2015년 4만3000원으로 13.2% 올렸다.

수매가격까지 높아지자 농가들은 앞다퉈 생산면적을 늘렸다. 2016년 3만6631ha에서 기상 이상으로 재배면적이 축소된 2017년을 제외하고는 2018년 4만7237ha로 28.9% 늘었고 그해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하락하자 2019년에는 4만3720ha로 재배면적이 소폭 감소했다.

재배면적이 30% 가까이 늘어난 데다가 기상호조로 단위수확량마저 늘어나 2019년에는 수매제 폐지 이후 최대 생산량인 20만톤을 기록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식품부가 2014년 가을장마로 인해 보리 파종시기를 놓쳐 보리 수급이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해 다음 해인 2015년 봄에 보리 재배를 적극 권장했다”며 “당시 보리가격이 높아지고 정부 장려로 재배면적이 늘기 시작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수확은 했지만 정부대책은 아직도 깜깜

망종을 맞아 보리 수확이 한창이지만, 농가들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보리가 풍년이라 가격이 좋게 나오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수확해 놓은 보리가 판로를 찾지도 못하고 있다.

조태웅 한국쌀전업농경남연합회장은 “올해 쌀보리를 17톤 정도 수확했지만 가격이 낮아 팔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보리가격이 한 포대에 2만원 선인데 적어도 포대당 3만5000원은 돼야 생산비를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태웅 회장은 “현재 지역 내에서는 가격이 맞지 않아 밭을 갈아엎은 사람도 있고, 농번기라 바빠서 어쩔 수 없이 현재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장려대책과 농협 수매가격 상승으로 보리 재배면적은 2012년 수매제 폐지 이후 2018년 최대재배면적인 4만7237ha까지 늘었다. 그리고 지난해는 4만3780ha로 면적은 줄었지만, 수확량이 증가해 20톤이 생산됐다.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보리와 밀 등은 도매시장이 없어서 농가들이 판로를 찾기 어렵다. 농협과 사전에 계약재배를 하지 않으면 현지에서 유통상인들에게 넘겨야 한다.

양동산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수석부회장은 “보리는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지만, 재배면적이 늘면서 농협에서 수매하는 물량으로는 부족하다”며 “정부가 식량안보의 개념으로 접근해 보리와 밀을 비축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생산량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생산량이 집계되지 않아 대책을 세울 수 없다”며 “6월말 보리 수확이 끝나면 생산량을 파악해 대책을 세울 것인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