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끊이지 않는 기업의 농축산업 진출③] 농민 ‘생존권’ 빼앗는 결과…가족농 중심 생산구조 붕괴
[기획-끊이지 않는 기업의 농축산업 진출③] 농민 ‘생존권’ 빼앗는 결과…가족농 중심 생산구조 붕괴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0.07.0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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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자본에 잠식당하는 건 시간 문제
농경연 “기업 규제·농가와의 갈등 중재 역할은 정부의 몫”

(한국농업신문= 이은혜 기자)농업인 대다수는 기업의 농업 진출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이 2014년 전국의 농업인 500명을 대상으로 기업의 농업 참여 의향을 조사한 결과 ‘반대한다’는 의견(58%)이 ‘찬성한다’는 의견(13.4%)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농업인들이 기업의 농업 진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된 이유는 생존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대 의사를 밝힌 농업인 290명 중 31.7%는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빌미로 영세 생산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를 꼽았고, ‘이익의 대부분을 기업이 가져간다(24.1%)’와 ‘소비지·수출시장에서 생산자와 경쟁한다(24.1%)’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또 ‘기업의 땅투기 우려(12.1%)’, ‘농가의 정책사업 참여기회 축소(2.4%)’, ‘지가 상승에 따른 영농확대의 어려움(2.1%)’이 뒤를 이었다.

2016년 진행된 KBS ‘공감토론’에서도 찬성과 반대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반대 의견으로는 ‘출혈 결쟁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가족농 중심 생산구조를 붕괴시킨다’, ‘농업인 지위를 단순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킨다’와 같은 이유가 있었고, 제도적으로는 제한을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등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배합 사료회사 이지바이오의 양돈장 재인수에 맞서는 차남호 이지반사 집행위원장은 “이지바이오는 우리에게 축산재벌”이라면서 “매출액도 조 단위인데 재벌이 아니면 뭔가. 수직계열화를 하고 있다고 알리면서,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건 말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축산 농민은 대부분 생계형이고, 먹고 사는 문제에 달렸다. 하지만 기업이 영리 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축산 농민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대기업 잠식 후에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시간 문제다. 농업은 농민들의 생존이나 생계가 중요한 부분인데 그야말로 치명타다. 시장이 포화상태면 어느 쪽은 규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기업이어야 하는가 농민이어야 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화 축사를 반대하는 강원도 철원군의 한 농민은 “대기업은 자금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밀고 들어오면 당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수직계열화로 이어지는 거다”며 “사료를 재배해서 먹이고, 사육부터 유통까지 하면 단가를 낮추고 시장에서 가격을 높여서 마진을 발생시키는 구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또 막상 이상하고 기이한 유통 구조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피해받는 건 농민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강원 철원군 동송읍 모습. 단지화 된 축사들이 곳곳에 지어져 있다. 주민 말에 따르면 소유는 농민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운영은 기업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 철원군 동송읍 모습. 단지화 된 축사들이 곳곳에 지어져 있다. 주민 말에 따르면 소유는 농민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운영은 기업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추진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과 JDC가 추진하고 있는 첨단농식품단지 조성 사업 철회를 위해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의장 송인섭)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회장 강순희)이 전면 투쟁을 선포하고 나선 사건이 있었다.

두 단체는 “이 사업이 제주농업 발전과 농민의 삶의 질 향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과 JDC의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계획 중단을 요구했다. 이처럼 기업의 농업계 진출은 농민의 생존권 자체를 빼앗는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농경연은 ‘기업의 농업 진입 관련 쟁점과 과제’ 2017년 연구 보고서에서 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해 이를 반대하는 입장과 이를 지지하고 추진하는 입장 간의 견해차가 있다고 밝혔다.

농업 진입을 반대하는 입장은 기본적으로 농업경영 주체는 가족농(농가)이어야 하고 협업적 또는 기업적 농업법인을 설립하더라도 가족농적 농업법인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경영체가 가족농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기후 및 자연의 제약, 노동시간과 생산기간의 불일치와 같은 농업 생산의 특수성과 노동 투자의 신축성, 거래비용 절감 등 가족농의 신축성에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진입한 기업의 농업투자 및 생산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산출하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여기에는 과잉공급에 의한 시장 교란과 수직적 계열화를 포함한 계약영농에 의한 농가 및 농업노동자 수탈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농경연의 대응책으로는 ▲일정 기준 이상의 대기업 농업 진출을 막는 법률 제정 ▲농업법인회사에서 비농업인의 출자지분을 50% 이하로 제한 ▲계열화사업에서 기업의 농가 지배방식 규제 등을 제시했다.

또한, 축산계열화가 정책적 고려대상이 되는 것은 축산계열화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해 축산농가와 축산계열화사업자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며, 축산계열화와 관련해서 정부가 축산농가와 축산계열화사업자 간의 공정한 거래질서가 정착되게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더불어 농가와 사업자 간의 갈등이 심화될 때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갈등관리 매뉴얼에 따라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함도 강조했다.